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설계] 자유 낙하

나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by 이공계 문과

상상을 해 보자.


지금 내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다. 내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려면 저 아래로 몸을 내 던져야 한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것이란 게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그리 두렵지는 않은 것 같다.


지겹도록 들었다. 여기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못 떨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떨어진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뭐가 중요하고 뭐가 위험하고.... 머리가 아파와 잠시 눈을 저 아래로 돌린다. 까만 낭떠러지가 참 깊다는 생각을 한다.


목표는 단순하다. 아주 오래도록 바랐고 생각해 왔으니까. 잘못 떨어져도 살 수는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부실한 안전장치가 내 팔다리 하나쯤을 망가뜨릴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남들보다 단단하고 안전하기야 하겠지. 내가 더 보완했으니까. 그래도 기회는 한 번 뿐이고 다음은 없다는 것이 달라지지 않지 않나?


다음은 네 차례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숨을 깊게 들이고, 내고, 들이고, 또다시 낸다. 겁먹지 않고 싶어 눈을 똑바로 뜬다.

어느새 난 허공을 날고 있었다.




내가 몸을 던질 곳이 낭떠러지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열여덟의 봄이었다.


당시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며 내신도 병행했던 나는, 지구과학을 내 전공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너 진짜 돌 캐냐'라고 농담조로 말해도 무슨 소리냐고, 난 로봇공학을 할 거라고 말하곤 했다. 올림피아드라는 활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망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국가대표가 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크게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이게 뭘 필요로 하고 내가 뭘 해야 달성할 수 있을지는 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올림피아드가 왜 중요한지, 내 인생에 무슨 영향을 끼치고 내 입시에 무슨 영향을 미칠지는 몰랐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갈 길을 걸어간 선배들을 보아도, 무슨 시험에 통과를 했다고 해도 그저 우러러보고 기뻐하기만 할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


5월의 어느 날, 한국/일본/대만 3개국이 출전하는 국제대회에서 상을 타게 되었다. 한국 대표팀 중 1등이라는 이상한 성적과 함께. 당시에는 기쁘기도 했다. 나를 꽤 오래 힘들게 했던 내가 좋아하던 아이, 나와 함께 올림피아드를 준비했던 사람을 꺾었다는 것이 일단 기뻤다. 그리고 내가 노력했던 모든 과정을 올림피아드 선배와 선생님께서 지켜보셨다는 사실도 기뻤다. 시험에 대한 내 전략이 먹혔다는 것도 기뻤고, 입시를 앞둔 지금 무언가 성과가 났다는 것도 기뻤다.


한편으로는 막상 성과가 나니 두려웠다. 내 재능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에 대해서는. 그래서 지금 손에 쥔 성과가 곧 흩어지지는 않을지, 한 번 빛나고 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실체를 쥐고 나니 더 절박해졌다. 고입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간절히 바라 왔던 단 한 가지가 내 손에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잘 될 수 있는 미래를 선명하게 봤다. 내가 들어온 수많은 진로 강의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내 미래를 희미하게나 비춰 주는 이 무언가가 좋았다. 이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대회에서 돌아온 후, 중간고사 내신 성적을 보았다. 역설적이게도, 그 많은 올림피아드 활동 속에서도 성적이 올라 있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기회는 한 번 뿐이라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크게 동요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의 선생님에 대한 평에도 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생활기록부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서툴게 꾸며 갔다. 소문은 항상 나를 돌아갔고, 심지어 주인공이 나더라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올림피아드와 내신을 둘 다 챙기겠다는 어찌 보면 정신 나간, 굉장한 생각을 한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내 일에 대해서는 여기로 가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더 챙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과학고의 메리트로 불리는 조기졸업 제도였다. 어느 정도 상위권 대학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가졌던 나는, 일찍이부터 조기졸업 준비를 해 두었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날, 조기졸업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졸업 시험 담당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열심히 따라 적으며, 내가 이걸 할 수는 있는지 생각했다. 그땐, 아마 생각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겠지.


물론 올림피아드와 조기졸업, 학교 내신까지 모두 챙기는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점심-저녁까지 시간을 쪼개 가며 필요한 과목을 쳐냈고, 잠이 부족한 탓에 서서 내리 20분을 잔 적도 있었다. 주말에 하는 올림피아드 강의, 3일 뒤에 마감인 조기졸업 수행평가, 점점 늘어나는 시험범위까지. 내 자습실 책상에는 일정표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일정표들 사이에 있으면 묘하게 편안했다. 하나씩 비워져 가는 할 일 목록들이 내가 가는 길을 조금이나마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끝없이 확인받고 싶어 했다. 사실 우리 학교에서도 내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갔던 선배는 근래에 없었다. 하나의 과정이라도 작게 틀어지면 그 사람과 나의 결과는 천지 차이가 된다는 것을 많은 선배들로 인해 알았던 나는, 기준이 없던 상태였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수업과 수행평가, 시험보다 지금 내 위치를 특정해 줄 수 없는 이 상황이 더 고통스러웠다. 다음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이제 어딘가로 몸을 던질 준비가 끝났는데,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선택한, 아니 선택된 존재. 일종의 진통제이자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던 존재. 내가 좋아하던 그 아이. 나의 거울이었다.


그 아이는 나와 비슷했다. 올림피아드를 하고, 지구과학에 좀 소질이 있는 것 같고, 생물도 좀 하는 것 같고, 조기졸업도 하고 싶어 했다. 당시 할 일이 휘몰아치던 나는 이상하게도 고요하던 감정도 휘몰아치게 두는 선택을 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지하고 싶음과 좋아함을 구분 못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 아이라면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 복수심이라는 감정을 양분 삼아, 내게 닥쳐오는 일들을 쳐냈다. '내가 더 잘하면 그 아이가 날 봐주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이 동력으로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위험하고 자기 소모적인 이 시간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얻게 된 것이 일찍이 언급했던 국제대회 상과, 국가대표 자리였다.


나의 첫 국제대회는 이상했다. 힘들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힘들었고, 또 이상하게도 덜 힘들기도 했다. 영어가 잘 안 되는 것은 둘째 치고, 팀워크가 잘 안 되니까 저녁에 숙소 앞 거리에서 울다가 팀원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피부를 구워버릴 것 같았던 중국의 여름 해가, 내게 이 시간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애였으면 지금 뭘 했을지, 이렇게 실패하면 그 애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더 나아가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마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부실한 안전장치를 매고, 언제 뛰어내려야 할지 눈치만 보고 있는 나. 그 현실이 싫어서, 무턱대고 몸을 날렸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내 첫 번째 도약이었다.


국제 올림피아드 필기시험이 끝난 후 전자기기를 돌려받은 날, 내가 총장장학생으로 지원했던 P 대학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면접을 보라고, 일정이 안 되면 조정해 주겠다고도 했다. 그 순간이 참 믿기지 않았다. 같은 방에 있었던 팀원들에게 'I'm getting full scholarship!'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냥 너무 기뻐서, 내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 뿌듯하고도 미묘해서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나보다 더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메달이 목에 걸렸을 때보다 더 기뻤다. 그 순간만큼은, 그 아이가 생각나지 않았다.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음에도, 어떤 이유인지 전공을 바꿨음에도, 나를 따라다니던 망령 같은 존재. 거울은 깨졌다. 그리고 나의 첫 도약은, 놀랍게도 성공이었다.


기분이 참 묘했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그랬다. '국제 지구과학 올림피아드 메달'이라는 안전장치를 더 연결한 채, 대입이라는 다른 낙하를 준비했다. 나의 성적은 놀랍게도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해 줬다. 담임선생님께 수시 카드를 세 개만 쓰는 것은 어떠냐고 제의를 받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과를 정하는 기간에 남들이 다 자신보다 내신이 좋은 학생들의 거동을 예의주시할 때도, 나는 태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누가 잘하는데 내가 이 대학을 못 붙으면 어떡하지 이런 이야기가 나와도, 나는 그와 멀었다. 한 번 가본 길은 하나도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되뇌일 뿐이었다. 알잖아, 뒤는 없다는 걸.


모든 것이 끝난 지금, 다시 이때를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학교를 나가기 전, 자습실의 일정표를 정리하며 그저 많고 많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깨져버린 그 아이, 거울은 생각보다 뾰족했다. 그 의미를 찾는데도 꽤 오래 걸렸다. 그 아이는 왜 나와 달라졌는지, 어떻게 나를 여기까지 데려 왔는지, 내 이야기에서 그 아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꽤 많이 고민한 것 같다.


너무나 빠르게, 그리고 치열하게 지나간 나의 고등학교 마지막 한 해. 이에 대해 내가 내릴 결론은 항상 같을 것이다.


누군가의 영향이 아닌 나 스스로 선택에 의해, 기댈 곳이 없어 타인의 모습을 빌린 내게 기댄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내 모든 것을 바쳤던 시간이라고.




내 몸에 가해지는 중력이 잠깐 없어진 것 같다. 내가 있었던 곳 - 저 위에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다들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겠지.


옆에도, 저 너머에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나와 같을까? 불안하고 걱정이 될까? 저 아래 뭐가 있는지는 알고 이 선택을 한 걸까? 나만큼 안전장치가 좋고, 또 안전한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일까.


허공에 떠 있는 시간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 내 얼굴에 햇빛이 비춰지는 것을 느낄 때쯤, 아래로 중력이 강하게, 나를 잡아당긴다.


위를 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두려워도, 불안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아, 이제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