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내가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여리더라고.
시모와의 이별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일을 대면하기 버거움에 많은 상황들을 회피했지만, 1년이 넘게 지난 오늘도 많은 눈빛들이 떠오르며 울컥한다.
결혼한 지 15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시가 식구들이 낯설고 쉽지 않다. 속마음을 보이면 수치스럽고 솔직하기엔 부담스러운 관계들 속에서, 어떤 문제를 웃어넘기며 풀어가는 방법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몹시 죄송하게도, 시모와의 이별 가운데 엄마, 아빠와 이별하게 될 순간을 떠올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앞으로 이별하게 될 많은 순간들에 앞서 두렵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알게 되는 것은 불행 중 하나라고 했거늘. 나이와는 상관없이 알게 되는 죽음과의 대면, 그건 그냥 불행이었다.
육아를 끝내자마자 입시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동동거리는 육아를 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가 이렇게 빨리 크고 나와 내 부모가 이렇게 빨리 나이 먹을 거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놀고, 웃고, 즐기며 함께 보냈을 텐데.
시가 식구들의 싸늘한 눈빛도 의미 두지 않고 웃어넘기며 잘 지내보려 노력을 했었을 텐데.
후회하지 않기 위해 참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은 남기 마련인가 보다.
무엇이든, 절충에 대한 접점은 찾기 어렵다.
노후를 준비하면서도 주변에 많이 베풀어야 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많이 놀아야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즐기되 건강을 지켜야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되 적정한 거리를 둬야 하고.
열심히 보람된 하루를 보내되 잠은 푹 자야 하고.
포용하고 보듬어주되 강하게 홀로 서는 법도 가르쳐야 하고.
서로 의지하고 기대면서도,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적정한 거리를 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나는 그냥 사람이 좋다. 그 마음이 투명하게 소통되면 좋겠지만, 누군가에겐 왜곡이 되어 오해와 상처를 낳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그냥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산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단단하고 다부지게.
그리고 이름 없는 어느 신 앞에
소리 없이 간절한 기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