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냥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보다 다가올 일을 미리 단정 짓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 미리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이라 감사해야 하는 건가. 문득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라는 마음에 신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이제 나의 기도가 점점 편협해짐을겸손이라 여겨도 될까.
내가 생각하는 내 답이 인생에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알만한 나이이건만. 업무보조를 해주겠다 파견직으로 데려온 여자 사람 하나가 신경을 건드린다. 면접에서는 할 줄 안다고 말하던 기본적인 업무 소양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공들였던 몇몇 시간들에 후회가 밀려온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대학 4년을 보내는 동안 PPT에 직선 하나 똑바로 그려내지 못하는 서른 남짓의 사회 초년생에 대한 나의 배려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인내심이 바닥을 뚫고 내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 보여야 하나. 나에게 붙은 책임감이라는 딱지에 그 여자 사람의 무책임감이 붙어있다. 배려와 친절을 호구로 대하는 순간, 그것을 버리는 것은 단 1초에 불과하다.
저녁밥 준비를 해야 하는데 문득 설움이 몰려온다.
무얼 먹어야 하나 고민 없이 차려진 밥이 언제부터 없었던가. 내 앞에 놓일 음식 말고, 다른 사람(심지어는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님까지도) 밥을 더 걱정하는 일들이 언젠가부턴 일상의 절반이 되어버렸다. 엄마도 평생 그런 마음으로 사셨을까.나는 배달 찬스라도 있는데 우리 엄만 어떻게 살아왔을까. 아니, 이런 시간마저도 그리울 날들을 위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저녁밥을 준비해본다. 오늘은 산채나물밥과 가지무침, 훈제오리 마늘구이를 준비했다. 땀이 솟구치지만탁한 공기를 가둘 수는 없으니, 밥을 다 하고 나서야 문을 닫고 에어컨을 돌린다.
아이가 돌아와 맛있게 먹어주면 또다시 웃음이 난다.
맞다. 내 본업은 엄마다.
오래된 밀폐용기들을 정리했다. 소모품은 수명이 다 하면 새것으로 교체해주기로 하고, 환경 호르몬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도록. 언제나 소비는 신중하게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