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는 짧은 호흡의 글과 대화, 그리고 독백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헤밍웨이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등장인물인 노인 '산티아고'의 모습에는 헤밍웨이 자신이 어느 정도는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무명 작가 시절의 빠듯했던 삶, 전쟁, 각종 사고 등 인생의 많은 굴곡들을 지나왔던 자신의 경험을 노년이지만 여전히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노인 어부에 덧씌운 것처럼 느껴진다.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나 사랑을 했고 또 헤어졌던 헤밍웨이였지만 세상과의 싸움에선 작품속의 노인처럼 혼자 만의 고독과 외로움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거의 세 달 동안이나 제대로 된 손맛을 보지 못한 나이 든 어부 산티아고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고기를 낚기 위해 바다에 배를 띄운다. 먼 바다로 나가다가 드디어 만난 카다란 물고기. 산티아고는 거대한 물고기와 며칠 밤낮을 사투를 벌이다시피 해서 결국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월척을 낚는 데 성공한다.
힘 센 물고기가 끌어당기는 낚시줄에 손을 베이고, 물고기의 힘에 못이겨 뱃머리까지 끌려가 얼굴이 쳐박히기도 하고,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탈진한 상태가 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고야 만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한 가운데에서 자신을 지켜봐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불굴의 의지로 물고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산티아고에게 이 물고기와의 싸움은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인간이 역경을 얼마나 잘 견뎌낼 수 있는지'에 대한 증명이다. 자신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수 천번을 증명해왔지만' 이 물고기와 맞선 지금에서는 과거의 성취들은 무의미한 것 같았다고 노인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노인은 과거의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또 다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노년에 접어들게 되면 산티아고 할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 같다. 젊은 시절엔 무엇을 하든 나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힘이 있고, 의지가 충만하기에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맞설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매일 매일 일상의 작고 소소한 사건들에서조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산티아고는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노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지금 스스로에게 자신을 증명해내야 했던 것이리라.
물고기와 싸움을 힘겹게 끝내고 나서 승리를 맛본 것도 잠시 노인은 상어라는 넘을 수 없어 보이는, 그리고 실제로 넘을 수 없었던 역경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때에도 자신이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산티아고는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지", "싸우는 거야. 죽을 때까지 싸우는거야"라고 말하며 상어들에 맞서 싸운다.
헤밍웨이는 인간이 가진 굽힘없는 의지를 산티아고를 통해 표현했지만, 동시에 그러한 인간들이 가진 고독함과 외로움도 노인과 소년의 관계를 통해 적절히 녹여냈다. 물고기를 잡으면서, 물고기를 상어들로부터 지키려고 애를 쓰면서 노인은 바다와 대화를 하기는 하지만, 진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깊이 깨닫는다.
헤밍웨이는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인간, 동시에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여서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한 인간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온통 악조건뿐인 상황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였던 산티아고를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였던 노인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2015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 겹쳐진다. 백혈병으로 어린 자녀를 잃은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 권력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해왔던 고 황유미씨 아버님에서부터 힙겹게 농성을 벌여오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 대한민국의 총체적 문제로 인해 억울하게 가족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세월호 유족들의 모습이 산티아고 할아버지와 겹쳐진다.
우리 사회에서 오래도록 외로운 싸움을 해오고 있는 분들이 정말로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노인에게 소년이 있었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힘겨운 싸움을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최근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야 하겠다.
노인과 바다는 너무나 유명해서 내용도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헤밍웨이의 특징적인 간결한 문체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그런지 산문임에도 시를 읽을 때처럼 리듬감을 가지고 읽게 된다.
또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헤밍웨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은 더 상세히 알 수 있었던 책을 읽은 뒤라서 그런지 작품 속의 노인의 모습에서 저자 자신의 모습이 이전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몇 년이 지난 뒤에 다시 이 작품을 읽게 된다면 또 어떤 생각과 느낌이 전해질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와 같은 점이 오랫 동안 읽히는 작품들이 가진 매력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