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탈바꿈

전해지지 않을 편지

by 이공계 문과

팀플에 대한 생각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누군가는 앞서 가고, 누군가는 뒤쳐지는데 그 사이 간격 어딘가의 결과가 나오는 활동. 그 사실이 참 오묘했다. 평균도 아니고 중간의 랜덤한(그렇게 무작위적이진 않지만) 값이 내 퍼포먼스에 관계없이 나온다는 것이.


이 팀플도 그랬다. 고등학교 진학 후, 처음 만들어진 조. 두 해 동안 함께 연구하고 결과를 만들 거라고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았다. 연구와 실험이라고는 중학생 때 자유낙하 실험처럼 간단한, 교과서적인 실험만 해봤을 뿐인데 보고서를 쓰고 대회를 나가라니. 이게 내가 처한 상황이 맞는 건지 파악이 잘 안 됐다.


그날 처음 본 내 조원, M과 J. 우리는 생각보다 오묘한 조합이었다. 예전에 다녔던 중학교 환경도, 학교 생활도, 성적도, 타고난 재능도.... 다 미묘하게 달랐다. 대개 M과 J가 그나마 비슷했고, 나는 완전 달랐다. M은 키가 컸고, J는 나와 비슷하거나 작았다. 둘은 농구를 좋아했고, 축구도 좋아했다. 반면 나는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항상 말소리의 대부분은 M이었고, J도 박자 쪼개듯이 합류했다. 나와 다른 두 생명체가 놀라우면서도, 매우 신기했다.


처음에는 걔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재미있었다. 원래 남녀공학이었지만 여중 같은 삶을 살았던 내게 남학생들 특유의 감성이 잘 먹혔던 것 같다. 연구를 한다고 학교에서 벗어나서 주변 축사에 가서 소들과 사진을 찍고, 정석적인 방법과 비교하면 정말 대충이기는 하지만 두꺼운 전공책으로 식물 표본을 만들기도 했다. 보고서가 엉망이라고 선생님께 붙잡혀 장장 1시간 넘게 꾸중을 들어도 M과 J의 '선생님이 너무하시네'라는 한 마디에 생각보다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좋은 조원은 아니었다. M과 J를 이해하지 못했었으니까.


나는 솔직히, 예전에는 자기중심적이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고에 왔으니까 남들도 나처럼 공부를 할 것이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능력치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게 M과 J는 참 이상한 존재였다. 같은 나이이고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이 연구를 하는데도, 왜 이걸 이 시간 안에 할 생각을 안 하고 여기서 유연한 태도를 갖고 이걸 이해를 못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정작 바라보는 게 다르다고 해야 할까?


이해가 안 되는 건 납득하지 못했던 나는, 그래서 자주 싸웠다. 말주번이 좋았던 M과 싸우다가 정말 다 때려칠까도 고민했고, J가 화학실 주의사항을 잘못 알려줘서 화학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후 체면이고 뭐고 미친 듯이 울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솔직히 우리 조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항상 M과 J를 '어린애들 같다'라고 말했던 내게, 선생님들은 걔들만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물론 그 말은 한 귀로 들어가고 다른 귀로 나가긴 했지만.


우리 조의 연구는 항상 뭔가 달랐다. 첫 해에는 시험기간을 피해서 연구를 하려고 하다 꼼짝없이 잡히고 선생님께 미운털이 박혔고, 두 번째 해에는 우리 학교 연구 조라면 기본이라고 치는 지역전람회에서도 탈락했다. 가뜩이나 조기졸업 준비와 대학 입시로 바쁜데, 전람회 탈락이 마음에 더 아프게 다가왔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성적이 낮았던 M과 J가 필요로 할 수도 있는 전람회 상이라는 실적이, 나 때문에 날아가버렸다는 생각이었다.


M과 J는 3학년에 진학해 대학을 더 높이려고, 나는 당시 올림피아드와 내신, 조기졸업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연구에 대한 의지가 약했던 M과 J가 할 분량의 '내 기준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내가 두세 배를 일했다. 전람회를 도전했던 주제는 내가 제안한 것이었고, 내 관심 분야와 가장 역할이 맞닿아 있었다. M은 다른 주제를 주제 선정 기간 끝무렵에 들고 왔지만, 그 주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M의 제안을 거절했다.


2학년이 되어서 성적 압박에 더 시달리던 M과 J도, 어떻게든 내가 목표한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하려고 하는 나도, 순전히 연구에만 집중하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 혼자 완성한 보고서를 담임선생님께 보여드렸을 때, 선생님은 우리 조의 보고서가 본선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한편으로는 더 잘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괜스레 눈시울이 따끔거렸다.


그렇게 우리 조는 학년 안에서 한 손에 꼽는, 전람회 서류 탈락한 팀이 되었다. 잔인하지만 그럼에도 학기 말 성과발표회를 위해 연구를 계속해야 했다. 다른 조들은 어떤 논문 대회를 나갈지, 여기서 뭘 더 고치고 지원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 조는 출전하는 대회가 없어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연구 조를 관리하는 영재학급 내 예산을 써야 했다. 그것도 눈치 보였지만 내 연구 실력에 실망한 나와 힘들어하는 M과 J를 보는 것도 싫었다. 특히 2학년 때 새로 오신 조 담당 지도교사 선생님께 발령 첫 해에 바로 전람회 진출 실패를 안겨드렸다는 것도 싫었다. 화학실 사건이 있었던 후로 얼어붙었던 분위기도 선생님 덕분에 겨우 풀어진 건데, 이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게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시간도 많고 할 것도 없는 김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M과 J에게 최소한의 일만 주고, 예전처럼 학교 전체를 찾아다니고 실험실로 다시 끌고 오지 않도록.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찾도록 하고, 내가 시작한 것은 내가 끝내려고 했다. 지금 봐도 참 대단한 발전이다. 옆에서 사람 노는 꼴을 못 봤던 내가, 처음으로 포기와 이해를 동시에 시작한 순간이었으니까.


우리의 연구는 라디오존데라는 기상 관측 기구의 모형에 생체 모방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였다. 아두이노에 대한 일말의 지식도 없었던 나는 회로 구성에 몇 날 며칠을 쏟았고, M은 흔쾌히 내게 chat gpt pro를 빌려주었다. J는 중간중간 보고서를 작성했고, 문서 작업을 지루해하는 M과 J에게 라디오존데 모형을 만드는 일을 맡기니 적성에 맞는지 잘 해냈다. 친구가 많은 M과 J의 도움을 받아, 아두이노를 잘 아는 다른 학생에게 내가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집중 연구 기간 막판의 어느 밤이었다. 드디어 회로와 라디오존데 모형을 완성하고 실험을 할 일만 남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독서실의 시스템 에어컨에서 실험을 했었다. 나는 이전에 남학생 생 독서실 구역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먼저 실험하고 오겠다는 M과 J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서 몰래 실험실을 나갔다. 독서실에 가 봤더니, 시스템 에어컨에 모형이 달려 있는 기괴한 모양새와 함께 M과 J가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안도와 함께, 홀린 듯이 남학생 독서실 구역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완전 실험만 하지는 않고, 적당히 농땡이를 피우면서 천천히 결과가 나오는 것을 구경했다. 예전에는 M과 J가 실험실에서 몰래 나가서 놀다 오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었는데.....


우리의 연구는 무난하게 끝났다. 첫 해처럼 연구 점수 최하점을 받지도 않고, 신기하다 잘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험 후 남은 재료들의 정리가 끝난 후, 연구를 '시마이'했다. M과 J 중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 아마 M일 것이다 - 오늘 할 일이 다 끝났을 때 항상 '시마이 하자'고 했다. 연구를 할 때는 세상 힘들고 부대끼고 충돌하던 사람들이, 이제 보니 이렇게 헤어지고 길이 갈라져 가는 건가 싶었다. 애초에, 우린 너무 달랐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조기졸업을 하는 학생들을 배웅하기 위해 마련된 시간이었다. 졸업을 하게 되어도, 안 하게 되었더라고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요상한 시간이었다. M과 J 둘 다 강당 앞에서 고마웠던, 그리고 미안했던 이야기를 했다. 그 속에 내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너무 둘의 아픔과 힘듦에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내 기대를 맞추고도 싶었을 것이고, 연구 말고도 친구와의 관계나 성적 때문에 힘들었을 건데도, 내가 제일 대화를 많이 한 사람들인데도 그것 하나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미안했다. 눈물을 흘리는 M과 J를 보면서도 내 눈에는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저 '네가 나빴네'는 말만 마음속 어딘가 닿지 못한 채 메아리치고 있었다.


최근 좋은 일이 있었을 때, M이 먼저 축하를 해 줬다. 인스타 스토리에 자기 조원이라고, 꽤 자랑스럽게 말해 줬다. 몇 번의 리포스트 끝에, 나는 세상에 M과 J가 내 조원이라고 소리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원보다는 고등학교 시절 '가장 고마웠던 사람들'이라고 M과 J를 칭하고 싶다. 내가 M과 J와 함께 연구했던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걔들과 많이 싸우고, 또 웃고, 힘들어하겠지만 이전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더 단단해지고 자랐으니까.


M과 J에게. 참 비인간적이던 나를 사람에 가깝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 다시 돌아간다면(그러고 싶진 않지만) 연구를 더 열심히 하고, 너네랑 더 잘 지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성장했다고 해도 될까?

많이 미안했고, 고마웠어. 고등학교 마지막 해, 잘 시마이 하길 바라.

(이젠 입에 붙어서 잘 떼지지도 않네 ㅋㅋ)


조원, 000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