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독재자가 될 수 있다.

by 도냥이

회사 동료 집들이에 다녀왔다. 인원은 나까지 포함해 다섯 명이었다. 손수 만든 음식이 한 상 차려진, 말 그대로 집들이다운 자리였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주선자인 A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남편이 연애할 때는 내 말을 잘 들었는데 지금은 잘 안 들어."


이 말은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조금 냉정하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연애할 때는 사랑의 호르몬도 나오고 결혼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으니 순간적으로 상대방에게 다 맞춰줄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이런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본래 모습이 나오는 것이고, 어찌 보면 이때부터 동반자로서의 진짜 시험이 시작된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다른 사람 말 잘 안 듣는다. 다만 이해관계가 있을 때, 우리는 그나마 상대의 말을 들으려는 태도를 취한다. 월급을 받기 위해 상사에게 우리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초의 타인이 우리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서양의 사회계약론에서도 보듯 우리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사회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을 듣기 위해 이런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가 내 말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워한다. 상대가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느끼는 분노는, 관계를 협상의 장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길 때 생긴다. 이것은 일종의 독재 근성처럼 느껴졌다. 언뜻 보면 능동적인 것 같지만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감정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수동적이다.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기고, 내 감정을 그 손에 쥐어주는 셈이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상대도 자신의 의견이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내 요구를 안 들어주는 게 이상하게 아닌 정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다만 나는 필요하니까 요구하고 설득할 뿐이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지 말지는 상대의 몫이다. 이 사람에게도 내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취하면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괴로울 일이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정말 필요하면 설득을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사는 이상, 그를 억지로 굴복시킬 방법도 없다.


그의 말에 내 이런 속내를 밝히진 않았다. 힘들겠다고만 하면서 그의 말에 공감만 해줬다.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이 강해서 알면서도 못하는 것 같았다. 집들이는 무사히 끝났지만, 그의 고민은 아마 우리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chat gpt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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