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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 마시는 러시아 P세대가 국가 명령 따르는 Z세대로 바뀔 수 있을까 [임명묵의 MZ학 개론] - 시사저널 (sisajournal.com)
6월24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필자의 메신저 창에 불이 나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러시아의 PMC(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과 그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공유되었다. 그 후 사태의 전개는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어지러웠고, 필자는 몇몇 지인과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사태를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해 보고자 했다.
먼저 프리고진은 이번 우크라이나를 향한 ‘특수군사작전’의 대의 자체가 잘못되었으며, 러시아 국방부 장관인 세르게이 쇼이구가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며 남부 전선의 주요 도시인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했다. 여기서 프리고진은 국방부 차관과 면담했으나 협상은 결렬되었고, 그대로 북진을 시작해 모스크바 인근까지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바로 이 시점에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중재로 프리고진의 벨라루스 ‘망명’이라는 협상안이 타결되어 이 기이한 쿠데타가 종결되었다. 대체 이런 이상한 쿠데타는 어쩌다 일어난 것이며, 러시아 사회에는 어떠한 의미를 던지는 것일까.
바그너그룹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푸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그너그룹이 어떤 집단인지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바그너그룹은 2014년 프리고진이 창설한 민간군사기업, 즉 용병집단이다. 이들은 주로 러시아가 공식적인 경로를 우회해, 자국 바깥에서 군사활동을 펼치는 데 주로 활용되었다. 2014년 돈바스 전쟁과 시리아 내전에서 ‘데뷔’한 바그너는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의 분쟁 지역에 주로 참여하면서 주가를 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바그너 전체 대원은 몇천 명 수준이었고, 바그너그룹의 이름을 아는 이도 많지 않았다.
상황은 러시아가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바뀌었다. 바그너그룹이 전선 곳곳에 등장하며 우크라이나 도시를 점령해 갔다.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했음에도 바그너에 의지하고자 한 이유는 러시아 사회의 변화 때문이었다. 전장에 나가서 싸울 젊은이들의 심리가 소련 시절과는 달라진 것이다. ‘푸틴과 펩시’로 상징되는 러시아의 청년층 P세대는 분명 기성세대처럼 애국주의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푸틴’과 함께하는 애국은 ‘펩시’로 상징되는 서구식 소비문화를 즐길 수 있는 정치적 안정을 수반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도시 생활과 소비문화, 안락한 삶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가 구태여 전쟁, 그것도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리 없다.
전선에 끌려갈 청년층의 부모들도 문제다. 예전처럼 자녀를 여러 명 낳는 시대가 아니기에 전선의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전쟁, 나아가 정권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여론이 흔들리는 것이 필연이다. 푸틴도 이를 잘 알기에 그는 병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전선에 투입하는 전통적인 러시아식 전술을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이후에는 30만 명의 예비군을 징집하는 부분동원령을 발동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여전히 전면적인 전쟁이 아니라 ‘특수군사작전’이라 칭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에서 통솔하는 징집병은 주로 방어선에 배치되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러시아가 화력과 물자 면에서 우위에 있음에도, 침략당한 조국을 지킨다는 우크라이나군보다는 사기가 낮다. 자연스럽게 적극적인 공세 병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일단 전선을 지키는 방어 병력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고, 추가적인 전과 획득과 영토 확보를 확실히 해야만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때 푸틴이 공세 병력으로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 바그너그룹이었다. 전의와 사기가 높지 않은 일반적인 청년층 대신, 죽음을 항상 무릅써야 하는 위험한 전장에도 거리낌 없이 나갈 자원 병력을 공세에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용병집단의 주요 구성은 형기 감축을 조건으로 자원한 죄수와 바그너가 주는 높은 보수에 이끌린 자원병들이
푸틴, 청소년들에게 군사-영웅주의 주입
이들은 작년 여름 세베로도네츠크와 올해 초 바흐무트 같은 치열한 시가전에서 선전하며 전과를 올렸다. 화력 격차가 극심한 개활지 전투를 회피한 우크라이나군은 도시를 요새화해 농성했고, 바그너그룹에 막대한 피해를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프리고진은 자신들이 러시아군보다 더 중요한 작전을 수행하며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쇼이구 장관이나 총사령관 발레리 게라시모프를 비난했다. 러시아군이 바그너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포탄도 제대로 보급하지 않고, 작전을 아예 방해하고 있다고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해 계속 지적하기도 했다.
적어도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인 사이에서는 바그너그룹과 프리고진의 불평과 비난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며, 푸틴의 측근인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질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는 손실을 감수하며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모습을 미디어 선전을 통해 보여주며, 러시아 역사에 굉장히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군사-영웅주의를 자극했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특히 여론을 신경 써야 하는 푸틴과 러시아 국방부는 그러한 직접적인 승리의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바흐무트 전투 이후 국방부가 바그너그룹을 자신들 산하로 통제하려 하자, 프리고진은 큰 불만을 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이 연출하는 군사-영웅주의에 연호하는 러시아인들을 생각하며, 일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용병 대장인 자신이 러시아군 머리 위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프리고진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고, 시민들도 바그너그룹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자 반란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프리고진이 거대한 러시아군을 뒤집고자 반란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을 꺼리는 러시아의 새로운 세대 중에서 전장에 기꺼이 나서는 이들을 통솔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푸틴의 다음 행보, 혹은 이미 밟고 있는 행보도 읽어낼 수 있다. 영국 저술가 이언 가너는 얼마 전 《Z세대》라는 책을 출간했다. 여기서 Z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의미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이번 전쟁의 표식이 된 ‘Z’를 의미한다. 푸틴이 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새롭게 커나가는 청소년들에게도 군사-영웅주의를 주입하고, 그들을 정권에 충성하는 ‘전쟁 세대’로 키워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힙합을 듣고 펩시를 마시는 P세대를 러시아의 군사적 영광을 위해 기꺼이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Z세대로 바꾸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까? 그 결과에 따라 다른 나라들의 청년 세대도 군과 전쟁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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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상황은 우리나라라고 다르지는 않을듯 하다. 피흘리며 육탄전을 불사 했던 저 70여년전의 할아버지 시절의 전쟁터 이야기와 오늘날의 게임 처럼 이뤄지는 전쟁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 부대 내에서도 카톡과 치킨과 커피를 시켜 먹을수 있는 상황에서 군 부대의 규율과 명령이 얼마나 먹힐지도 미지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 나라를 위한 혹은 나라만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면, 현 세계사는 러시아의 젊은 층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젊은 세대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볼수 있다... 군 입대 전에 나 자신과 가족그리고 국가를 지키는 일에 기꺼이 전장터로 최전선에 나아가는 일을 감당 할 수 있겟느냐고 ,
푸틴의 러시아는 어쩌면 동양의 고전 삼국지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 프리고진 , 용병들의 통솔은 " 계륵" 과도 같다. Written by E HAN
별로 득이 되지 않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뜻하는 고사성어. 직역하면 '닭갈비'가 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리' 닭갈비[1]가 아니고 말 그대로 닭의 갈비뼈를 뜻한다. 닭의 갈비뼈 쪽 살은 닭다리처럼 부드럽고 쫄깃해 꽤 맛있지만, 갈비뼈의 구조상 살을 발라 먹으려면 손이 많이 가는데 정작 고기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치킨이나 백숙 등을 먹을 때 나오는 닭의 갈비뼈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고사는 이러한 특징에서 나왔다.
이와 관련된 고사는 진수(역사가)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무제기(武帝紀)의 배송지(裴松之) 주(注)에서 인용한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 나왔다.[2]출전(出典)
배송지 주석 《구주춘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때 왕이 환군하고자 하여 ‘계륵(雞肋-닭갈비)’이라는 영을 내리니 관속들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주부(主簿) 양수(楊脩)가 스스로 군장을 엄히 꾸리니 사람들이 놀라 양수에게 물었다,
“이를 어찌 알았습니까?”
양수가 말했다,
“무릇 계륵(雞肋)은 버리기에는 아깝고 먹기에는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 이를 한중(漢中)에 비유한 것이니 왕께서 환군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소이다.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덕조(德祖). 후한 말기의 중신인 양표의 아들로, 어머니는 원술의 누이인 양태위부인 원씨다. 사례 홍농군 화음현 출신. 오늘날에는 계륵의 당사자로 유명하다.
어린 나이부터 주부 벼슬을 지냈다. 아는 게 많고 언변이 능한 데다가 재주도 있고 생각하는 것도 민첩해 남이 떠올린 것을 알아채고서 한 발 먼저 처리해 주는 일이 잦았다. 당대에 똑똑하다고 유명했던 공융, 예형과 교류하였다.
219년 가을에 조조에게 트집을 잡혀 낙양에서 처형되었다. 향년 45세. 아들로 양효가 있었으며 손자는 양준[1]이다. 양준은 서진을 받들며 고관이 되었고 그렇게 양수의 직계 자손은 동진 말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안제의 치세였던 의희 4년(408년), 양준의 증손자였던 양사평[2]이 처형된 이후에는 자손들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재능에 관한 일화가 세설신어에 많이 실려있다. 세설신어는 어디까지나 그 시절의 가십 모음집이므로 이 일화들이 실제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위진남북조 시대에 양수가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것 정도를 알 수 있다.
조조가 화원을 하나 꾸미라고 명령하였다. 얼마 후 화원이 완성되자 조조가 화원을 구경하러 갔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화원 문에 活(살 활)자만을 쓴 채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조조가 그걸 왜 써 놓았는지 아무도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양수가 지나가다 끼어들어서는 "門(문)에다 活(활)자를 써 놓았으니 이것은 곧, 闊(넓을 활)자. 승상께선 화원이 너무 넓직하니 휑해 보여서 맘에 드시지 않은 것이오"라 말하여 사람들이 화원의 폭을 좀 더 촘촘하게 좁히고 아담하게 개조한다. 수일 뒤 조조가 다시와서 알맞게 되었다고 만족하고는 어떻게 뜻을 알았냐고 묻자 사람들이 양수가 지나가다 말해주었다고 대답하였다. 조조는 그 말을 듣고 정원사들이 고민할 몫을 양수가 채갔다는 생각을 해 조금 언짢다는 말을 한다.
양수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일처리를 잘해 항상 빨리 끝내고 놀러 다녔다. 양수가 하도 많이 자리를 비우자 하인들은 "그럼 조 승상이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양수는 쪽지 3개를 주며 "승상이 오셔서 공문 처리에 대해 물으면 첫 번째로 이걸 주고, 두 번째로 이걸 주고, 세 번째로 이걸 줘라"하며 놀러 나갔다. 후에 조조가 와서 이에 대한 질문들을 했는데 과연 양수가 준 종이에는 조조의 질문들이 그대로 적혀있었고 하인들은 양수가 적어놓은 답을 조조에게 말해주어 일에 지장이 없었다.
조조가 원소를 징벌하러 떠났을 때 행장을 모두 갖추어 보니 죽편 수십 곡이 남았다. 조조는 필요 없으니 다 태워 버리려 했지만 뭔가 아까워 고민하다 이 죽편으로 방패를 만들 생각을 하였다 조조는 신하들에게 "이 죽편들 어떻게 할까?"라고 물었는데 양수가 "방패로 쓰면 딱이겠네요"라 답하였다. 조조는 흡족해했다.
어느 날, 새북에서 조조에게 수(酥)[3]가 올라왔다. 조조는 수를 한 입 먹고 슬쩍 장난기가 들어 합 위에다가 일합수(一合酥)라는 글자를 써 놓고 책상 머리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양수는 그걸 보더니 숟가락을 가져와 관리들과 함께 퍼먹으니[4] 조조가 짐짓 노한 척 양수에게 "왜 먹었느냐?" 라고 꾸짖으니 양수는 "합 위에 한 사람이 한 입씩 먹는 수(一人一口)[5]라 써 있으니 어찌 승상의 뜻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조조는 웃어젖히고는 물러갔다. 삼국 드라마에서는 마등이 보낸 과자[6]로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선 양수의 대답을 들은 직후 들어온 순욱에게도 조조가 하나 준다. 과자를 넙죽 받아먹은 순욱에게 조조가 마등이 보낸 것이라 말하자 순욱이 독이 들은 것은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란다. 그러자 조조가 웃으면서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먹여봤다고 말하는데, 퀴즈(?)도 내고 독이 있는지도 확인하는 조조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조가 아들 조비와 조식의 재간을 시험해 보려고 두 아들을 밖으로 내보낸 다음 업(鄴)의 궁궐을 지나가라고 시켰다. 그리고 궁궐의 문지기에게 그 누구도 성문 밖으로 보내지 말라고 명하였다. 아들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밖으로 나와 조조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조비는 궁궐을 통과하려다 문지기가 막자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7] 이 말을 들은 조식은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 양수에게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자 양수는 "왕자께서 왕명을 받들고 나가려는데 기어이 막으려는 자가 있으면 베어버리셔도 됩니다."라고 하였다. 과연 같은 명령을 받아 조식이 궁궐을 통과하려고 할 때, 문지기가 막자 "나는 승상의 명령을 받듣고 지나가는데, 어느 놈이 감히 내 앞길을 막는단 말이냐?"라고 말하고 문지기를 베었다. 조조는 조식의 재간이 놀라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고 묻자, 조식은 "그것은 양수가 가르쳐 주었사옵니다." 하고 말했다. 조조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양수를 멀리하게 되었다.
조조는 남이 자기를 암암리에 모해할까 두려워 항상 좌우에게 이런 거짓말을 하였다. '내가 꿈속에서 사람을 잘 죽이니 내가 잠이 들었을 때는 행여 너희들은 내게 가까이 오지 말라.' 그리고 나서 어느 날 그가 장중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부러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이걸 본 근시가 조조를 부축해 세우려 하니, 조조는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뛰어 일어나 칼을 뽑아서 그를 베고 다시 와상 위로 올라가 자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일어나서는 짐짓 놀라며 물었다. "누가 내 근시를 죽였단 말이냐?" 여러 사람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조조가 통곡하여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게하니, 사람들은 모두 조조가 정말로 꿈속에서 사람 죽이는 버릇이 있는 줄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독 양수는 조조의 그 숨은 뜻을 알고 있어서 그 사람을 장사지낼 때 죽은 내시의 시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가엾구나! 승상이 꿈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대가 꿈꾸고 있었던 것이네!"라고 한탄하니, 이 말을 듣고 조조는 더욱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
양수는 조비와 조식 간의 후계자 다툼에서 조식 편을 들었는데, 조비를 위해 계책을 잘 내는 오질이라는 자가 비단을 나르는 바구니 속에 몸을 숨겨 대궐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양수는 즉각 조조에게 "왕자님(조비)께서 조가장 오질을 대궐 안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라고 일러바쳤고, 조조가 그 사실을 확인하려 하자 조비가 불안해했다. 이에 오질에게 대응책을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다음엔 진짜로 비단만 들여오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시킨 대로 하자 조조의 신하가 확인해 보니 정말 비단만 들어 있었다. 이에 조조는 양수가 조비를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조는 조식을 총애했는데 조비와 조식 모두를 자주 방문하였다. 양수는 도움이 되기 위해 조식에게 조조가 물어볼 10개 모범 답안을 만들어 주었고 조조가 질문하자 조식은 그 답을 그대로 읊어 총애를 얻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것도 양수가 한 짓임이 드러났다. 조조는 양수를 미워하였다.
조조가 조아비(曹娥碑)[8]에 적힌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虀臼)'라는 채옹의 글귀를 보았을 때[9] 조조가 그 뜻을 몰라 주위 책사들에게 그 뜻을 묻는데, 책사들이 양수가 그 뜻을 안다고 하니 지금까지 양수에게 계속 당했던 조조는 자신이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는 삼 마장(30리)을 간 뒤에야 그 뜻을 알아내고는 양수에게 먼저 해석한 바를 말하게 한다. 양수가 답하길 "황견(黃絹)이란 누런 누에고치 옷감을 뜻하는 것이니 곧 색실(絲色)을 뜻하니, 두자를 합치면 절(絶)이 되고, 유부(幼婦)는 어린 소녀를 뜻하니, 어린 소녀(幼婦) 곧 젊은 여인(少女)이니, 두 자를 합치면 묘(妙)가 됩니다. 외손(外孫)은 딸의 자식으로 딸은 여(女), 아들은 자(子)니, 두 자를 합치면 호(好)가 되고, 제구(虀臼)는 다섯 가지 맛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이는 매운 것(辛)을 담는 것이니(受), 두자를 합치면 사(辭)[10]가 되므로 모두 조합하니 절묘호사 '아주 훌륭한 문장'(絶妙好辭)이 되지요." 라고 하니 조조는 웃으며 "나의 생각과 똑같구나."라 말했다. 어림에 따르면 세간에서 "지혜 있는 사람과 지혜 없는 사람의 차이는 30리다."라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11]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