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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21. 2023

대만인의 슬기로운 다중 언어 생활

대만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대부분이 이중 언어, 삼중언어 구사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와 대화할 때는 당연히 표준어를 사용하지만 가족 혹은 동향 친구와는 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한다. 


대만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크게 표준어, 민남어, 객가어이다. 대만에서 표준어는 '국어(國語)'라고 하고, 민남어는 '대어(台語)', 객가어는 '객어(客語)'라고 한다. 


17세기부터 복건성에서 민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타이난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현재 대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대어이다. 


객어는 객가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원래는 황하 북쪽에 살던 한족(漢族)들이 모종의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강남지역으로 대규모 이동을 하였는데, 이들을 객가라고 한다. 객가는 주로 광동성과 복건성에 거주하였는데, 이들의 일부가 대만으로 들어왔다. 


객가 전통 가옥, 토루(土樓)

표준어인 국어는 1949년 장개석 정부가 대만에 들어올 때 함께 유입된 언어다. 당시 대만인에게 표준어는 외국어와 다름이 없었지만 장개석 정부의 강력한 '표준어 정책'으로 인해 현재 대표 공용어인 국어가 되었다. 




대만인 친구 '쯔치(自啓)'는 국어와 객어를 구사한다. 


Q: 내 기억에 너는 '대어'를 못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맞지?

A: 맞아. 나는 객가인이야. 나의 조상이 청말(1686년  전후)에 광동성에서 대만으로 건너와 대만 '먀오리(苗栗)'에 정착했어. 대어를 알아는 듣지만 잘 말하지는 못해. 나는 객어를 모어라고 생각해.


Q: 그럼 '국어'는 초등학교에 들어와서야 배우기 시작한 거야?

A: 그렇지. 학교에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어.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5년 무렵에는 학교에서 국어 외의 말을 하면 벌을 받았었어.


Q: 객어를 모국어로 생각한다고 했는데, 책을 읽을 때는 무슨 언어로 생각해?

A: 국어로 생각해. 아마 학교 교육을 시작할 때 국어로 글자를 배워서 인 것 같아.


Q: 너의 객어 수준은 어느 정도야?  

A: 일상생활에서 객어로 대화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어. 하지만 어려운 내용이나 인터넷, 비트코인 같은 새로운 어휘들은 국어를 사용해. 

Q: 우리가 패션, 햄버거, 피자, 컴퓨터 등의 새로운 어휘를 영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같구나.


광동성에서 건너와 대만 중부에 자리 잡은 조상의 후손인 쯔치는 모어가 객어라고 생각한다. 객어, 국어 모두 완벽하게 구사하지만 학습을 통해 획득한 지식을 이야기할 때는 국어가 편리하다는 쯔치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대만 어학연수 시절의 선생님인 '라이(賴) 선생님'은 심지어 표준어, 객어, 민남어 세 가지를 구사한다. 타이난이 고향인 '객가'인 선생님은 쯔치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객어를 모어로 익혔다. 그런데 모친은 객가가 아니었다. 모친으로부터 대어를 익혔고 외가 식구들과는 대어로 대화한다고 한다. 역시 국어는 초등학교 이후에 익히기 시작했다. 


반면, 동해대학 어학당의 치엔(錢) 선생님은 국어만 구사한다. 조부, 조모가 장개석 정부와 함께 대만에 건너와 1949년에 대만에서 치엔 선생님의 부친을 낳았다. 모친 역시 1949년 무렵 중국에서 이주한 집안의 자녀였다. 이러한 배경의 사람들은 치엔 선생님처럼 국어만 구사한다. 




동남아 지역의 화교도 대만과 다르지 않다. 모두 다중언어를 구사한다. 


청말 중국 남부 지역에 대기근이 들어 광동성, 복건성에서 대규모의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했다. 태국에 사는 화교 '야차이', 인도네시아에 사는 화교 '광쪼우'와 '엘리'의 증조부가 이때 각자의 나라로 이주한 것이다. 야차이는 일곱 누나를 둔 막내아들로 가족 회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 표준어를 배우러 대만에 왔다. 광쪼우와 엘리는 1998년에 인도네시아에 발생한 폭동이 화교에 대한 테러로 이어지자 이를 피해 대만에 왔다. 그리고 나와 동해대학 어학당에서 만났다. 


엘리가 말하기를 "증조부가 '산터우'에서 이주한 객가인이야."


어느 날 야차이와 광쪼우가 서로 표준어가 아닌 방언으로 대화해 보더니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통한다며 키득거렸던 적이 있다. 이때 사용했던 말이 민남어의 일종인 '차오쩌우화(조주화 潮州话)다. 


그러니까 야차이는 태국어와 차오쩌우화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표준어는 대만에서 학습한 만큼 구사한다. 광쪼우는 인도네시아어와 차오쩌우화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표준어는 역시 대만에서 학습한 만큼 구사한다. 반면 엘리는 객가여서 차오쩌우화가 아닌 객어를 사용한다. 인도네시아어와 객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표준어는 학습하여 구사하는 것이다. 


며칠 전 엘리가 자신의 언니, 여동생과 한국에 9일 일정으로 여행을 왔다. 여동생은 표준어를 할 수 있지만 언니는 그렇지 않아서 엘리가 나의 설명을 언니에게 통역해 주었는데, 이때 사용하는 언어가 인도네시아어가 아닌 객가어였다. 가족끼리는 객가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서 그런지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대만이 우리나라 보다 선진적인 것 같다. 대만은 작년(2022년)부터 학교에서 엄마 나라의 언어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2019년에 대만 정부가 '국가 언어 발전법'을 통과시켜 작년부터 시행에 들어선 것이다. 엄마가 한국인, 일본인, 인도네시아인이면 그 나라의 말을 학교에서 배우고, 대만 원주민이면 원주민의 언어를, 아빠가 외국인이라면 아빠의 언어를 배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단일민족 국가라는 신화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우리 문화로 통합되기를 바란다. 대만의 정책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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