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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17. 2023

우당탕탕 대만여행 10-청핀서점, 101 빌딩, 야시장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여행 둘째 날 오전, 청핀서점(誠品 eslite) 신이점을 방문했다. 청핀서점은 1989년 뚠난(敦南)점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대만 전역을 넘어 중국 소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일본 도쿄에까지 진출한 대만 대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송산공항에서 와이파이 기기를 교환하고 온 터라 배부터 채우고 돌아보기로 했다. 건물 5층에 있는 대만식 샤부샤부 식당 '지탕따슈(鷄湯大叔)'에서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지하에서 장미향 밀크티까지 챙겨 마신 후 서점으로 향했다. 배도 채우고 당도 채우니 에너지가 뿜뿜 샘솟는다. 



며칠 후 타이중에서 선생님 두 분과 만나기로 했다. 한 분은 23년 전 나의 어학연수 시절의 '라이(賴) 선생님'이고, 다른 한 분은 딸아이의 중국어 선생님이었던 '치엔(錢) 선생님'이다. 치엔 선생님이 출산한 후 처음 만나는 것이라 아이를 위한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지만 그림책이라면 두고두고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출국 한참 전부터 이억배 작가의 그림책을 대만 인터넷 서점에서 찾았었다. 전래동화를 민화 기법으로 그린 이억배 작가의 그림책이 선물로 딱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대만에서 출판된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구입할 수가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청핀에서 적당한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청핀서점 그림책 코너에 가니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꽤 많이 출판되어 있었다. '장수탕 선녀님'을 구입하고 싶었으나 비닐로 포장된 새 책이 없어 '알사탕'으로 구입했다. 며칠 뒤 아이에게 책을 주었더니 아이가 너무나 좋아했다. 밥도 마다하고 책을 이리저리 넘기는 모습을 보고 나도 치엔 선생님도 뿌듯해했다.


역사책도 한 권 구입했다.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 사람들이 역사는 중국의 역사를 빌리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독립을 원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대만이 행여나 홍콩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 걱정하는 입장이다. 다만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국민당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무리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인식하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역사 코너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만의 역사를 강조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어 있었다. 그중 제목이 '臺灣史'라는 책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대만사 필수' '대만인이라면 몰라서는 안 될 대만'이라는 부제도 있어 구미가 당겼다. 목차를 보니 첫 장이 "우리의 진정한 조상은 오스트로네시아인(austronesian)"이다. 이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읽어보기로 하고 냉큼 구입했다. 대만 여행이 끝나고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절 반도 읽지 못했다는 것은 쉿!




서점 투어를 마치고 101빌딩으로 향했다. 


남산 타워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남산타워는 늘 그곳에 있어서 오히려 관심을 끌지 못했다. 타이베이 101빌딩 전망대도 마찬가지다. 2007년쯤인가? 전망대에 한 번 오른 후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새로 흥미가 생긴 장소나 맛집에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늘 그곳에 서 있기에 "101빌딩이 어디 가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23년 딸과 함께 하는 네 번째 대만 여행을 앞두고 "이번이 마지막 대만 여행이려나..." "이제는 딸아이와 함께 대만을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딸아이에게 101 전망대에 올라 타이베이를 보여주고 싶어졌다. 일종의 이별 의식이라고나 할까...


"아하, 저기가 새로 생긴 돔 구장이구나! 우리 여기서 같이 사진 찍을까?"

"......"


엄마는 여기에 또 언제 오려나 싶어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데 딸아이는 묵묵부답이다. 창 밖의 풍경 찍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서운하다. 


 

곧 일몰 시간이니 그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기로 하고 한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이 여행 이틀째인데 느낌이 어때?" "3년 전에 왔을 때와 또 느낌이 다르지?"


타이베이 전경을 바라보며 딸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친구와 카톡 대화에 매진하는 모습에 대화 의지를 상실했다. 사춘기는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기에 친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난들 모르겠는가? 나 역시 그랬는데... 그런데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나야말로 딸아이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갈증이 심해져서 물을 사려고 보니 가격이 다섯 배는 비쌌다. 지게로 이고 지고 올라온 거라면 이해를 하는데, 엘리베이터 타고 왔을 텐데 다섯 배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괴로운 건 나 자신이지만 사지 않고 꾹 참았다. 지금 사면 지는 거라는 우스운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일몰 시간까지 기다리며 대만의 따릉이인 '유 바이크' 앱 설치와 결재를 위한 카드 등록을 마쳤다. 다음 일정인 라오허지에 야시장까지 유바이크로 이동하자고 딸아이와 의기투합했다. 일몰을 보고 나가자 했는데 출격준비가 완료되고 나니 조바심도 나고 갈증도 심해져 일몰 15분 전에 나왔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안 그래도 좁은 길에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넘쳐났다. 기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누구 칠까 봐 겁도 나서 출격 15분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일단 시작은 했으니 내일 다시 도전해 보자고 서로를 위로하며 택시를 타고 라오허지에 야시장으로 이동했다. 


라오허지에 야시장은 문 앞에 놓인 패루가 인상적이다. 


"앗, 취두부 냄새!"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볼까?" 

"아! 취두부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다음 기회에 도전하자."

"엄마, 나 저 띠과치우(地瓜球 고구마 볼) 먹을래."

"저 사람 먹는 거 뭐냐? 우리도 저거 먹어 보자."

"어? 여기 왜 줄 서 있지? 뭔지 모르지만 일단 줄 서."

"목 말라, 음료수 하나 마셔야겠다."



길을 따라 걸으며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길 끝에 도착해 있다. 라오허지에 야시장을 끝으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으나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동북쪽 외곽부터 호텔까지 택시비가 많이 나오려나...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택시 타!"


내일은 대만 남쪽 차밭 '마오콩'으로 트래킹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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