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씨는 "외로움은 나쁜 것이고 찌질한 사람들만 경험하는 건줄 알았는데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측면임을 알게 됐다. "고 했다. 진영씨는 이제 기천 씨와 모든 것을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함께할 것과 그러지 않을 것을 구분해야 함을 알게 됐다.
-그동안 진영 씨는 반쪽짜리 인생을 살았다. '외로움'과 '함께'는 동전의 양면이다. 외로움은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함께만 있으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단독자들이다. 서로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두 단독자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외로움이 너무 커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이것을 모르고 외로움 자체를 없애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기천 씨는 자기 속에 깊이 들어 있던 '자기중심적이고 거친 나'가 건드려지면 화가 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성을 찾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로 돌아와 '거친 나'를 비난했다.
기천씨는 새롭게 태어났다. 자신도 갈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화를 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화를 내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게 됐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과 안정감을 배우자를 통해 해결하려 했던 두 사람. 외로웠던 진영 씨는 기천 씨의 부드러움과 배려가 좋았다. 기천 씨가 섬세하게 신경 써줄 때마다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안이 조용하길 바라며 늘 불안하게 살았던 기천 씨는 진영씨의 알아서 하는 독립심이 좋았다. 진영 씨한테는 아버지나 형에게 처럼 전전긍긍하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실제로 배우자는 제2의 부모 역할을 하며 어린 시절의 상처를 씻어줄 수 있다. 배우자의 사랑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던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한쪽이 건강한 감정 상태일 때 가능하다.
진영 씨가 푹 빠졌던 기천 씨의 부드러움과 배려는 건강한 마음 상태에서 태동한 것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발달된 눈치에서 바왔던 것이다. 기천 씨가 마음에 들어 했던 진영 씨의 알아서 자기 일을 하는 모습 역시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했던 몸부림이었다.
-서로에게서 각자의 바람이 만들어낸 허상을 보고 결혼했으니, 그 위에 지어진 집도 견고하지 않았다. 신혼이 지나고 아이를 낳으면서 결혼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각자가 피하고자 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는 상황이 잦아졌다. 진영 씨는 외로워졌고 기천 씨는 다시 불안해졌다.
진영 씨는 외로움을 직면하지 않으려고 화를 내기 시작했고, 기천 씨는 평소의 부드러움을 깨고 분노를 폭발시키며 본모습을 드러냈다. 부모에게서도 배우자에게서도 충족되지 않은 자기애의 욕구는 진영 씨에게는 우울증으로, 기천 씨에게는 외도로 변행됐고 이 시점에서 상담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