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이토록 모순적인 ;
원자폭탄 이야기

1766 -크리스토퍼 놀란

by E Han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려낸 《오펜하이머》, 이토록 모순적인 인간 - 시사저널 (sisajournal.com)


역사가 스포일러인 실존 인물 이야기로 3시간 내내 조여오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게 가능할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그렇다고 답한다.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분)가 만든 ‘원자폭탄’은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실재하는 것이고, 많은 나라의 정치적 이해가 얽힌 것이며, 무엇보다 버튼 하나로 인류를 하루아침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발명품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스스로를 파괴할 운명 속으로 뛰어든 지구인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실질적인 공포와 스릴을 안긴다.


그래서 놀란은 스펙터클을 안겨주는가. ‘그렇다’에 역시 한 표다. 다만, 당신이 예상한 스펙터클과는 재질이 다를 수 있다. 《오펜하이머》의 스펙터클에는 화려한 액션이나 실감 나는 재난이 없다. 그것은 배우의 얼굴에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감정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끝없이 자기 분열하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3시간 동안 따라간다. 밀도 높고 장엄하고 논쟁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며 복잡하다


돌이킬 수 없는, 성공


1945년 7월16일, 미국 뉴멕시코 사막 하늘에 버섯 모양 불기둥이 굉음과 함께 피어올랐다. 오펜하이머가 이끈 인류 최초의 핵무기 실험 ‘맨해튼 프로젝트’ 테스트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그것을 예감했을까. 프로젝트의 성공을 바라보며 그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읊조렸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그리고 같은 해 8월6일 미 공군 폭격기 B-29 ‘에놀라 게이’는 포신형 우라늄탄 ‘리틀 보이’를 히로시마에 떨어뜨렸다. 14만 명이 사망했다. 3일 후엔 플루토늄탄 ‘팻맨’이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8만여 명이 즉사했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지는 순간, 오펜하이머의 인생도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진입한다. 핵폭탄으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안겼지만, 지구가 공멸할 수 있는 위험을 동시에 열었다는 죄책감이 그를 엄습한다.



자신을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오펜하이머의 심리를 놀란은 흡사 공포영화처럼 그려낸다. 오랜 시간 전력을 다해 만든 원자폭탄이 최고의 기량을 파괴적으로 보여준 날, 가장 극렬한 자기 분열을 겪는 오펜하이머. 과학자와 정치인 사이, 창조자와 파괴자 사이에서 분열하는 오펜하이머는 그러고 보니 선악의 명암이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았던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 배트맨(크리스천 베일 분)과 닮았다. 아니, 혼란을 상징했던 조커(히스 레저 분)에 더 가까울까. 배 두 척에 폭탄을 설치하고 살고 싶다면 서로의 폭탄 스위치를 누르라고 유혹했던 조커를 기억하는가. 여러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지금, 인류는 조커가 세팅한 배 두 척에 몸을 실은 승객과 같다.



《오펜하이머》는 아이러니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물리학자들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에는 나치 독일이 가공할 무기를 먼저 개발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목적이었던 적이 스스로 자멸해 버린다면? 게다가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승인한 리더가 사라진다면? 실제로 1945년 4월12일 맨해튼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이끌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했고, 같은 달 30일엔 히틀러가 자살했다. 그리고 5월8일 독일은 패망했다. 목적이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나치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원자폭탄은 방향을 틀어 일본으로 향했다. 물리학 300년의 성과가 대량살생무기로 귀결되는 모습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또 하나의 아이러니. 미국의 우려와 달리, 당시 독일은 원자폭탄 개발에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정작 미국에 이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소련이었다. 서방 과학자들이 극비리에 이룬 성과를 소련이 어떻게 4년 만에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 클라우스 푹스가 빼돌린 정보 덕분이었다. 푹스의 스파이 행위는 미국이 더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닌다.



미국에서 반역자로 몰린 오펜하이머와 달리, 진짜 반역자였던 푹스가 석방 후 동독으로 돌아가 영웅 대접을 받았다는 점은 인생의 아이러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핵무기가 인류의 끔찍한 제로섬 게임이 될 것임을 알았던 오펜하이머는, 더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을 요구하는 정부에 맞섰고 한발 더 나아가 과학 지식을 소련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빨갱이 색출’이라는 매카시 광풍이 마침 미국 사회 전반을 휩쓸 때였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로 낙인찍힌 오펜하이머는 청문회에서 굴욕적인 수모를 겪으며 지위를 잃는다.



예상하겠지만, 이 모든 과정을 놀란이 일대기 형식으로 그려냈을 리 없다. 놀란이 누구인가. 꿈과, 꿈속의 꿈과, 꿈속의 꿈속의 꿈이 서로 다른 속도로 달리며 관객을 들썩이게 했던 《인셉션》,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이라는 가설을 세워 눈물의 가족 상봉을 끌어낸 《인터스텔라》, 하나의 사건을 세 가지 시공간(해안 1주일, 바다 1일, 하늘 1시간)으로 쪼개고 분해해 전쟁 한복판으로 관객을 후송한 《덩케르크》, 순행하는 시간과 역행하는 시간이 공존했던 《메멘토》와 《테넷》 등 시간을 변주하고 저글링해온 ‘시간 덕후’ 아닌가.



《오펜하이머》의 경우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시점을 중심으로, 1954년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 1959년 원자력위원회 창립 위원 루이스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상무장관 인준 청문회 등 세 개의 타임라인을 교차하며 달린다. 이 중 눈여겨볼 건 흑백으로 처리된 스트라우스 청문회다.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 영화라는 건 연출이 그의 인생 중 어디를 선택하고, 누구를 부각하느냐의 문제다. 그 선택에 연출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놀란은 정치인 스트라우스를 오펜하이머와 대립되는 자리에 위치시킴으로써, 과학만 알던 학자가 정부와 과학자 사이를 조율하는 거대 프로젝트의 현실적인 관리자로 바뀌어 가면서 겪었을 법한 고민을 더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오펜하이머》가 단순히 한 과학자의 분열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분열로 다가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창조자인가, 파괴자인가


놀란의 기존 작품들보다 타임라인이 간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입장벽이 낮은 영화는 아니다. 과학자, 정치인, 군인 등 실존했던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등·퇴장하고, 당시의 국제 정세가 대사로 줄기차게 브리핑되는 데다, 눈에 입력해 머리로 즉각 풀어내야 하는 정보값이 상당하고, 과학적 전문용어도 틈틈이 끼어드는 통에 자막 따라가기가 버거울 수 있다.



주연급으로 활동하는 배우들이 조·단역으로 포진한 까닭에, 《오펜하이머》 캐스팅은 보는 것만으로 포만감을 안긴다. 오펜하이머를 만난 후 “징징거리는 애”라는 평가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트루먼 대통령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은 단 한 장면만으로도 신을 ‘스틸’하고, 《보헤미안 랩소디》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아밀 라믹은 짧게 등·퇴장할 때마다 극의 흐름을 뒤집는다. 오펜하이머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스트라우스를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살리에르 적’인 연기 또한 기막히다. 탐할 수 없는 재능을 지닌 오펜하이머에게 느끼는 보통사람으로서의 열등감을 두툼하게 표현해 낸다.



그러나 역시 두고두고 이야기될 이는 킬리언 머피다. 아이맥스 카메라에 클로즈업된 킬리언 머피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마다, 우리는 그가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에 함께 물든다. 때론, 침묵 속에서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그 표정에 여러 번 얼어붙었다.


여담이지만 , 미국이 일본 원폭작전에 미리 준비된 폭탄은 15기 였다고 한다 그중 2기가 폭발하였고 ,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나머지는 전쟁 종식후 아직 까지 미개봉 혜체 보관 중이다.

우리의 해방은 1945. 8.15일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동시에 찾아 왔지만 ,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일은 8/29일 차주 이다. 1910.8.29일 한일뱡합조약이 강체 체결 공포 되었다.


전세게 약 1만 600개의 핵탄두의 제고량과 아울러 , 약 4200여기의 제가동 가능한 핵 탄두의 위협을 생각 하면 전 지구를 수십 차례 잿더미를 만들고 다시 복구 하기 어려운 사태에 이를 수도 있는 환경속에서 우리의 문화는 아직 번성 ? 하고 있다.. 아직 냉전 이후 100년이라는 세계사의 시간이 도래 하지 않은걸 위안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 Written by E HAN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놀란#원자폭탄


-원폭 투하 과장 - 히로시마 , 나가사키 .


투하[편집]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를 투하한 이놀라 게이와 승무원들.


스크린샷 2023-08-27  에놀라 게이.png

에놀라 게이에서 촬영한 "리틀 보이"가 일으키는 버섯구름.

스크린샷 2023-08-27 -원자폭탄.png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 투하될 제 1순위 목표 도시였으며 임무 수행 중 변수가 생길 시 이를 대체할 목표 도시는 고쿠라나가사키였다. 8월 6일에 투하된 이유는 그 전에는 기상 문제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393사단 폭격 비행중대에 속했던 B-29 에놀라 게이는 일본 본토 영토에서 비행시간으로 6시간 떨어진 서태평양 티니언섬 북쪽에 있던 비행장에서 이륙하여 히로시마로 향하였으며, 제 509 혼성부대 폴 티베츠 대령이 폭격기를 조종하고 지휘했다.


에놀라 게이는 두 기의 다른 B-29 폭격기와 함께 일본 본토로 향했는데, 그 두 기 중 한 기는 찰스 W. 스위니 소령이 지휘하는 그레이트 아티스트로 원폭투하 후 결과 측정을 담당했으며, 나머지 한 기는 조지 마쿼트 대위가 지휘하는 폭격기로 처음에는 기체명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후에 네세서리 이블이란 이름으로 정해졌다.[27]


티니언섬에서 이륙한 후 각 폭격기는 산개비행을 하다가 이오섬 고도 2,440 미터에서 재 집합한 후 일본 본토로 향했다. B-29 에놀라 게이는 목표도시 히로시마에서 고도 9,855 미터 상공에서 시야를 확보했다. 본토로 향하는 동안 해군 대령 윌리엄 파슨스가 이륙 시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리해뒀던 원폭 리틀 보이를 장착했고, 보조를 담당하던 모리스 젭슨 소위가 히로시마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안전 장치를 분리했다.[28]



원폭 투하가 있기 한 시간 전, 일본 조기 경보 레이다는 본토 남쪽 부근에서 일부 미국 비행편대가 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히로시마를 포함해 많은 도시에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공습경보가 울렸다. 오전 8시 무렵, 히로시마 레이다 관측소 측에선 본토로 향해오는 비행기 기체의 숫자가 몇 안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공습경보를 해제했다. 연료와 기체를 아끼기 위해 비행편대가 지나가게끔 방치했다는 것이다. 기존 라디오 방송에서는 실제로 B-29 폭격기들이 포착될 시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내용을 방송했다. 하지만 이미 아침 7시 31분에 기상 관측 비행기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고도 9,800 미터 상공에서 히로시마의 기상 상태가 양호하다는 내용을 담은 전언을 모스 부호로 보낸 상태였다. 아침 8시 9분 티베츠 대령은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30]

60 킬로그램의 우라늄 235가 담긴 포신형 핵분열 무기 리틀 보이히로시마 현지 시각 08시 15분에 투하됐다. 리틀 보이는 고도 9,470 미터 상공에서 43초 동안 떨어져 도시 위 580미터 상공에서 폭파됐다.[31]B-29 에놀라 게이는 후폭풍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 도시에서 벗어나 11.5 마일(약 18.5 킬로미터)을 비행했다.[32]


리틀 보이는 옆바람 때문에 본래 조준했던 아이오이 다리에서 240 미터 벗어난 히로시마 외과 병원에 투하됐다.[33] 리틀보이는 TNT 13킬로톤에 상응하는 폭발을 일으켰으며,[34] 반경 1.6 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것을 파괴했으며 11 제곱킬로미터에 해당하는 화재를 일으켰다.[35]미국은 도시의 12 제곱 킬로미터가 파괴된 것으로 측정했으며, 일본은 히로시마의 69%의 건물들이 파괴됐으며 그것을 제외한 31%의 건물들 중 6~7%가 손상을 입었다고 보고했다.[36]


히로시마의 인구 중 70,000명에서 80,000 명, 약 30%[37] 가 원폭 투하 당시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으며 70,000여명이 부상당했다.[38] 또한 도시의 90%의 의사들과 93%의 간호사가 사망하거나 다쳤다. 이들은 도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시내에 있었다.[39]



목표 도시 설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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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폭탄의 투하가 진행된 경로. 고쿠라 지역에서의 투하는 기상 악화로 인해 실패했다.

1945년 5월 11일 오전 10시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의 (원자 폭탄 투하)목표 설정 위원회(the Target Committee)에서는 조이스 C. 스턴스(Joyce Clennam Stearns)박사를 중심으로 원자폭탄 투하지를 결정하기 위해 3가지 기준을 가지고 일본 도시들을 선별하기 시작한다.


지름 3마일(4.8km) 이상의 크고 중요한 표적이 큰 도시 안에 있을 것

폭탄의 폭풍파(영어판)가 효과적인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1945년 8월까지 (연합군의 상륙 폭격 등) 다른 공격이 계획될 가능성이 적을 것[17]

이에 따라 위원회가 선정한 원폭 투하의 대상은 다음 다섯 개 도시였다.



니가타 ; - 제철·알루미늄 제강·정유 시설 등 공업 거점과 항구


요코하마 ; - 항공기 제조 시설·부두·정유 시설 등


교토 ; - 주요 공업 거점


히로시마 ; - 탑재항, 공업 거점, 주요 군사 거점

고쿠라(지금의 기타큐슈) - 일본 최대의 군수품 제조 시설 중 한 곳


위의 도시들은 대부분 야간의 기습 폭격 대상에서 제외된 도시들이었고 미국 공군은 이 도시들을 치명적인 무기들을 생산할 수 있는 도시로 지정했다. 히로시마는 "도시에 있는 산업 지대 한 가운데에 있는 중요 군사 거점이자 병사들의 승선 지점. 레이다 표적에 용이하며 폭격할 시 도시에 크게 손해를 입힐 수 있는 곳. 주변에 언덕이 있어 폭격 효과를 크게 상승시켜 줄 가능성이 있음. 호수가 있어 화재를 일으키기엔 적합한 표적은 아님."[17] 이라고 설명됐다.


원자 폭탄 투하의 궁극적 목적은 일본이 포츠담 선언에 따른 무조건 항복을 하게 시키기 위해서였다. 최종 목표 도시를 선정할 때 당시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목표 도시를 설정할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은 이 폭격으로 인해 일본이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얻을 지였고 또한 국제적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지였습니다. 교토는 일본의 군수 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요충지이자 일본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기에 목표 도시로 설정하기엔 적합한 도시입니다.


도쿄 역시 일본 천황의 궁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그 어떠한 도시보다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교토처럼 전략적 요충지는 아닙니다."[17]


2차 세계대전 동안, 에드윈 라이샤워가 미국 군정보부 일본 전문가로 복무하면서 교토 원폭 투하를 반대했다는 일설이 떠돌았으나[18] 라이샤워는 자서전에서 그것을 극구 부인하였다.


교토 원폭 투하를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사람은 당시 전쟁 장관에 재임하던 헨리 L. 스팀슨(영어판)이었다. 스팀슨은 신혼여행을 교토에서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19]

여러 문헌에 따르면 스팀슨은 신혼 여행이 아니라 그 수십 년 뒤에 교토를 간 적이 있었으며 그래서 교토에 친숙했었다고 한다.[20][21] 일설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교토를 제외했다고 하나 후에 공개된 미군 사료에 의하면 문화재 보호를 위해 폭격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제 1순위 목표 도시 선정 시 교토가 빠진 이유는 전후 소비에트 연방과의 대립을 예상한 미국은 자칫 교토에 원폭을 투하하면 일본이 소비에트 연방 측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염려한 정치적 판단이었다. 7월 25일 교토의 빠진 자리에 나가사키가 추가됐다. 나가사키는 일본 최대의 조선소 중 하나가 있었고 주요 군사항이었다.[22]


히로시마를 폭격한 후 트루먼은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을 시 원자 폭탄 투하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당시 일본 안에서는 본토 결전 주장과 항복이라는 대립이 맞서는 사이 결국 두 번째 원자 폭탄의 투하가 결정됐다.


투하할 도시는 고쿠라로 선정됐지만 폭격을 시행하던 당시 고쿠라는 구름에 가려 시야가 확보되지 못했으며 연료마저 부족하여 오키나와로 가는 길목에 있던 목표 도시인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다.[23][24]



출처 : Wi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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