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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Mar 01. 2023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8년에 초판 1쇄를 찍었던 이 책, 지금과 달리진 건 무엇일까?

비우기 실천 중. 책장 속 가득한 책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책.

몇 년 만에 다시 읽는데 내용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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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이제 더 이상 어리광 피우지 말아! 이제 더 이상 어리광 피우지 말라구! 너 혼자서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니가 저질러 놓은 이 일들을 수습해. 그도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돌아가서 문제가 발생한 거기서 해결해!

_by 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_혜완의 대사



[기억나는 단어]

격정적 분노/적의/적개심/배신감/저 여자/불길한 예감/달뜨게 만들다/은폐의 대상/고향 같은 여자/지겨운 기분/겁을 먹은 눈동자/거부당한 인간들의 슬픈 반항심/이 아픔의 징후/서툰 방어벽/다급한 반말투/견딜 수 없는 치욕/번거로운 일상/대책 없는 낭만/ 적당한 연극/치졸한 연극/동지 같은 관계/형제 같은 관계



[기억나는 문장]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모르겠는 게 인간이야. 자고로 인간은 믿으면 안 되는 거라구." ( by 경혜의 말)


똑똑하다 해도,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해도, 세상의 온갖 지혜를 다 가졌다 해도 운명이 더 강해! 운명만큼 무서운 건 없어. (by 영선이 말)


"이상하게 혜완이 니가 자꾸 생각났어. 하지만 난 생각했어. 너랑 나랑은 비슷한 거 같지만 다른 게 하나 있어. 난 너와는 다르잖아. 영악하게 말하면 손익계산서를 따져봤지. 내가 이 정도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 이혼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아이는 뒷전이었어. 하지만 결론은 이거였어. 넌 연애해라 난 니가 벌어다 주는 돈이나 쓰면서 살지. 그러다 지치면 돌아오겠지. 안 돌아오면 또 어때? 이 세상 어느 부부가 사랑하면서 사니? 어차피 의사가 아니었다면 난 결코 그 사람하고 결혼 따윈 안 했을 거였고 치파 마찬가지지 뭐.... 그런 면에서 혜완이 넌 뭐랄까 용감하고 무모해. 너랑 나랑 다른 점은 바로 그거고."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하지 못하는 생각이 있을까. 스스로조차도 깜짝깜짝 놀랄 것을 해내지 않는가. 예전 같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일들, 이혼, 자살, 그리고 사랑 없이 남편과 살며 가끔 그를 살해하고 싶다고 느끼기.  


넌 절망에조차 이르지 못해. 바로 그것 때문에. 한번 자신을 팽개쳐봐. 그럼 뭔가를 다시 움켜잡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정말 소설을 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였으면서 그들은 완벽한 타인이었던 것이다.


이미 식어 버린 커피에 하얀 크림은 섞이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의 이해심도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착하고 약하고 선량한 사람이 더구나 여자일 때 혼자서 살기는 힘들어진다.


그녀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자 이제 사회를 알 수 있는 창구는 오직 남편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피곤해했다.


생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불어 닥치지 않았던가. 언제나 제멋대로 그녀가 어떤 준비로 하기 전에 생은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 다른 골목길로 내팽개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생이 그녀를 예까지 데려와 팽개쳐 버린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렇다고 해도…모든 것이 그녀의 손을 거쳐서 지나갔다. 선택은 어쨌든 그녀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선은 사소한 사건 하나에도 치명적으로 상처입을 만큼 약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걸 헤아리지 못한 것은 박 감독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영선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적어도, 적어도 착한 영선이를 그렇게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었다 단지 밥을 하고 뺄래를 하고 유학을 포기한 채 그의 뒷바라지를 한다고 해서 모두 이런 식으로 손상되지는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웃고 싶지 않을 때에도 웃어야 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는 일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극복해 냈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면, 환영처럼 견딤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그 불안정한 시기들을 견뎌야 하리라.


"나는 목욕탕 앞의 발닦개처럼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밟고 가도록 내버려 두었어.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말야, 난 누구보다 내가 똑똑하고 현명하고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는 여자라고 누가 물었다면 맹세라도 했었을 거야. 우습지 않니?" (by 영선)


지나치게 자기를 방어한다는 것은 그가 방어해야 할 그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다는 소리였다


영선이 결혼을 서둘러 결심한 건 어쩌면 그런 집안의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의 '탈출'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고 혜완은 그 후에도 가끔 생각하곤 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혼이 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할 수 없었지. 이 어미는 배운 것도 없었고 친정에 가봤자 내 처지가 어떻게 될지 뻔했으니까. 하지만 너희 세대는 다르잖니? (by  혜완 어머니)


딸한테 아비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사회에서 이혼한 여자가 혼자 산다는 건 보통일은 아니야. 막말로 노처녀 하고는 달라. 과부하고도 또 다르지. 나는 네 성격을 안다. 넌 너무 자존심이 강하지. 그런 너에게 그런 시선들을 감당하게 하느니 차라리 참고 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거다.  남녀 간의 사랑이란 건 아무리 길어야 3년이면 끝난다. 그 나머지는 모두가 인고의 세월이란다.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의 밥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선아 그건 너의 선택이었어. 네 말마따나 차선책이었어. 하지만 니가 그때 너무 쉽게 그렇게 니 공부를 포기했던 건 경솔했어. 알고 있잖아. 그렇게 자기를 포기해 버린 여자들이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차라리 돈이 떨어졌을 때 둘이 나가서 똑같이 일을 하고, 그리고 다시 똑같이 공부를 했어야 했어. 그런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야. 물론 그땐 왜 그랬는지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느날 니가 이혼을 하겠다고 내게 말했지. 니 일을 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할게. 그땐 질투가 났었어. 니가 밉다고 했지. 참고 살지. 다들 참고 사는데 서혜완 너 혼자 잘난 척하는 거 아니니.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하고도 싶었어. 나도 하고 싶어 혜완아. 하지만 니 모습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어. 가만히만 있었으면 너는 안정된 교수의 부인이 되어 있었을 텐데. 지금도 생각나. 방을 얻으려고 니가 내게 돈을 빌리러 왔을 때의 모습, 비가 왔었는데 유행 지난 레인코트를 입은 니 모습…살이 부러진 얇은 우산을 쓰고…미안해. 너는 초라해 보였어. 힘들어 보였구. 세상을 다 산 것처럼 누추해 보였어. 니가 돌아가고 났는데 왜 갑자기 우리 집이 그렇게 환하게 보였을까. 따뜻해 보이구. 우리의 아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졌어. (by 영선)


영선은 수줍은 듯했다. 미소를 띨 듯 말 듯 긴 파마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마도 아이를 낳기 전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인 듯했다. 아직 많이 불행해지기 전에, 아직은 무언가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시절, 아직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을 때 영선은 수줍게 웃었다.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재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모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그녀 자신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을 발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아야 했다.





[개정신판을 펴내며] _by 공지영


그쯤이면 지금으로 보아 꽤 특이하고 괴상한 젊은 날을 보낸 편인데도, 글쎄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그건 나를 그렇게까지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다. 혼자 흠모하며 흉내 내 볼 선각자들이 있었고 정리가 잘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교본들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되었을 때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다짐해 놓고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모성찬양은 언제나 남성들의 몫이거나 남성사회에 스스로 길들여지고 싶은 여성들의 몫이라는 어느 사회학자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좋은 엄마는 아니라는 자책감은 생리통보다 빈번하게 나를 덮쳤다. 어느 일본 작가의 말대로 남들의 눈만 아니면 다 내다 버리고 싶은 가족, 그것이 어미인 내게 가끔은 아이들일 때도 있었으니까.


"가정과 일, 아이와 자아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가 있을까, 엄마?"


"간단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자신의 일을 하려면(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려면) 누군가 뒤통수에 총을 겨누는 가운데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하고 택시를 타고도 늘 뛰어가고 있으면 돼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친밀감에의 욕구가 훨씬 더 강하다고 한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을 한 여성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그리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은 그 욕망의 선함을 나는 지지한다. 그러나 그 길은 남성들과는 달리 모두가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나 역시 돌아보면 인적 드문 길을 걸어왔다. 한때 후회도 했고 오래도록 울어도 보았으나 이제 담담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길이 꼭 외롭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내 친구, 안 보명 궁금하고 보고 싶어지는 그런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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