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답잖은, 그리고 작은 기억
벌써부터 낡은 의자들이 들썩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선이 자습실 문으로 쏠린다. 물리적 거리는 평균 잡아 스무 걸음 정도이고, 마음은 이미 문 앞에 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전통적인 가락의 종이 울리면, 드디어 간식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땅거미가 질 저녁부터 자정까지 쭉 이어지는 자습시간 중 유일하게 한 번 쉬어가라고 만든, 간식시간이다. 이름은 물론 이 시간에 간식을 먹는다고 그렇게 불렀겠지. 교실 다섯 개 정도의 큰 자습실에서 사람들이 물밀듯 빠져나가는 것이 그렇게 장관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모두가 피곤에 절여진 어린애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하나하나의 사람들을 내가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모두가 같다는 것은 분명했고, 또 모두가 다르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나의 간식시간은 보통 공부나 산책으로 이루어졌다. 공부는 시험기간에 주로 하는 것이었고, 내가 무엇보다 기대하는 것은 산책이었다. '산책'은 우리 학교 커플들의 데이트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솔로들에게는 굳어버리기 일보 직전의 다리를 움직이며 친구와 별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나는 가끔씩 혼자, 그리고 가끔씩 누군가와 산책을 나갔을 것이다.
그냥 혼자 가는 것도 물론 나름대로 기뻤지만 누군가와 시답잖은 것으로 눈물 날 때까지 웃으며 걷는다는 것이 참 좋았다. 의자에 반송장처럼 앉아 있었던 내게 근육이 없다고, 심해어 '블롭피쉬'라는 별명을 지어 준 사람이 있었다. 또 성적이 낮아서 힘들어하던 사람도 있었고, 세상을 참 귀엽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내 주변에 그저 존재하기만 하던 사람들의 아리지만 따뜻한 부분을 살짝 엿보는 느낌이랄까?
이상하게도 학교 산책로는 밤이면 참 추웠다. 코와 볼이 빨개질 대로 빨개져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학교 주변을 돌고, 또 돌았다. 추위에 손을 소매 안으로 숨기면서도 선생님에 대해, 수행평가에 대해, 개인적인 고민에 대해, 웃기고 재미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에는 어떤 말에든 웃고 공감한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들이지만, 누군가 내 정신에 작은 장난을 쳐 놓은 거겠지.
할 말이 없으면 막연히 하늘을 본다. 겨울이면 오리온자리가 잘 보이고, 여름이면 학교 출입로 쪽에 은하수가 희미하게 보였다. 안타깝게도 아는 별자리가 그것밖에 없어, 친구와 익숙한 모양을 죽어라 찾기도 했다. 별이 보이는 날에 유독 신나는 내게 '드디어 미쳤다'며 함께 웃기도 했었지. 그때쯤이면 종이 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라고. 그래도 전혀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다. 내가 여기서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아주 조금이라도, 정말 한 톨만큼이라도 얻었기 때문이다.
책상에 다시 앉으면 기계적으로 문제를 푼다. 어떨 때는 죽어라, 어떤 때는 쉬엄쉬엄. 내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나만 여기 존재한다는 것이 꽤 기쁘기도 하고, 온전히 내가 있다는 것이 좋기도 하다. 그래도, 빨갛게 변한 볼이 점점 가라앉을 때쯤에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게 참 정의가 안 되는 감정이기에, 그게 무엇인지 다시 기다린다. 다음날 21시 50분까지 쭉. 그럼 누군가 내 책상으로 와 '산책을 가자'고 말하겠지. 그러면 뭐가 부족했는지도 잊은 채, 홀린 듯이 그 차가운 공기를 맞으러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