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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 stem cell Oct 23. 2019

10년 후 나의 미래들이 사라졌다

저기 멀리 소실점을 향해가다가 소실되는게 운명일지도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고 회사도 매년 경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데 여전히 신입사원은 들어온다. 그것도 이전보다 많이. 아마도 우리 부서에서 하는 일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도 내가 속해 있는 부서를 요즘처럼 밀어줬던 적이 없었다.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옮겨오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예전엔 새로운 직원이 오면 각 팀을 돌면서 부서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얼굴과 이름을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지금도 인사를 하지만 새로운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가기에 얼굴과 이름을 익히기 쉽지 않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어느 날인가부터 부서에 새로 배치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필이 메일로 오기 시작했다.

소개자료에는 새로 온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간략한 인적사항, 취미활동, 최근 관심사 등이 파워포인트 한 장에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기존 직원들 입장에서야 신입 직원들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어 좋겠지만 왜 소개를 새로 온 사람만 해야하나? 이런 소개 방식은 너무 고루하다. 소개 방식도 그랬지만 그 양식에서도 고루한 냄새가 폴폴 풍겼다.

이 양식을 보고 더 구닥다리같다 생각한 건 ‘포부’라는 칸 때문이었다. 새로 온 분들이 적은 포부들을 읽으며 10여 년 전에 입사지원서를 쓸 때 봤던 ‘입사후 포부’가 떠올랐다. 내가 그때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었나 이제는 희미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일 때 말하는 ‘꿈’만큼 화려하진 않았겠지만 아마도 성공한 임원 정도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땐 몰랐다.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고만고만한 직장인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인생이 될 줄은. 회사에서 교육 같은델 가면 10년 후 나의 미래를 그려보라고들 했다. 입사할 땐 그나마 상상이라도 마음껏 했는데 이젠 그렇게 되지 않는다. 회사에서의 수명을 고려할 때 대략 절반 정도를 지내고 나니 내게 미래라는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입사 후 나름의 포부를 품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 포부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마저도 온전히 이뤄진 꿈은 아니고 많은 희생을 치루고 얻어낸 성공일 것이리라. 임원 트랙을 달려가는 소수를 제외한 나같은 일반 직원들은 사실 입사해서부터 자신의 미래들과 함께 회사생활을 하게 된다.

입사했을 때 한없이 커보였던 선배들이 앉았던 자리에 내가 앉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회사는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전통적인 회사여서 사무실 자리를 연차나 직급 순으로 배치했었다. 복도쪽 맨 끝자리엔 사원, 그 다음으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이 차례로 앉았다. 내가 급에 맞지 않게 차,부장급 자리에 앉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신입사원일 때 내 자리 위쪽에 앉아 있던 선배들. 그들이 내 미래였다. 그땐 인정하기 싫었지만 난 이미 내 미래를 옆에 두고 살아왔던 것이다. 사원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을 하면서 사무실 자리는 한칸 한칸 올라갔다. 연봉도 조금 오르고 조금 더 중요해 보이는 일을 하게 됐다. 그만큼 나도 회사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회사도 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착각해선 안된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별 문제 없이 돌아간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더욱 그렇다.(이 부분에 확신이 들지 않는 분은 긴 휴가를 다녀오거나 휴직을 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함은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판단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나와는 다른 트랙을 달리고 있다. 그들을 나의 미래로 착각하지는 말자.

내 미래는 내 옆자리에 있는 바로 그 선배들이다. 회사에 있는 동안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내 자리도 같이 올라가는데 그럼 그 위에 앉아 있던 내 미래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내가 입사한 후부터 10여 년이 지나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회사는 자리를 그만큼 늘려주지는 않았다. 이제 난 내 미래들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있다.

내 옆에서 살아가던 내 미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같은 후배들이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한칸 한칸 차지할 때마다 그들은 한칸 한칸 자리를 내주며 선배의 선배들이 앉았던 자리를 차지했다. 선배들은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도 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기도 하고, 공부를 더 하러 떠나기도 했지만 소식없이 사라진 이들도 있다.



이젠 두 손으로 꼽을 만큼의 선배들만이 남아 있다. 그마저도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바라기는 나의 미래인 그들이 정년을 채우고 그동안 고생했다는 인사를 받으며 떠나가면 좋겠다. 하지만 회사는 조직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 없이 나이든 이들을 처분하고 싶어한다. 해고를 할 수는 없으니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며 조직의 노화를 막기 위해 애쓴다.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정년까지 일하다가 회사 인생을 마무리하면 되는 것이 일반 직원들의 트랙인 줄 알았다. 그러나 민간기업에서 절반 정도 회사 인생을 살면서 정년퇴직이라는 트랙도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주는 존재가 되는 임원 트랙만큼이나 희소한 것이란 걸 현실로 경험하고 있다. 회사는 끊임없이 내 미래들을 지워나가고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원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저 멀리 있는 소실점을 그리곤 한다. 회사에서 10년 후 내 미래가 담긴 풍경화를 그려보려고 했더니 어느 새 난 그 소실점에 꽤 가까이 와 있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나의 많은 미래들이 그 소실점에 이르기도 전에 사라져갔다는 것도 함께. 회사 인생이란 저 멀리 있는 소실점(vanishing point)을 향해 가다 사라지는(vanishing)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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