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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 stem cell Mar 08. 2018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 공감할 줄 모르는 사회

김동춘 <대한민국 잔혹사>

밀양, 제주 강정 마을, 백남기 씨 등 최근까지도(2016년) 우리는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어째서 국가 권력의 기반이 되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국가에 의해 가혹할 정도의 폭력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또 왜 우리 사회는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에 이리도 둔감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답을 구하다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 잔혹사>를 뒤늦게 만났다. 김동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 정의롭지 않은 국가 권력에 의한 잔인한 폭력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단죄하고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에 현재까지도 행해지는 국가폭력의 근원이 있다고 보았다.
 
우리 사회에 정의로운 권력이 사라진 이유
 
우리는 힘이 곧 정의였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지내오면서 정의로운 자들이 불행해지는 시대를 살아왔다. 이 시대엔 정의롭지 못한 국가 권력이 국민들에게 드러내놓고 직접 폭력을 행사했다. 가혹한 시절이 지나고 민주화를 얻어낸 이후에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자, 자본 등 강자에 편파적인 국가 권력기관들이 정의로운 자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정의롭지 않은 힘을 존경하지는 않았지만 생존을 위해 그 힘에 복종해 왔다. 관심, 공감, 연대를 통해 옮음을 추구해 볼 수도 있었으련만 국가폭력의 거대한 힘은 저항하는 자들을 손쉽게 억눌러 왔다. 국가를 위해 명령에 복종한다는 정당화 아래 고문, 학살도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잔혹한 동조자들이 오히려 득세하는 경험은 우리 사회에 무기력함을 더해왔다.
 
독재, 군사 정권 하에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거나 국가범죄와 내부 비리를 말하는 이들은 가혹한 처벌을 당했지만, 태연히 복종 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은 출세해 왔다. 저자는 해방 후에도 항일 운동가들은 죽음을 당하고 해방 후엔 좌익 딱지가 붙어 고통받고, 친일 밀정과 경찰들은 유지가 되었던 과거 장면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행의 역사를 보여 준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비리가 일상화되었으며, 사욕에 찌는 기회주의자와 출세주의자가 공적 대의에 헌신한 사람들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지적한다. 포악한 권력 앞에 저항하던 이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 했던 정부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이런 사회에서는 국가 폭력이 사회 폭력으로 전이되는 양상이 나타나 사회에 폭력이 창궐하게 된다.
 
대표적인 국가 폭력 사례들
 
이명박 정부 시절 쌍용차와 용산 철거민 사태를 기억하는가? 저자는 시민의 안전에는 무관심하고 시위 진압엔 잔혹하고 강경했던 경찰들의 모습을 빨치산 토벌대와 대비시킴으로써 최근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국가폭력 동조자들을 비판한다. 파업현장에 용역 폭력배를 고용하는 모습은 반공시대 서북청년단을 연상시키며, 장악한 언론을 통해 이어지는 종북 때려잡기 프레임은 공산당 때려잡기와 겹쳐진다.
 
저자는 계속해서 박정희가 약탈한 정수 장학회와 같이 사유재산을 강탈했던 국가 권력의 역사적 사례를 언급하고,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현재의(2016년) 권력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점을 유지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5.16 쿠데타를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당시 행해졌던 각종 조작 살해/탄압 사건들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국가 기관이 직접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지만 사법부는 각종 정치재판을 통해 폭력을 행사해 왔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그랬고, 미네르바 재판이 그러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최대 게이트였던 국가 수사기관을 사적 용도로 활용했던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고문 전문가였던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하고 고문을 당했던 당사자 김근태 선생은 후유증을 겪다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죄인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도 권력자와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정치 재판을 일삼고 있는 판사들, 상부의 지시라는 정당화 속에 평화적 시위에서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찰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권력의 시중 노릇을 자처하는 국정원 직원들 등 우리 사회에는 책임을 물어야 하는 동조자들이 여전히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정의로운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김동춘 교수는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에 더해 우리는 심각한 국가 폭력이 만연해도 책임자를 찾아 죄과를 묻거나 사죄하도록 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오늘 날 한국사회가 이토록 망가져 버린 것이리라. 잔혹한 역사를 여전히 살아내고 있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와 조력자들, 그리고 대중의 침묵 혹은 동조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저자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앞의 두 세력은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각자가 사회의 변화를 위해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은 공감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나와 내 가족의 고통을 통해 다른 가족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공감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저자가 역설한 것처럼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애도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될 수 없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까지도 국가의 태만 앞에 가족을 잃은 세월호 유족들, 탄압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던 노동자들, 마지막 저항의 수단으로 망루로 철탑으로 올라가는 노동자들의 눈물을 본다.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데에서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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