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 <1984>
조지 오웰에게 1984란?
'빅브라더', 디스토피아, 그리고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 1984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젠 너무나 유명해져서 실제로는 잘 읽히지 않는 책들 중 하나가 된 조지 오웰의 1984. 이처럼 유명한 작품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건 어찌보면 의미 없는 시도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쓰여진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삶과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되어 읽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가 순전한 이기심(유명해지고 싶은 욕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84는 이 네 가지 이유가 고르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조지 오웰은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고, 소설로서의 예술성 또한 인정받았다. 자신이 처해 있던 전체주의 시대상을 반영해 역사적 의미도 얻었으며, 인류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반면교사를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의사표현도 충분히 했다.
이 작품엔 냉전 시대를 살아가던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 혹은 독재에 대한 관점이 녹아져 있다. 그는 전체주의가 극에 달한 사회는 절망적이고 비관적일 것이라 상상했다. 작품에서 빅브라더는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독재자를 신성시하고, 개인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 언론과 사상을 통제하며, 역사 날조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반대하는 이들은 가혹하게 탄압한다. 과거 독재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교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984는 절망적 독재상황에 대한 처절한 사고실험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의 런던에 거주하는 일반 당원 윈스턴 스미스는 나라의 보도, 연예, 예술 등을 관장하는 진리부에 속해 있다. 그의 주된 업무는 과거의 역사를 오로지 당을 위한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독재의 신성화를 위해 그는 없애버려야 하는 모든 책과 신문, 기록을 찾아내 정정해야 한다. 하지만 윈스턴은 당이 말하는 것과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독재자의 최면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윈스턴은 끊임 없이 수정되며 사라져가는 과거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현재의 당에 의한 혁명 이전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것에 윈스턴은 답답해 한다. 이런 그를 당은 끊임 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윈스턴은 이 감시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남몰래 일기를 쓰거나, 매춘부를 통해 성적 쾌락을 추구하거나, 줄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나눴던 사랑 등 그가 행했던 일탈들은 결국 모두 감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브라이언이라는 핵심당원은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윈스턴을 교묘한 방식으로 유도한 후 체포해 극심한 고통을 가하며 그의 정신을 '치료'하고자 한다. 윈스턴은 "그놈들은 우리의 감정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그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 사상을 모조리 캐낸다 해도 깊은 속 마음,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신비로운 마음은 그들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당의 입장에서 윈스턴은 ‘견본에 생긴 긁힌 자국’이었으며 ‘지워야 할 흠집’일 뿐이었다. 오브라이언은 지독한 고문을 통해 윈스턴이 가진 의심과 불신이 근본부터 바뀌도록 마음까지 개조하고자 한다. 결국 그는 당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항복하고 만다. 마지막 발악으로 빅브라더에 대한 증오를 말하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이용한 위협에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깨끗하게 정신이 개조된 후 윈스턴은 총살을 당하고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조지 오웰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극단적 상황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이 얼토당토 않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소설 속의 빅브라더처럼 오직 권력 자체를 위해 권력을 추구했던 여러 악당들을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올바른 가치관을 파괴했고 동족들 사이의 유대감을 실종시켜 버렸다. 온전히 권력에 집착해 자신들만의 영원한 제국을 세우길 원했던 독재자들에게도 우리는 여전히 전 대통령이란 호칭을 부여하고 있다.
디스토피아에서 찾은 희망의 실마리
1984의 독재 권력 하에 살았던 윈스턴은 살아서 자유를 누리지는 못했다. 승리한 것은 빅브라더였고, 인간의 정신 마저도 가혹한 고통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철저한 통제와 폭압 속에서 독재 권력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이 디스토피아를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지오웰은 독재권력이 유지되는 이유가 사상통제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의구심 없이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의문이 들었을 때 그것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이유를 물어가는 ‘미친 사람’들이 역사속에서 간혹 나타났다. 현실에선 간혹가다 나타나는 이 미친 사람들에 의해 촉발된 분노로 독재자들은 무너져 왔다.
윈스턴은 억압받는 대중에 의해 독재를 타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대중들의 분노가 자신들의 생을 유지하기 위한 사소한 것들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일들, 즉 과거를 지우려하고, 자유를 제한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들에 대해 울부짖어야 한다. 이와 같은 대중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임을 기억하고 두려움에 맞선다면 독재권력 하에서도 희망은 있다.
독재자들이 원하는 것은 대중에게서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는 것이다. 대중들이 사색에 빠지지 않게 하면 권력은 영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떻게 과거를 바꾸려고 하는지, 어떤 객관적 사실들을 숨기려고 하는지, 권력자들의 행동이 무엇을 위함인지 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면 안된다.
사색에 있어 중요한 건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다. 윈스턴에게 이러한 공간을 제공했던 상점 주인의 말은 그래서 값지다. “사생활이란 참 값진거야. 누구나 가끔 혼자만의 공간에 있고 싶어 하거든. 그런 장소는 남한테 절대 말해서는 안 되지. 그래야 하는 법이야.”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다. 모두가 독재 권력의 거짓말을 믿어 버리게 되면 그게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된다. 너무나 유명한 이 한 문장은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
우리 역사도 두 번의 보수 정권을 거치며 심각하게 훼손/왜곡되고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부단히 자신들의 폐부를 가리려 하는 권력자들의 문제를 줄기차게 말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희망의 끈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