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희 Apr 27. 2023

우당탕탕 대만여행 11-온통 초록초록, 마오콩 곤돌라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공항철도 티켓 문제, 딸아이 충전기 구입 문제, 현금 인출 문제, 와이파이 도시락 충전기 고장 문제로 우당탕탕 정신없는 첫날과 둘째 날을 보내고 맞이한 대만 여행 셋째 날. 3박 4일의 짧은 여정이었다면 셋째 날은 극심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쇼핑 의지를 활활 불태우며 펑리수와 누가 크래커를 주워 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주일 여정이기 때문에 쉬엄쉬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셋째 날엔 초록초록을 즐기기로 했다. 마오콩(貓空)에서.



마오콩에서 할 일은 딱 세 가지뿐이다. 곤돌라 타고 올라가기, 차 밭 바라보며 산책하기, 차 밭과 타이베이 전경을 바라보며 찻잎이 들어간 요리 즐기기가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차밭으로 가득한 마오콩에서 처~언~천히 산책하다가 찻잎이 들어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쉬다 내려오면 된다.


전철 원후선(文湖線 wen hu line, BR)을 타고 남쪽 종점인 동물원 역에서 내렸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인 충효신생(忠孝新生) 역에서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표지판을 따라 역 밖으로 나와 약 200미터가량 걸었을까, 곤돌라 탑승장이 앞에 보였다. 타이베이 교통카드인 '이지카드'로는 탑승권 결재도 되고 할인도 된다는데, 우리 모녀는 i-pass(一卡通)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할인 없이 1인 편도 120위엔(약 5,000원)을 내고 탑승권을 구입하였다. 여행 3일째가 되니 아침에 이것저것 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할인 혜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약간의 수고를 하는 것도 살짝 귀찮아졌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대충 해!"정신을 발휘한 결과 비용을 좀 더 내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뭐 여행하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바닥이 투명한 곤돌라를 타고 20분 정도 올라갔다. 전철에서 내렸을 때는 날이 흐리기만 했는데, 275m 정도 올라왔다고 비가 보솔보솔 내린다. 역사를 나오자마자 눈앞에 가습기 수증기 같은 비 속에 펼쳐진 초록 차나무 밭이 쫘악 펼쳐졌다. 평소 비 오는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낭만이라고 생각하리라. 여행지에서는 가능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힘 빠져서 못 다닌다.


원래는 장수도보(樟樹步道)를 산책하려 했다. 장수도보는 마오콩의 자연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산책로이다. 그런데 장수도보 입구가 나올 때가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구글맵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잘못 들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더 올라가지 않고 그냥 근처에서 괜찮은 식당 찾아 밥 먹고 쉬기로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두 젊은 여성과 노인 한 명이 큰 길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어딘가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노모를 모시고 온 두 딸이다.  


"저들을 따라가 보자!"


꽤 큰 식당 방향으로 가길래 따라갔더니 입구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옆으로 난 작은 계단을 따라 다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오호라, 비밀의 식당?"


숨겨진 비밀의 장소를 찾아가는 사람과 그 뒤를 밟는 나.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가슴이 살짝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갔더니 산기슭에 나지막이 서 있는 건물이 한 채 보였다. 문 안쪽으로 들어섰더니 갑자기 확 시야에 들어오는 푸른 차밭. 날이 좋았더라면 저 아래 타이베이 전경까지 보였을 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실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찻잎이 들어간 닭 요리와 밥, 음료수를 주문했다. 소리 없는 보슬비, 눈 닿는 곳까지 펼쳐진 초록 차 밭 속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있자니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자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내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초조해하던 내가 비 오는 날, 산속에 앉아, 길을 잘못 들은 덕에 찾게 된 식당에 앉아 "모든 것이 좋았다."를 외치고 있다니. 이래서 여행을 오나 보다. 시련 속에서 모든 번뇌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산속에서도 친구와 카톡을 열심히 하는 딸아이를 보며 마침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 그 증거다.


마음은 편안하고 가벼워졌으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저질 체력의 비루한 '몸'인지라 이른 하산을 하기로 했다. 다시 1인당 120위엔씩 내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그래도 호텔로 바로 돌아가 누워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시먼띵에 잠깐 들렸다.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시먼띵을 기대했으나 기나긴 코로나로 인한 봉쇄의 터널을 박 빠져나온 터라 예전의 활기는 찾을 수 없었다. 발마사지만 받고 호텔로 돌아갔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클라이막스, 온천하러 간닷!


*오늘의 지출: 곤돌라 승차권 480위엔(편도 120위엔*2명*2회), 점심 946위엔, 발마사지1198위엔 (599위엔*2명), 저녁 193위엔

매거진의 이전글 자카르타에 김대건 성당이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