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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Jan 24. 2023

보는 여행? 하는 여행!!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2년 만에 6박 7일의 여정으로 다시 대만에 간다. 항공권을 구매하고 숙소 예약도 마쳤다. 여행의 기둥을 세웠으니 이제 여행 일정을 짜 넣을 차례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언제나 그러했듯 '음식'이다. 후지아오삥, 샤오롱빠오, 루로우판 류의 추억의 음식, 친구가 추천해 준 맛집, 다시 방문하고 싶은 객가 식당, 하루에 네다섯 끼를 먹어도 모자라다. 매일 저녁 야시장에 갈 계획이다.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한 취두부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 2년 전 여행에서 딸과 함께 참여했던 쿠킹클래스가 재미있어서 이번에도 찾아보았으나 코로나 기간 동안 대부분이 폐업했는지 검색되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 시음 및 다도 체험을 신청하려 한다. 온천도 빠트릴 수는 없다. 타이베이 남쪽 외곽에 위치한 마오콩 케이블카를 타고 타이베이 시내를 조망할 것이다. 타이중에서는 어학당 선생님 두 분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객가 출신인 선생님으로부터 객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듣고 싶다.



나는 대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어디를 갈지 보다 무엇을 할지, 그러니까 '~에 가기' 대신에 '~을 하기' 중심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여행 계획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보자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 딸아이 초등학교 4학년 봄 어느 날, 그러니까 약 5년 전 학교에 상담차 방문했을 때 복도에서 안면이 있는 영어 원어민 교사를 마주쳤다. 나를 보더니 "새라(딸아이 영어 이름)한테 지난겨울방학 때 대만에 여행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나도 겨울방학 때 대만을 여행했어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본인의 여행 경험을 잠깐 이야기했다. 래프팅을 했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자전거로 여행했고 등등.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했는지 중심이었다. 그동안의 나의 여행은 보는 여행 중심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여행을 되돌아봤다. 온통 '~에 가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예를 들면, "국부기념관 갔다가 송산문창원구 갔다가 타이베이 101 갔다가 사림야시장 갔다가 호텔". 이렇게 계획을 세우자 '처음의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해져 버렸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더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도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또한 바로 지금의 장소를 즐기지 못하고 다음 일정을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시간이 없어" "빨리 움직여야 해" "지금 가야 돼" 등의 말로 이동을 재촉했나 보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만족감, 성취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처음의 계획을 완수했다는 뿌듯함이었다. 여행을 숙제처럼 한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에너지를 얻을 목적이었는데 여행을 또 다시 일상의 방식으로 진행했다.  


'~을 하기' 중심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했더니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여행 중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순간의 감정에 충실해졌으며 감정은 곧 더 풍부한 추억이 되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해안을 보며 차 한 잔 하자고 지우펀을 방문했다. 그러자 늦은 오후 해 질 녘 찻집에서 친구와 대화하던 그 순간의 편안함과 차 향이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며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샤오롱빠오와 우육면을 만들어 보자고 딸아이와 쿠킹클래스에 참가했다. 그러자 직접 만든 음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느꼈던 뿌듯함이 여전히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트나 티브이에서 샤오롱빠오를 보면 또 한 번 씩 웃게 된다. 일월담과 고미습지에서는 풍경보다는 딸아이와 자전거를 탔던 장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자 조급한 마음도 사라졌다. 



1996년 여름 북경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 폰도 없던 시절 지도 한 장 들고 얼굴이 새카매지도록 헤매어 다니던 나의 모습과 성취감, 왕푸징에서 먹었던 벌레 꼬치와 낯섦, 장염 걸린 배를 끌어안고 들었던 수업과 서글픔, 버스 안에서 나의 엉덩이를 만졌던 그 손과 당혹감, 겉모습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던 북경사람들처럼 화장도 벗고 구멍 난 옷으로 지냈던 시간과 자유로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기억에 깊이깊이 자리 잡고 예상치 못한 어느 한순간 표면 위로 떠올라 나를 씩 웃게 만드는 것은 눈으로 본 것이 아닌 몸으로 한 체험이다. 눈으로만 본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특히 패키지여행처럼 스스로 조사하거나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여행했던 도시나 특정 장소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기' 중심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자고 굳게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나는 바다속에 뛰어 들거나 산 정상까지 오르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딸과 함께 가벼운 트래킹을 하고, 야시장에서는 먹으며 소소한 오락을 즐기고, 체험하고,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와 대화하려 노력할 것이다. 가능한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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