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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y 23. 2022

딸아이의 대만 어학당에서의 중국어 수업과 엄마의 야심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엄마가 젊었을 때 대만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보고 먹고 느꼈던 것들을 아이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2020년 2월의 대만 한 달 살이 여행을 기획했다. 그래서 슬로건도 ‘다른 시간, 같은 추억’이었다. 그러나 엄마 마음속에는 또 다른 목적이 숨어 있었으니, 바로 이번 기회에 아이에게 중국어에 대한 흥미를 확실히 불러일으키자는 것이었다.


아이가 중국어를 할 줄 알기를 바랐다. 이런 엄마의 욕심으로 초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조금씩 중국어를 가르쳤다. 중국인 선생님과 화상 회화 수업을 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내가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여섯 살에는 홍콩, 여덟 살에는 북경, 아홉 살에는 운남, 열 살에는 마카오, 열한 살과 열두 살 겨울에는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 가면 꼭 크리스털 제이드, 딘타이펑 등 중국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이 모든 것이 아이가 중국 문화에 익숙해지고, 중국어에 흥미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한 일들이었다. 대만 한 달 여행을 8개월 앞둔 시점부터는 동해대학 어학당 선생님과 화상으로 수업을 했다. 온라인으로 만난 선생님을 오프라인으로 만나면 더 의미도 있고, 재미있는 경험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 여행 기간 중 2주(10일) 동안 동해대학 어학당에서 1:1 개인 수업을 했다. 대만의 다른 학교는 어떻게 운영하는지 모르겠으나 동해대학의 경우 개인 수업은 학습자의 나이, 학습 기간, 학교의 학기 운영에 구애받지 않고 학습자의 상황에 가능한 맞추어 준다.


좌: 어학당이 위치한 건물, 어문관 / 우: 어학당 입구


아침 10시까지 등교해서 나와 딸아이가 각각 한 시간씩 수업을 했다. 내가 수업을 듣듣 동안 아이는 수업을 마치고 로비에서 다른 외국인들과 소통하면 좋겠다는 마람으로 일정을 잡았는데, 이 계획은 실패하고야 말았다. 원래는 겨울방학 기간이어도 일대일 수업을 계속하는 학생들이 꽤 있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자기 나라로 돌아간 후 입국하는 외국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딸아이는 엄마가 수업하는 동안에 텅 빈 로비에서 편안하게 유튜브를 시청하는 호강을 누릴 수 있었다.


텅빈 어학당 로비, 그리고 너무나도 편안한 딸아이

치밀한 계획으로 아이에게 중국어 학습을 시켜왔는데, 아이의 중국어 실력은 어떠할까? 야심찬 나의 계획은 성공했을까?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 딸아이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더 이상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는다. 아이는 영어를 더 좋아하고 미국 여행을 꿈꾸는 자칭 ‘친미주의자’가 되었다. 어릴 때는 그리도 재미있게 중국어를 배웠건만, 대만 음식도 좋아하고 대만 여행도 그리운데 중국어는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의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신 친구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 언제나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느 목사님 딸, 어느 선생님 아들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행동이나 태도가 있다. 어릴 때부터 나의 딸아이도 “엄마가 중국어 강사니까 너도 중국어를 잘 하겠구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 역시 아이가 중국어를 잘했으면 바라지 않았는가. 아이에게 나의 바람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아이가 느끼지 못하겠는가. 사람들의 말들에 나의 야심이 합쳐서 중국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의 중국어에 대한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아이가 보고 또 보고 매일 다시 보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극중 윤세리가 조철강을 찾아 조선족 거주지에서 그들과 담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얼마 전 아이와 그 장면을 같이 보는데, 아이가 극중 조금은 어색한 중국어 대화를 따라 하면서 ‘자기가 아직 중국어를 잊지 않았음’에 기뻐하는 모습을 잠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 찰나의 순간에 덮어 두었던 ‘야심’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중국어를 다시 시작해 볼까?’ 물어보려다가 꾹 참았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다시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기를 기대하고 있나 보다.


대만 한 달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며 다시는 외국에 안 간다고 했던 아이가, 2년 정도 지난 지금 대만 가자, 태국 가자 떠들고 있는 걸 보면, ‘몇 년 뒤 성인이 되어 어떤 계기로 중국어를 공부할 수도 있겠지.’ 싶은 걸 보면 말이다.


비록 아이에게 중국어 학습을 향한 열정을 심어주겠다는 계획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어학당에서 수업을 한 덕분에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추억이 하나 생겼다.  

소풍같은 아침 식사

2020년 2월 14일 아침, 문득 교내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아침을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간단히 준비한 샐러드, 아침에만 나타나는 조식 판매 노점에서 구입한 토스트(30위엔, 1200원가량), 교내 편의점에서 산 밀크티(45위엔, 1800원가량)을 펼쳐 놓고 딸아이와 오늘 방과 후의 일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침을 먹는데, 한순간 “아! 지금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이 ‘빠직’ 뇌리를 스쳤다. 아주 살짝 흐린 날씨, 한적한 교내, 우람한 나무들, 선선한 바람, 짹짹이며 쫑쫑거리는 참새들, 바쁠 것 하나 없는 일상, 마치 소풍 온 것 같았다. 한 달 여행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 아이도 낯설기만 했던 이곳에 조금 익숙해졌고, 나도 한국에서의 일상처럼 느껴진 이날, 벤치에서의 아침 식사 중 느꼈던 이 소풍같았던 시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어학당에서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추억이다. 그 뒤로도 종종 학교 벤치에서 아침을 먹었다. 요즘같이 바쁜 날이면 더 그리운 추억이다.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소득도 있다. 여행이, 사는 게 다 이런 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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