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후기
내가 단종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건 2024년 겨울쯤이었다.
고 지식 한 면을 좋아하는 우리 아빠와 형은 세월이 지나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역사적인 장소들을 좋아한다.
나도 그렇지만 여행을 가더라도 의미 있는 장소를 가서 배우고 느끼는 걸 좋아한다.
자연과 함께 그때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몰입을 하게 되면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순수한 공감을 느끼고 온다.
나는 정서적인 공감을 자연 속에서, 아니면 그런 역사적인 장소 속에서 치유를 받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통영에 있는 이순신 공원, 장범준이 왔다 갔던 여수 앞바다, 우리 형이 다녀왔던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생가.
혼자서 여행을 종종 다니다 보면 눈치도 안 보고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어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아마 내가 접하지 않은 것들을 순수한 시각으로 접하게 되어 그 지역의 특성이나 명물을 여기저기서 느끼며 접하고,
편견과 비교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벗어나 잠시 치유를 만끽을 하니
그때만 되면 나는 순수한 감정으로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왠지 모를 정서적 공감을 느껴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엄청 큰 록페스티벌에서 한마음으로 같이 노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날이 추워지거나 좋아지거나 꽃이 피거나 더워지거나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때면 난 항상 가족들이나 주변사람에게 안부전화를 한다.
나는 그때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그때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가 딱 2024년 11월 겨울쯤 됐을 것이다.
때 마침 아빠한테 안부전화를 하니 광주에 있는 형 집에 갈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휴무일이라 시간을 내어 형 집에 놀러 갔다.
우리 형도 나와 마찬가지로 정서적으로 보호를 받진 못했다.
나는 종종 내 정신도 챙기지 못하면서 나와 같이 자라온 형한테 스스로 돌보면서 살라고 충고 아닌 잔소리를 하는데 그러다 가끔 대판 싸우기도 하는데 요즘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인 것 같다.
그렇게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역으로 넘어와 건강한 얼굴로 가족들을 보며 하룻밤을 잤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차를 타고 여행지로 넘어갔다.
그렇게 차를 타고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를 가니 도착 한 곳은 강원도 영월.
우선 유배지로 가기 전 지도를 쓱 둘러보았다.
영화 촬영지도 있었고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한반도를 닮은 한반도면도 있었다.
아마 최불암 선생님의 한국인의 밥상을 즐겨보던 우리 아빠의 선택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지도를 따라 천천히 드라이브를 하며 강원도 영월을 구경하였고 마지막으로 갔던 곳이 단종 유배지였다.
유배지를 강을 건너 넘어가기 전 우리 가족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배를 타고 뗏목을 타듯 건너갔었다.
나는 배에서 내려 유배지 땅을 딛는 순간 넓게 퍼져 있는 돌과 자갈을 보고 왠지 모를 따뜻함과 공허함도 느끼고 씁쓸함도 느꼈었다.
이 광경은 마치 황야를 보는 듯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길을 걸으며 소나무가 우거진곳을 걸어가다 보니 단종이 유배 당시 머물던 거처가 나왔다.
나는 거기에 있던 유배 배경들을 읽어 보았고 천천히 읽어보니 나는 그제야 자연이 주었던 감정들이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역모죄로 죄인으로 몰려 죽음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도 긍정적이었고 어린 나이에 불구하고 지혜롭고 영특했다.
나는 서서히 청포령에 적혀있던 배경들을 읽어보다가 유배라는 말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단어인지도 몸으로 느꼈었다.
그렇게 단종이 머물던 거처를 지나 중간쯤 머무르니 단종께서 힘들 때마다 바라보았던 소나무가 있었다.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만의 풍수화를 보는듯한 고유의 질감이 있는데 이 나무도 역시 세계유산으로 지정돼도 되겠다 싶을 만큼 이쁘고 멋진 나무였다.
그렇게 나는 잠시나마 역사 속으로 들어가 내가 몰랐던 역사 속 인물을 보며 공감을 하며 배웠다.
단종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잠깐 들여다 보고 청포령 밖으로 천천히 나오니 마음이 적적해졌었다.
청포령에 가서 배경이 담긴 푯말을 읽어보면 이런 글이 있다.
'당시 청포령의 땅은 황폐하였고 산속엔 날 짐승들이 밤마다 내려왔었으며 밤에는 보초들이 있어 감시를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장항준 감독께서 영감 받아 만든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왔는데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냉혈한을 가진 자아도취에 빠진 영화 마니아가 아닌 이상 울 수밖에 없었다.
청포령의 그 자연광경과 박지훈의 애절한 눈빛은 단종 그 자체였고,
청포령이라는 지역과 잘 묻어 나오게끔 감각을 살린 게 나는 너무 좋았다고 생각했다.
배를 타며 가던 왠지 모를 씁쓸함도 보잘것없는 촌장이자 충실한 신하였던 유해진 배우를 씀으로써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야기는 미화된 게 있고 미숙한 cg가 아쉬움을 줬겠지만 나는 전체적인 작품성을 본다면 최고라고 생각한다.
청포령을 가보지 않아도 청포령을 갔다 온듯한 느낌을 받았을때에 소름과 감동은 나를 계속 눈물 흘리게 했다.
단종을 위해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