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라모트의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얼마 전까지만해도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르던 <별일 없이 산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별다른 걱정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에 4-5cm정도인 용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몇 달 뒤 용종을 떼내기 위해 대장내시경을 예약하고 속을 비운 후 병원에 갔습니다. ‘약 들어갑니다’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저를 보며 간호사는 담당의사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담당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담당의사는 걱정스런 얼굴로 이건 그냥 용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99%정도 ‘암’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네??? 매년 건강검진을 해도 지극히 정상이었고, 매일 운동도 하는 내가 암이라구요? 전혀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이왕 이렇게 된거 빨리 수술일정을 잡는게 어떻겠냐 물었습니다. 충격을 받을 겨를도 없이 암 담담의사와 상담 후 수술일정을 잡고 이틑 날 암이 생긴 부위를 잘라냈습니다.
대장암 3기. 다행히 암세포가 다른 장기까지 옮겨가진 않았지만 혈관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 흔적이 있어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고 있습니다. 살면서 이런 중병에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매우 건강한 편이었기에 수술 후 그리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상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니, 내가 왜?’였던 것 같습니다.
고통 중에 발견한 위로의 책
뭔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아파해주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잠시 쉬어야 했기에 의도치 않게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고통을 견디는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위로가 되는 책은 없을까 찾아보다가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말 그대로 ‘나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제게 저자인 앤 라모트는 ‘삶에서 뭔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고통스러울 때 어디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린거지?’라고 묻고 있는 제게 “왜? 라는 질문이 쓸모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는 저자의 말이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가능한 한 삶을 즐기고, 버틴다”고 했습니다. 답이 없는 물음을 반복하기 보다는 고통을 버티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자는“우리는 악몽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일이 끔찍하지 않은 척, 고통스럽지 않은 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나쁜 일들을 예쁜 희망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소리없이 찾아온 질병을 견뎌야 하는 제게 고통스러울 땐 충분히 고통스러워해도 된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와 비슷하게 몸이 아파 고생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큰 고통 앞에선?
돌봐주는 가족이 있고,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면 몸이 아픈 것은 견딜 만한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만약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고통스러운 사건의 당사자가 된다면? 이런 고통과 상실감 앞에서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테러,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를 사례로 들며 살아가는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저자의 물음에 우리 국민들이 겪어 온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최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철거되었다는 소식에 유가족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사 후 간절히 원했던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우리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또 여전히 고통속에 있을 유가족들에게 ‘잊지않겠습니다’라는 말 말고 내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됩니다.
“고통과 마주한 우리 대부분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다. 우리는 커다란 고통과 절망에 빠진 그들을 억지로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 옆에 앉아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같이 느낀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자비로운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반자가 되려면 우리는 ‘해야만 한다고’생각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며, ‘우리’가 고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그저 견디며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본문 인용)
앤 라모트의 이 말에서 ‘기억’이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합니다. 참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구축이라는 운동에 힘을 보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고통의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유가족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는 없을 것이지만, 마련된 공간 속에서 그 시간을 버텨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문득,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질병, 참사 등을 겪지 않아도 삶이 버거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가 희미해져 버릴 때 한없이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무엇에서, 어디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할 지 모른 채 그저 하루가 또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음을 앤 라모트는 말합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마음이나 존재, 인격을 충만하게 해주는 진실만이 우리를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이 좋은 성적이나 일자리를 얻으려고, 가장 좋은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려고, 몸무게를 줄이려고 열심히 쳇바퀴만 돌렸던 까닭은 바로 이래서다.”(본문 인용)
인생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묻게 되는 시기를 한번 쯤은 반드시 겪게 될텐데 이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앤 라모트는 조금 다른 접근 방법을 제안합니다.
자기 내면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자기만의 슬픔이나 상처에 빠져 세상에서 자기만 불행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들’에 눈을 돌려볼 것을 제안합니다. 나 아닌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보고, 미술, 음악 등 창의적인 활동을 해 보고, 자연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고, 때로는 달콤한 간식 먹기에 집중해 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 존재를 충만하게 해 주는 진실을 '지금 하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아이의 웃음, 엄마와 함께 나눈 일상적인 대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지난 봄 심었던 씨앗에서 튼 작은 싹.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슬픈 날도 주고, 기쁜 날도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가 당신에게 가장 큰 의미다. 의미는 집중하기, 주목하기, 관심 갖기에 있다. (중략) 내가 있는 그 자리, 그 순간에 벌어지는 것들에 마음을 주고 눈길을 주는 것, 그 속에서 나와 함께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간직하는 것.”(본문 인용)
저 개인적으로는 몸이 아파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 보고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가 써놓은 이야기들을 통해 어느 정도 끝이 보이는 몸의 고통을 버티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조금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끊임 없이 일어나는 사회적 참사와 그 당사자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회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
‘나쁜 날들’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어떤’ 사람들은 고통의 시간을 지나가는 데 조금의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를 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재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책은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버티며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조금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