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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 stem cell Mar 13. 2018

노동자가 묻자 근로기준법이 대답했다

권정임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

"당신은 근로자입니까?"
"취업규칙에 대해 알고 있나요?"
"임금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아시나요?"
"지각 세 번이면 결근인가요?"
"30분 일찍 출근했는데 이것도 연장근로인가요?"
"공휴일이면 모든 근로자가 쉬는 법정휴일 일까요?
"출퇴근길에 다치면 산업재해 처리가 되나요?"
"사직서를 내면 퇴직 처리가 되는건가요?"

알쏭달쏭합니다. 임금 노동자로 살아온 지 10년도 넘었는데 이같은 물음에 시원하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노동법을 알고 있으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입니다. 노동자임에도 노동법을 알지 못합니다. 어찌보면 그동안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부당한 일을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제정된 법을 알 필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오르내리는 노동 혹은 일자리 관련 뉴스들이 이젠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과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하는 급격한 기술 발전을 다룬 소식들을 접하면 나도 모르게 위축됩니다. 크고 작은 노동과 직장생활 문제들을 다룬 뉴스들을 보면서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됩니다.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할 수 있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근로기준법을 기초로 '입사부터 퇴사에 이르는 직장생활에서 자주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노동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정리한'책을 선택했습니다.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법은 우리의 권리와 의무, 생각과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기에 노동자라면 노동법을 상식처럼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동자라면 한 번 쯤은 근로기준법을 가볍게라도 읽어두면 좋겠습니다.

"법의 내용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에서' 특정한 법이 왜 존재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법의 존재 이유에 따라서 그 법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자신의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은 높다랗고 견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반면 자신을 보호해 주는 법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고 넓힐 수도 좁힐 수도 있는 낮고 유연한 울타리입니다."(8쪽)

근로기준법을 찾아보았지만 법조문을 무턱대고 읽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익숙하지 않고 법조문에 쓰인 용어들의 정의도 낯설기만 합니다. 이럴 때 흥미를 자극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진 이 책과 같은 해설서는 근로기준법에 관심을 갖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저자는 근로자의 법적 신분에서 시작해, 근로계약, 임금, 근로시간/휴일/휴가, 징계/해고, 인사이동, 여성/비정규직/파견직/일용직, 산업재해, 노동조합, 퇴직까지 총 10가지의 주제를 일반인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조문을 힘겹게 읽어 갈 때와는 다르게 실제 직장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항들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막연하게 노동자라고 생각했던 저의 법적 신분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고,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근로계약서와 회사에서 나눠줬지만 휴지통에 집어 던졌던 취업규칙이 적힌 수첩의 중요성도 깨달았습니다. 통장에 찍힌 월급액과 급여명세서에 기재된 각종 수당의 의미를 다시 보게도 되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성과연봉제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근로시간, 휴일/휴가, 시간외 수당과 칼퇴근을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을 다룬 부분에선 법이 있다고 해도 모든 문제에 법을 들이댈 수는 없다는 현실에 한숨도 나왔습니다. 결국 사용자(회사 혹은 업무 지시를 내리는 상사)와의 바람직한 관계 형성과 객관적 능력 증명이 갈등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란 저자의 제안에 살짝 허탈해하며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저자도 책의 도입부에서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의 기저에 있는 철학이 사용자 중심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책의 제목도 '노동법'인데 실제 법명은 근로기준법입니다. 중립적 의미인 '노동'대신 '근로(열심히 일하다)'라는 사용자의 입장이 반영된 표현이 법적으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노동법이라 부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으로 되어 있어 저자 역시 갈등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현실적 한계로 인해 다양한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법에 대해서도 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판례를 참고해 개인이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노동자 권익보호라는 목적을 합당한 수준에서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책에서 뿐만 아니라 근래 접하는 노동관련 뉴스들을 통해서도 목도합니다. 진정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노동법으로의 개정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근로관계의 법률문제에 모범답안은 있을지 몰라도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문제의 중요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게다가 결국 온전한 법률 주체인 '나'의 문제입니다. 누가 대신 결정해주거나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리부터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판단을 내리기 위한 방향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 판단으로 가는 올바른 첫걸음만 뗄 수 있어도 이미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415쪽)

사실 저자는 현행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우리 일상을 둘러싼 법률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에 대응해나가는 방향을 전달'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행 법률의 철학과 한계, 개정의 필요성 등을 다루지 않아서 아쉽다라고 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아닐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또 하나의 책으로 다루려고 해도 부족한 문제일 듯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와 같은 임금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노동현장에서 마주치는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현행 법률의 문제 혹은 한계를 깨닫게 되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의 법 개정이 필요한 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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