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외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인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와 자유에 대해 선포한 '세계 인권 선언'입니다. 이 선언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 국적이나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이나 여타의 신분과 같은 것들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법 앞에 평등하며, 자유롭게 이동 및 거주할 수 있으며, 사회와 국가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사상, 양심, 종교, 의사표현, 평화적 집회 결사,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가진다.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적절한 노동 조건, 사회보장 혹은 복지, 교육 등을 요구할 권리도 가진다.'
이 기본적인 권리들을 우리는 얼마나 보장받고 있을까요? 군부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는 지난 30년 동안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해득실이 인권보다 우선순위에 놓인 국가에서 살아왔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를 적극 수용하고 가진자들에게 호의적인 법 질서를 강조해왔던 최근의 정부들에선 인권은 더욱더 후퇴하고 있습니다.
2015년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공권력 행사라며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쏴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백남기 선생이 크게 부상을 당했고 지난 해 결국 돌아가셨죠. 기업들의 집요한 노동탄압에 투쟁하다 마지막 저항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 노동자들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속절없이 은퇴한 노년의 시민들이 빈곤층이 되어가지만 국가는 이들을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세계 인권 선언은 무색해집니다.
당연한 권리라고 해서 당연히 보장될 것이라 생각해선 안될 것입니다. '너의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투쟁한 만큼만 주어진다'고 했던 체 게바라의 말처럼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인권을 말해야 하고 인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주제를 공론의 장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인권 감수성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권연대에서 기획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인권이 해답이다>라는 책을 시민들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이 책은 다섯 명의 전문가들이 폭력(표창원), 민주주의(오인영), 철학(선우현), 이슬람 문화(이희수), 평화(고병헌)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던 강연을 엮은 것입니다.
책 제목을 봤을 땐 직관적으로 인권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 같은 폭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네 가지 주제가 인권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이 머리말에서 쓴 것처럼 이 다섯 가지 주제는 결국 인간과 인권의 문제로 수렴될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표창원 의원은 폭력의 일반적인 원인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해 논한 후 정의로운 폭력이 가능한 것일지, 그리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지 묻습니다.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 지역 발전이란 이유로 희생당한 노점상과 철거민, 밀양 주민, 강정 마을 주민" 등 대의를 위한 폭력과 희생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마음 한 켠이 날카로운 무엇인가로 찔린 것처럼 아픕니다.
이들이 희생이 정당하다 생각하진 않았지만 진심으로 그 입장에 서보지 않았기에 이슈가 될 때 잠시 공분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소중한 나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과 똑같이 타인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습니다. 표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돌봄'이라는 또 다른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되새기며, 타인의 고통 위에 나의 행복을 세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최근(2017년)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완전히 망가진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 매주 분노의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주권자들이 왜 화가 났을까요? 고장난 민주주의로 인해 주권자들의 기본적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었기 때문 아닐까요? 민주주의와 인권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소수의 특권 계층만을 위해 운영되어 왔던 대한민국을 국민 개개인의 존엄을 지키도록 정상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인영 교수가 츠베탕 토도로프를 인용해 제시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 주권(인간답게 살기 위함), 개인의 자유 보장, 진보(자유와 평등, 우애와 복지의 가치를 제도로서 보장)라는 세 원칙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원칙들 간의 균형이 무너져 어느 한 쪽으로 단순화될 때 탄핵결정을 앞둔 정부와 그 부역세력들은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우현 교수는 인간의 이성을 전면에 내세웠던 데카르트의 철학과 삶을 들어 철학은 "현실에서 부닥치는 시급하고도 중차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사유하고 제시하려는 학문"이라며 편견을 벗어버릴 것을 제안합니다. 또 철학은 비판적 자기성찰에서 시작해 사람들 간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인정하고 상호합의를 이뤄가는 대화과정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비판적 사유와 실천적 특징으로 인해 철학은 우리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선우현 교수는 말합니다. 또한 철학함을 통해 우리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기초한 무시와 혐오, 차별과 배제, 폭력이 사라지고, 상호존중과 인정에 근거한 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를 펼쳐갈 수 있다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생각할 때 철학(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희수 교수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이슬람 문화를 소개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슬람에 대한 제 인식은 IS와 같은 극단적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세력 정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짧지만 강렬한 이 강의는 이슬람에 대한 저의 편견을 철저하게 무너뜨렸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서구 중심의 편향된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배우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슬람뿐만이 아닙니다. 이희수 교수가 말한 것처럼 '아프리카', '동남아', '인도' 등을 생각할 때 무지, 원시, 야만, 미개 등 부정적 이미지가 주를 이뤘습니다. 얼마나 지독한 편견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권을 말하지만 그 인권은 나와 내가 속한 지극히 좁은 테두리 안에서의 편협한 인권이었습니다. "문화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선악과 우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세계 인권선언의 첫 부분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마지막으로 고병헌 교수는 평화 교육이란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교육 방법론', '행복', '실존적 체험을 통한 배움', '자유', '철학하는 삶', '폭력', '꿈', '경쟁과 협력',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방대한 의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짧은 강의에 너무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초점이 흐려지기도 하지만 이를 토대로 사유를 확장시켜 나갈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폭력, 민주주의, 철학, 다문화 세계, 평화.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려고 해도 수백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굉장히 무겁고 방대한 주제들입니다. 이것을 한 번의 강연으로, 한 권의 얇은 책에 담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광대해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주제들을 '인권'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