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커 J.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교육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어 오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해법을 찾지는 못했다. 파커 파머는 그동안의 교육 문제 논의에서 가르치는 주체인 '교사'가 배제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30년 동안 몸 담았던 교육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지속되어 온 교육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교사들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자아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교육에서도 지성, 감성, 영성의 세 가지 측면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성은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뜻한다. 사람들이 알고 배우는 방법에 대한개념, 학생과 학과의 본질에 대한 개념의 구체적인 내용과 형태를 뜻한다. 감성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와 학생들이 느끼는 방식을 말한다. 교사와 학생 간의 교감을 증진시키기도 하고 위축시키기도 하는 그런 느낌을 뜻한다. 영성은 삶의 장엄함에 연결되려는 가슴속 동경이 다양하게 표현되는 방식을 뜻한다. 사랑과 노동을 촉진시키는 동경, 특히 가르침이라는 노동을 촉진시키는 동경을 뜻한다." (39쪽)
저자의 접근 방법은 대한민국에서도 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는 데 매우 타당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가르침 역시 인간, 즉 교사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에 자신을 아는 것은 훌륭한 가르침의 기반이 될 것이다. 학생들만큼이나 요즘의 교사들 역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마주하지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들이 자신의 자아를 만나게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 생각한다. 파커 파머는 교육을 바꾸기 위해 교육제도 변화에 천착하기보다는 '교사의 자아의식'에 고집스러울 정도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훌륭한 가르침은 하나의 테크닉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이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정체성은 한 사람의 삶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자신의 본성, 부모의 영향, 성장한 문화, 만났던 사람들, 자신의 행동들, 사랑과 고통의 경험 등-이 함께 만나는 지점이고, 성실성은 한 사람의 온전성을 끄집어 내고 파편화와 죽음 대신 생명을 가져오는 힘들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저자가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동안 훌륭한 교사들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그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학생과 배워야 할 것을 촘촘히 연결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교사들은 때때로 여러가지 이유로 교직에 투신하며 처음에 가졌던 열정을 잃게 되는데, 저자는 이 때 영감을 받았던 스승을 생각해 보고 매력을 느꼈던 배움의 경험을 기억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일종의 명상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고독과 침묵, 명상적인 독서와 숲 속 산책, 일기 쓰기,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 찾기 등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제안하고 있다.
파커 파머는 훌륭한 가르침의 핵심이 되는 상호연결성-교사와 학생, 학생과 배움의 대상 등-을 방해하는 일차적인 이유로 학점, 학과, 지나친 경쟁, 관료적 교육제도와 같은 외부 구조가 우리들 내면에 공포를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이것은 우리가 제도적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학생들은 교사와의 생생한 만남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노트와 침묵 뒤로 숨으며,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생생한 만남을 피하기 위해 교단, 경력, 권위 뒤로 몸을 숨긴다.
교사들은 또 교사들과의 생생한 만남을 피하기 의해 자신의 전공 분야로 몸을 가린다. 또한 교사와 학생은 생생한 만남을 피하기 의해 객관성의 허울 뒤로 숨어버린다.자기 자신과의 생생한 만남을 피하기 위해 자기 소외의 기술을 배우고 또 분열된 생활을 지속하는 방법을 배운다.(92-93쪽) 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우리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능력을 공포가 막아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실에서 가지게 될 수 있는 두려움에 대해 저자는 실제적인 예들을 제시하고 있어 이러한 것들은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상태를 어떻게 부정적으로 진단을 내리는지, 마치 지옥에서 온 것만 같은 학생들을 만났을 때 교사들은 어떤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와 그들의 진짜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평가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차 있는 교사들의 마음은 어떠한 것인지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또한,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론 측면에서도 논의를 이어가는데 과거 지배적이었던 객관론과 주관적 관점의 장단점 및 한계를 말해 주고 진정한 지식의 추구가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
"지식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타자와의 일체감을 이루는 방식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자꾸만 달아나는 실체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지식은 관계를 추구하는 인간적인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만남과 교류를 경험하게 되는 방식이다. 가장 깊이 있는 수준에서 볼 때, 지식은 언제나 상호연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119쪽)
저자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공포를 느끼기는 하겠지만 이 때 필요한 것은 공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행동을 취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역설적 존재인데 우리의 교육 제도는 인간의 이러한 역설적 본질을 담아내지 못하도록 해 왔음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가르침의 공간에 적용할 수 있는 6가지 역설을 제시한 후 이를 실천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교사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 공간은 제한적이면서 개방적이어야 한다.
2. 공간은 다정하면서도 긴장되어야 한다.
3. 공간은 개인과 집단의 목소리를 동시에 수용해야 한다.
4. 공간은 학생의 작은 얘기와 강제와 전통의 큰 얘기를 동시에 존중해야 한다.
5. 공간은 고독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일체감을 부여해야 한다.
6. 공간은 침묵과 언어를 동시에 환영해야 한다.
이들 목록에 대해 좀 더 상세히 기술한 후 저자는 이러한 역설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릴케의 말을 빌려서 해준다.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를 가지십시오. 모순 그 자체를 사랑해 보도록 하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금으로서는 그 해답을 살아 낼 수 없으므로 지금 당장 해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살아 보는 것입니다. 지금 그 모순들을 살아 보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당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역설을 견디게 해 줄 것입니다."(169-170쪽)
있을 수 있는 교실의 문제들에 대해 논의 후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온전한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나는 진정한 교육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과거에 유지되어 오던 커뮤니티 모델들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이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진리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제안한다.
저자가 말한 진리의 커뮤니티는 상호작용적이고 역동적이다. 여기서는 경쟁이 아니라 갈등을 통해 지식을 촉진하게 되는데 갈등은 개방적이고 야생적이어서 모두가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책에 따르면 갈등은 공개된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역동적인 장이고, 서로를 격려하고 세계 인식을 폭넓게 해주는 공동의 노력이다. 진리 속에 머물기 위해서 우리는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열정과 질서 속에서 관찰하고 반성하고 발언하고 경청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교사의 역할은 훌륭한 가르침이 일어나는 진리의 커뮤니티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저자가 '위대한 사물'이라고 칭한 '주제'가 중심이 되도록 교육 현장을 꾸며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제 중심 교실에서는 아주 실제적이고 생생하고 뚜렷한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교사와 학생들은 주제에 깊이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이 때 교사들은 자신들의 지식 혹은 정보로 교실을 채우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적절한 테크닉으로는 중요한 몇 가지 샘플을 통해 목표로 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참여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같은 진리의 커뮤니티는 실제 교육 현장에서 효력이 있었음을 저자는 실제 사례를 통해 증명한다. 진리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한 저자의 조언들을 교사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으며, 그들의 실제 교실에서 사용해보는 것은 무너진 교육 현장을 세우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앞서 논의된 어찌보면 이상적으로 들리는 여러 사항들을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하도록 하는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인가를 논한다. 대한민국에도 동일한 문제제기와 여러 가지 노력들이 있어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비전과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었음에도 기존 제도권의 저항, 사람들의 인식 등에 의해 우리가 체감하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한 변화를 이뤄냈던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 운동의 발전 경향에서 배울점을 찾아야한다. 우리는 이 변화의 단계들을 곱씹으면서 스스로를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떠한 단계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파커 파머는 말한다.
"대부분의 운동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뿐이다. 그렇지만 운동은 조직의 논리를 바꾸어 놓는 힘을 갖고 있다. 보통 제도권이 특정 활동 분야의 보상체계를 통제하는 한 그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삶에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도권의 통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인 보상 제도를 주장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제도권의 힘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제도권은 그 운동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또 자신들이 사람들의 삶과 무관한 기관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변화의 필요성에 눈뜨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조직이 개혁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제공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잘못된 위안을 얻는다. 그러다가 그 길이 봉쇄되면, 우리는 화를 벌컥 내면서 우리 바깥에 있는 외부적인 요인 탓으로 돌린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삶의 모험을 선택하기보다는 희망 없는 상태로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새로운 삶이 가능하면 신이 알아서 해 주겠지!'하고 체념하는 것이다. 학자들이 이런 '죽음의 소망'에 휘둘리는 것은 그리 이례적인 일도 아니다. 학자들 중에 일부 이상주의적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운동에 대한 가장 맹렬한 저항은 한 번 싸움에서 패하여 두 번째 싸움을 두려워하는 겁먹은 이상주의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