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은 축알못 여자도 들뜨게 한다 ㅋㅋㅋ 축구직관기
런던에서 지냈던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축구는 언제 보러 가?" 였다. 제발 대리만족이라도 얻게 나 대신 빨리 EPL을 보러 가라는 남자지인들은 그렇다치고, 월드컵도 보지 않는 여자지인들도 손흥민이 토트넘 소속이라는 것 쯤은 다 알고 있었다.
나도 오기전에는 축구경기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뮤지컬과 같은 것이라고 만만하게 여겼으나, 막상 살다보니 이것저것 우선순위에 밀려 축구 경기장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표 가격 또한 자주보기엔 사실 만만한 금액은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젠 정말 축구를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 역시 아들 때문이다. 예전엔 축구에 그 어떤 흥미도 전혀 없었던 아들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기점으로 완전한 축구팬이 되었다. 이름난 구단과 선수들을 줄줄 외며 학교든 집이든 틈만나면 공을 차는 아들을 위해 남편이 부랴부랴 티켓을 검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 멤버쉽에 가입한 후 틈틈히 경기마다 표를 구하려고 했지만, 유명가수 콘서트 티켓팅을 하는것처럼 좋은 좌석에 저렴한 가격의 표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매진되어 생각만큼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저찌해서 5월 6일 토트넘 VS 크리스털 팔래스 경기를 겨우 예매할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우리 세식구 연석을 구하진 못했고 일단 두자리 연석을 구한 후 한자리는 좀 떨어진 위치의 좌석을 구했다.
홈경기라 토트넘 구장이 있는 Seven sisters역으로 갔더니 벌써부터 그 주변은 경기를 보러가는 관중들로 북적북적했다. 다들 경기장으로 가는 터라 인파를 따라 걷다보면 경기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전광판에 소개되는데, 손흥민은 토트넘 핵심선수답게 맨 마지막으로 소개된 케인 바로 앞에 소개된다. 관중들이 엄청나게 환호해 주었는데 이것은 마치 나를 향한 환호처럼 느껴졌달까.... ㅋㅋ 중학교 도덕시간에 배웠던 민족성의 유대감이란 이런것이구나 하는걸 나는 런던와서 자주 깨닫곤 한다.
옆사람과 같이 응원하며 경기를 보는 것도 현장 직관으로만 느껴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손흥민 선수가 공을 잡을때마다 옆에 앉은 영국인과 같이 쏘니를 외치며 흥분했는데 이게 은근 스릴(?) 있었다고 해야하나 ㅋㅋ 내가 앉은 좌석은 그나마 얌전하게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었고 내 자리 기준 왼편의 관중석은 정말 100분 내내 거의 앉지않고 서서 격렬하게 응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좌석이었다. 때마다 다양한 응원가를 부르기도 하고 전반 막바지에 케인이 골을 넣자 케인을 위한 응원가도 열심히 불러댔다.
손흥민 선수 얼굴이나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갔던 축구 직관. 결코 저렴하지 않은 비용을 치르고 얻은 경험이었지만 우리 세식구는 충분히 가치있던 소비였다며 다들 만족해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왜 그렇게 유럽진출을 소망하는지 느낄수 있었던 경기였지만 어쨌든 모든 이유를 다 차치하고 저곳에 손흥민 선수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던 직관이었다. 샵의 진열장을 가득 채운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만 동나고(물론 한국인 관광객의 소비도 일조했음 ㅋㅋ), 샵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한국어에 손흥민 선수 사인액자를 사들고 집으로 가던 영국 어린이의 모습을 보며 한국인 선수가 EPL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지금 이 시기가 새삼스레 실감이 나지 않던 날이기도 했다.
아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뮤지컬 말고 대신 축구경기를 더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에 어쩔수 없이 동의하게 되었던 날.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또 한번 경기장을 찾아야지. 그때는 손흥민 선수의 응원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질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