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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22. 2023

자카르타에 김대건 성당이 있다고?

"김대건? 나 그분 알아. 자카르타 우리 집 옆에 김대건 성당이 있어!"

한국에 여행 온 인도네시아 친구가 자기가 사는 동네에 '김대건 성당'이 있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일까?


나의 인도네시아 친구 '엘리'가 두 명의 자매와 함께 9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인사동에서 돼지고기를 대접했다. 평일인데도 대기하는 줄이 꽤 길었던 그 인사동 식당에서 친구들은 연실 맛있다며 감탄을 하는데 나는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경기도 '안성'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2002년 결혼하여 남편이 사는 지역인 '안성'으로 오게 되었다. 안성에서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고 처음 든 생각은 "내가 그동안 뭘 먹고살았던 거야!"였다. 안성 축협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은 사람이 없다는 그 고기다.


안성 고기를 먹던 내가 이대로 친구들을 보낼 수 있겠는가.

"시간이 되면 안성에 와. 비록 고속버스 타고 와야 하지만 한국 소도시도 경험하고, 보통 한국 가정집도 보고 맛있는 소고기도 먹을 수 있어."


이리하여 여행 마지막 하루 전에 엘리네 세 자매가 안성에 오게 되었다. 먼저 안성 축협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소고기, 그것도 새우살이 붙은 최고급 등심과 살치살, 치마살 등 특수 부위먹었다. 연실 Oh my god, 엄지 척, 하오츠를 외쳤음은 당연하다.


식사 후에는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석남사'에 가는 것이 나의 원래 계획이었다. 석남사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풍등을 날리며 여동생과 왕여의 저승에서의 평안을 기원했던 절이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인 세 자매가 식사를 하기 전 기도하는 모습을 모자 문득 미리내 성지가 떠올랐다. 미리내 성지는 우리나라 최조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둘 중에 하나를 정해. 1번은 미리내 성지, 2번은 도깨비 촬영지 석남사. 밥 먹고 어디에 갈까?"

"미리내 성지가 뭐야?

"한국 최초의 신부님 무덤이 있는 천주교 성지야. 김대건 신부."

"김대건? 나 그분 알아."

"김대건을 안다고? 어떻게?"

"자카르타 우리 집 옆에 김대건 성당이 있어!"


세상에. 자카르타, 그것도 엘리가 사는 동네에 김대건 성당이 있다니! 검색해 보니 진짜였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


자카르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 출처: 가톨릭 평화 신문


가톨릭 평화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교구에서 유럽이 아닌 아시아의 성인을 모시기로 하고 신앙의 모범이 될만한 인물을 알아보다 한국의 김대건 신부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한다. 2017년에 축성식을 거행한 이 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도 안치되어 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잠시 자매 간 상의를 하는 듯싶더니 엘리가 경쾌하게 외쳤다. "도깨비!"

천주교 성지를 가기에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다.


석남사에서 사진을 백만 장은 찍은 것 같다. 촬영한 동영상을 붙이면 영화 한 편 나올 정도다. 여동생이 360도 촬영을 하면, 엘리는 카메라 옆에서 도깨비 배경음악을 틀고 따라 돈다.

"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 눈동자. 가슴이 시려서...." 

나와 엘리의 언니는 카메라 뒤에서 화면에 걸리지 않도록 같이 뛴다. 깔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말이다.


김신 오빠의 흔적을 찾아... "김신!"


새파란 하늘, 나풀거리는 하얀 구름, 새로 돋아난 연둣빛 잎들, 다홍빛 철쭉, 바람 따라 짤랑 울리는 풍경소리, 느릿느릿 걸어가는 살이 오른 고양이의 야옹야옹 소리. 20년이 넘도록 안성에 살았지만 봄철 석남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친구 엘리와 두 자매들은 저녁 7시 40분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나중에 꼭 자카르타에 와. 발리에 같이 가서 놀자."

"나중에 오키나와에 시노부 만나러 같이 가자."

아쉬움에 약속이 난무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엘리, 두 자매와 차례로 포옹을 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인사동에서 헤어질 때보다 포옹에 힘이 들어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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