치킨의 추억

야심한 밤, 소소한 일탈에 대해

by 이공계 문과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부터 차 타고 5분, 논밭 한가운데 있던 우리 학교는 할 일이 지지리도 없었다. 일탈이라고 해도 옆 동네 체고에 몰래 잠입하거나 독서실에서 몰래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정도밖에 아니었다. 이러한 일탈 중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는데, 바로 배달음식, 소위 '닭 먹기'였다.


따뜻한 치킨도 금방 식어 버릴 늦겨울부터 선배들과 친한 학생들 사이로 알음알음 '닭'에 대한 정보가 전해지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가장 애용하는 브랜드의 치킨은 튀김옷이 있는 일반 치킨과는 다르게, 닭구이 느낌이어서 닭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봉지를 숨기기에 적절한 방법부터, 어느 방향으로 언제 뛰어야 선생님들 눈을 피할 수 있는지, 언제 주문해야 자기 전에 먹을 수 있는지.... 대를 걸쳐 내려온 종갓집 못지않은 정보들이다.


처음에는 선배들이 사 주시는 닭을 먹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더 본격적인 쪽은 우리들이었다. 치킨 한 마리와 장학금, 기숙사 거주를 맞바꾸는 상남자들이 속출했고, 벌점 개수 독보적 1등을 달리던 우리 기수 때문에 선생님들이 골머리를 앓으시곤 했다. 오죽하면 급식실에서 비슷한 메뉴를 개발하셨지만, 미묘한 즐거움에 빠진 학생들을 건져 올릴 방도는 없었다.


작은 즐거움이 걸리는 데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닭을 먹을 기숙사 방까지 옮기는 '배달을 뛰는' 과정에서 걸리거나, 사전에 내부고발자가 있는 경우다. 물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 쟤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부고발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상한 동료애가 생긴다고 해야 할까?


배달을 뛰는 행위는 과학고답게 꽤 창의적이다. S자 모양으로 생긴 특이한 구조 덕에 기하학적 분석을 통해 가로등이 안 비추는 음습한 곳만 골라서 열심히 뛰다 보면, 성공한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돌아다니시는 본관과 떨어져 있는 여자 기숙사의 경우에는 건물 밑 필로티 천장의 센서등이 켜지지 않게 살금살금 받아오는 것이 포인트이다. 몇몇 패기 넘치는 남학생들이 빨래 바구니에 비닐봉지를 여러 개 매달아 라푼젤마냥 늘어뜨리고 공중전을 시도했다는 사례가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창의적이라는 것이 성공적이라는 말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우여곡절을 딛고 무사히 배달된 닭은 12시부터 12시 반까지, 학생들의 소소한 재미를 채워준다. 플라스틱 접시가 바닥을 보일 무렵, 학교가 어둠에 잠길 즈음 트렁크나 매트리스 밑에 소중히 숨겨뒀던 스마트폰을 꺼내 손전등을 켜고 평소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한다. 서운했던 얘기, 웃겼던 얘기, 해외 축구가 어떻고 누구랑 누구가 어떻고.... 부른 배와 따뜻한 보일러가 눈꺼풀에 무게를 줄 때, 시계는 새벽 3시를 넘어간다.


학교 밖에서 같은 닭을 먹은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때 그 맛이 아니다'라는 평을 남기곤 했다. 사실 그날 밤에 먹었던 것은 닭고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기숙사 방바닥에 누구 것일지 모를 탁자를 펴고 앉아 사감선생님에게 들킬라 소리 낮춰 두런거리던, 그 시간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