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대신해 죽을 수 있는가
약간, 그 말 뜻을 알 것 같다
이전부터 내 글을 봐온 독자님들은 알 것이다. 육아가 내게 얼마나 어렵고, 숙제같이 해내고 끝내야 할 과업으로 느꼈었는지.
어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아들 대신 죽어줄 수도 있겠다고.
누구보다 나를 끔찍이 아끼며 살아온 나에게 이건 엄청난 변화다.
나를 사랑하는 척도로 헌신과 봉사를 기준으로 삼았고 시력이 그리 좋지 않은 나는 엄마에게 왼쪽 눈을, 아이 아빠에게 오른쪽 눈을 받기로 약속받기도 했다.
(혹시 나 눈 잘못되면 눈 한쪽 줄 수 있어? 하고 농담 식으로 물었었다.)
이런 모성애가 자리잡기까지 9년이 좀 더 걸렸구나. 아들과 매일 나누는 사소한 대화가 참 좋다.
Ps 신기한 게 요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돌전후 아이들이 참 예쁘다. 우리 아들도 정말 예뻤었는데 온전히 교감하진 못했던듯 해서 많이 아쉽다.
많은 경험을 한 뒤 이즈음 애를 낳았으면 아이 키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원래 '남의 애'는 예쁜법이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