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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Jan 05. 2023

2년을 기다렸다, 대만행 비행기표 예약하는 오늘을.

열여섯 살 딸과의 다시 대만 여행

제대로 된 저녁 밥상을 차려주리라 굳게 다짐한 날은 아침부터 무슨 요리를 할지 고민한다. 오래 고민 끝에 메뉴 선정을 마치면 절반의 준비가 끝난 셈이다. 장을 보고 늦은 오후에 요리를 시작한다. 가족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떠올리며 행복에 겨운 얼굴로 요리를 하는 일... ... 따위는 없다. 집안일을 그다지 좋아하는 나로서는 요리는 쉽지 않은 고된 노동이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려니 생각하며 오랜 시간 요리를 하면 식구들이 밥을 먹는 시간은 정작 20분 정도이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짧은 식사 시간이 끝나면 허무함마저 느낀다. 


여행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제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어디로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도시의 비행기표 가격, 숙소 가격, 날씨, 누군가가 쓴 여행기 등 정보를 뒤적거리기 때문이다. 긴 탐색기를 갖다 마음을 잡아 끄는 한 곳을 발견하여 비행기 표를 예약하면 절반의 여행 준비가 끝난 셈이다. 나는 이 단계에서 언제나 대만을 선택하고야 만다. 이제부터 숙소, 맛집, 관광지, 교통편 등을 검색하고 예약한다. 나는 요리와 달리 이 과정이 가장 즐겁다. 하지만 짧은 식사 시간과 마찬가지로 여행의 시간도 빨리 흘러가 버리고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여행을 마치고 나면 허무함마저 느낀다. 그리하여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기도 전에, 여행의 온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다음 여행지를 머릿속으로 물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리 과정에서는 식사 시간이 가장 좋지만 여행의 과정에서는 항공기 탑승 전까지의 과정이 나는 가장 좋다. 특히 항공편을 예약하는 날은 너무나도 설레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생각들을 잠재우려면 머리맡에 매불쇼를 틀어 놓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요즘 나는 다시 잠 못 드는 밤을 맞이했다. 2020년 2월 대만 한 달 여행을 마친 후, 그 추억으로 기나긴 코로나 시국을 버텼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2023년 2월에 출발하는 타이베이행 항공권 예약을 마쳤다. 그동안 격조했던 대만여행 카페, 여행책, 지도를 깊숙이 들여다보느라 잠이 들기 위해서 다시 매불쇼가 필요해졌다. 행복한 불면이다. 




항공원 예약 버튼을 누르는 순간을 맞이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시간과 돈이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는 것이 중력만큼이나 확실한 불변의 진리인지라 돈과 시간이 적당히 있는 순간이 오면 구동매가 칼을 뽑듯이 과감히 신용카드를 뽑아 들어야 한다. 


코로나 전파로 인해 사실상 실업자가 된 틈을 타 오랜 바람이던 한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2021년 3월에 고려사이버대학교에 편입했다. 수입은 줄었는데 대학만큼 비싸지는 않지만 어쨌든 등록금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은 나를 포함한 시간강사들을 버리지 않았으니 가뭄의 단비 같은 특수고용직 지원금과 약간의 국가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2022년에는 중학교에서 중국어 방과 후 수업도 하고 과장 조금 보태어 거지 같이 입고 살았더니(그러나 먹는 것은 잘 먹었음에도) 통장에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수업은 11월에 끝나고 이로서 많은 시간과 약간의 돈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강사는 일 년씩 계약하므로 내년의 수입이 불투명하여 아직 신용카드를 뽑아들 수 없었다. 2023년에 중국어 방과 후 수업을 한다고 하여도 3월 말이나 4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그동안의 카드값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릴없이 에어비앤비의 숙소를 뒤적이고 있던 12월 23일, 사건은 발생했다. 초등학교 한국어 교사 모집 공고를 교육청 구인란에서 발견하고 다음날인 금요일(24일)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성을 다해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작성했다. 이메일로 간절한 마음을 첨부파일에 담아 제출했고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마침내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아무리 중국어 교육 경력이 있더라도 한국어 교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경력이 없어 진입에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합격한 초등학교 한국어 교사! 아이들을 열심히 지도하리라 굳게 다짐하는 시간을 잠깐 갖은 후에 항공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제 망설일 시간이 없다. 목적지는 타이베이. 2월까지는 시간도 있고, 통장에는 돈도 있고, 이거 다 써도 된다! 야호!

다 먹어줄테다~~~~~ 음화화화!

역시 대만 여행은 내 삶의 비타민, 원동력이다. 이번 여행 역시 나의 영원한 영혼의 반쪽인 딸과 함께 한다. 딸아이가 열세 살일 때는 막상 출발하는 날이 다가오자 가지 말아야 하나 잠깐 생각할 정도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다. 올해 열여섯 살이 되어 좀 더 성숙해진 딸아이와 함께 하는 이번 대만 여행, 설렘에 오늘도 잠 못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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