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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Jul 25. 2022

송산문창원구, 낯설지만 익숙한 이유.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열세 살 딸과 함께하는 대만 한 달 여행, 그 둘째 날에 타이베이에 있는 송산 문창 원구(松山文創園區)를 방문했다. 관광책자에는 이곳이 과거에 담배공장이었고, 대만의 파주 헤이리라고 불리는 ‘화산1914문창원구’에 이은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예술단지라고 쓰여 있었다. 더 이상의 정보 없이, 정보가 없기에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다. 이날 아침에 타이중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타이베이에 왔기 때문에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관광지를 슬쩍 돌아보고 와서 쉬자는 마음이었다.      



송산문창원구 건물을 보자마자 딸아이가 “건물에 페인트 좀 깨끗하게 칠해줬으면 좋겠네!"라고 투덜거렸다. 대만의 오래된 건물 특유의 칙칙한 회색에 아이가 실망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으나 아이에게는 "조금만 기다려봐, 대만은 겉만 봐서는 몰라."라고 말하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 입에서 "우와! 이 아트스러운 분위기는 뭐지?"라는 말이 나오고, 나는 다시 사진 찍어주기 지옥에 빠졌다.

 

예전에 공장 건물로 사용했다는 회색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딱 필요한 만큼만 개조한 복도와 넓은 교실 같은 공간이 줄지어 있었다. 구역별로 작가들이 만든 옷, 가방, 액세서리 등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작품들은 화려하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창의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승현아, 이거 봐 봐!",

"엄마, 이거 사고 싶어!",

"좀 더 둘러보고 결정하자!"

“하나만 사주면 안 돼?” 등의 실랑이가 연실 오갔다.


건물 내부를 둘러보다가 잠시 쉴 겸 밖으로 나왔더니 중정이었다. 낡은 건물에 둘러싸인 정원 계단에 앉아아 음료수를 마시며 쉬고 있노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사하게 이번 여행을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과 긴장감이 도심 속에 있는 나무 울창한 공원, 그 속의 더 조용한 중정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조금 풀어져 편안함마저 느꼈다. ‘이곳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어.’하는 만족감도.     



내부 관람과 중정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101빌딩 전망대에 가보자며 멀리 보이는 101빌딩을 나침반 삼아 걸어 나왔다. 나오며 뒤를 돌아보니 관람 전에는 허름하고 칙칙해 보였던  건물이 고풍스럽게 혹은 낭만적으로 보였다. "페인트 좀 칠해 줬으면 좋겠네!"라고 했던 딸이 "세상에나 마상에나 너무 멋지잖아!"라고 말하는 걸 보면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역시 사람이든 여행이든 선입견을 갖지 않고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야 진짜를 알 수 있게 되는 건가 보다. 그날 저녁의 일기를 다시 보니, "판매되는 상품들도 하나같이 재미있고, 독특하고, 예쁘고, 참신한데다, 건물 사이에 있는 중정 그 정원에서 바라보는 문창원구의 건물은, 뭐랄까…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라고 적혀있다.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송산문창원구는 생각보다 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그냥 예전의 보통 담배공장이 아니라 일본 통치시기인 1937년에 대만 총독부가 세운 담배공장인 것이다. 정식 명칭은 '대만 총독부 전매국 송산 연초 공장'.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했던 예전에 공장으로 사용했다던 그 건물은 일본이 ‘日’ 글자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대만 정부가 이 송산 연초공장을 접수하여 ‘대만성 전매국 송산 연초공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계속 생산을 이어가 1998년까지 담배를 생산했다. 생산량이 절정이었던 1987년에는 직원이 2000명에 달했으나 이후 수요도 줄고 경쟁도 심해져 쇠락의 길을 걷다가 1998년에 마침내 타이베이 연초공장으로 합병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의 한 단락을 마감한 송산 연초공장은 2011년에 ‘송산문화창의지구’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방되면서 문화공간으로서 다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송산문창원구의 낡은 건물에 들어섰을 때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익숙함을 느꼈었다. 당시에는 이 익숙함의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이곳이 대만의 일본 통치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이유가 뇌리에 탁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일본식 건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과 옛 군산세관의 외관과 유사했고, 서대문 형무소의 지붕과 창문 이 송산문창원구의 그것들과 비슷했다.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일본의 향기’ 때문에 낯선 땅에서 익숙함을 느끼고 그 익숙함으로 인해 마음이 편해지는 상황이 재미있다. 대만과 한국이 동시에 겪은 동일한 역사 때문이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근대에 들어서 한국과 대만이 역사적으로 유사한 길을 걸었다. 두 나라 모두 일본의 침략과 통지를 겪었고, 해방 이후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대만을 다니다 보면 “어? 여기 뭔가 익숙한데, 왜지?” 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를 친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는 1990년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내 또래(92학번)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대만도 저랬어? 우리랑 똑같았네!”하며 대만의 학교 문화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운동장에서 하는 조회, 더위에 픽픽 쓰러져도 계속되는 교장의 훈화, 학생회장이 이끄는 아침 체조(이 순간 "체조 시~작! 따라라라라~" 하는 음악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 조회시간을 이용하여 교실에서 행해지는 가방검사, 영락없는 우리 고등학교 때의 모습이다. 대만과 한국 모두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 일본에서 사관학교를 다닌 대만과 한국의 두 지도자들로 인해 일본식과 군대식 교육의 잔재가 해방 후에도 학교에 그대로 유지된 까닭에서다. 


대만에서 본 송산문창원구는 조금 흥미로운 소품을 판매했던 곳이었다면,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난 이후의 송산문창원구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맥이 닿아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참으로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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