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신경을 쓰면 우울함이 끼어들 틈이 생기지 않습니다.
"한 벌의 옷을 고른다는 것은 생활을 고른다는 것이다."
일류란 눈에 띄는 멋을 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심합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이나 내가 모르는 세계를 누군가에게 배운다는 것은 결국 진화하고 심화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돈>을 쓰는가는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람은 <성장>함에 따라 돈을 쓰는 방식도 성장합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아했던 것에 흥미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에 투자한 시간이나 돈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히지만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하면 됩니다.
대충 사는 삶, 대충 맺는 인간관계, 대충 하는 일 이것이 지속되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활력이 하나도 없이 지칩니다. 결국은 '정성스러움'이 가장 편안합니다.
타고난 성격이나 성질은 평생 바뀌지 않습니다. 적절한 대처 방법을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배울 뿐입니다.
어른이 되면 그 재량은 자유입니다. 다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나'라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강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약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큰 목소리를 내거나 거친 말을 쓰면 나중에 반드시 깊은 자기혐오에 빠집니다.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고 있나요? 불만 투성이인가요?
지금의 나는 선택을 거듭해 온 결과입니다.
가능성이 많다는 것은 자신을 침울하게 만들 일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기를 지나면서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주저 없이 호의를 표합니다. '이거다'싶은 것은 고민하지 않고 삽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봅니다.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는 것이 실수로 저지른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82세가 되어서 깨달았습니다.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역경에 짓눌리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마음속 중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미 일어나 버린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의 해석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순간부터 과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혹한 조건이라 할지라도 인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로 승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생을 통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