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무욕의 시대 이야기

너와 나, 우리 그리고 모든 사람들 (최종)

by 가을 하늘

# 서 문 #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 수험생 일 때 고시원에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어느 한 아저씨가 택시를 하셨는데 몸이 많이 안 좋으셨다. 사실 말도 많이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주간 총무를 하였고 야간에 총무를 하는 형이 있었다. 잠깐 밤에 깼는데 형이 그냥 자라고 하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낮에 형이 경찰서를 갔다 온 것을 알았다. 그 택시기사 아저씨가 락스를 마시고 자살을 한 거다. 순간 뭐인가 싶었다. 형은 밤에 119에 신고를 하고 심폐 소생술을 하고 하여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얼마 후 그 아저씨의 자식들이 찾아왔다. 물건을 전해 받고는 버려 달라고 하였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어차피 물건들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버지 물건조차 보기 싫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약간 용기를 내서 더 깊은 질문을 해봤다. 그러더니 본인들은 아버지 얼굴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고 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 후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무덤덤 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30분 정도 대화를 하고 는 그들은 고시원을 떠났다.


가만히 휴대폰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의 시작이었다.












# 목 차 #



1부 이론과 역사


1) 욕망과 무욕

2) 애덤스미스

3) 분 석

4) 비 교 요 약

5) 역사와 흐름

- 세계와 한국

- 가족제도 붕괴와 대중문화의 발달

- 세계의 변화

- 해체 소모 그리고 조립 회복



2부 이론과 정책


1) 가계부채 연착륙 방법

2) 추 가 사 항

- 부동산

- 공공정책( 도서관 중심 연결)

- 교육 및 문화

- 교육 부분 변화

- 대학불균형 및 지역불균형 해소

- 인구 증가 정책

- 부동산 및 안보 정책

- 국 방 정 책

- 사 회 복 지

- 고 용 정 책

- 인구정책과 사회복지

- 이공계 진흥 정책

- 지역 불균형 해소

- 사회복지와 교육

- 법

- 대가족 제도 권장

- 근로자 임금

- 지방 거점국립대 활성화 방안



3부 개인과 조직


1) 누군가들의 실패가 존재한다.

2) 구성단위의 개인들

3) 인간을 관찰하여 분석하여 얻은 결론

4) 인간을 감당하는 방법


4부 실행 그리고 미완, 진행 중


1) 4차 산업시대

- 2018년/2025년/사회구조 변화



5부 감정과 생각


■ 그대들이여

■ 상 실

■ 윤동주도 서른이었을 거다.

■ 사람들의 혼인 신고 착각

■ 쇼생크의 탈출


6부 욕망의 시대 에세이


1) 변하지 않는 기억들

2) 우리는 끝을 달리고 있다.

3) 정치와 역사

4) 절대로 열지 말아야 할 문

5) 세 대 갈 등

6) 종교와 인간들

7) 인간 예수의 시험



7부 근 원


■ 자 유 의 지















1부 이론과 역사

1) 욕망과 무욕

역사란 욕망의 총량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이라는 것으로 수치화되고,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으로 나타난다. 흐름을 따져 보면서 각 개인이 서 있는 위치와 굴러가는 시스템의 방향을 보면 어떤 건지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어디든, 어느 조직이든 대입해 보면 자연스럽게 예측되는 것이다.


생물학적 남녀, 가정, 공동체의 관점에서 욕망이 긍정적·부정적 방향으로 증폭, 확장, 축소, 금지, 전환되는 비율, 밀도, 종류. 그리고 단일/복합작용의 방식, 영향, 반응에 따라, 과거와 현재 모든 사회는 긍정적 집단과 부정적 집단, 선인과 악인으로 나뉘어 왔다. 그러나 이 본질적 관점을 거부하면, 욕망의 부정성에 더해 문명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 문명의 ‘근원 명제’다.


욕망은 모든 인간 구조와 문명의 기원이며, 이 본질을 넘는 것은 인간 밖(초월자)의 영역이다. 욕망은 예측 가능하나 통제는 사실 매우 어렵다. 이것이 인류 문명의 근본 출발점이자, 수천 년간 인간 사회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하려 했던 문제다. 그래서 욕망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에 시작이며 욕망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게 없다.


사람들은 예외를 가정하고 예외를 바라지만, 그것은 예외이기에 결국 총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단정적이고 비관적인 게 아니라 당연한 현상이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상상과 현실 인식은 예외성을 부여하고, 거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대단히 기형적 사고이다. 그래서 냉소적으로 보고 낮춰서 보는 것이 사실상 정상적 범주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영원히 갇혀서 스스로에게 거대한 사명이 있다고 착각하며, 꿈속에서 꽃밭을 걷는 것이다. 슬프지 않은가? 사회성이 없다는 것은 이런 구조 속에서 바라본다면 그 사람이 사회성이 없는지 있는지 판단이 가능하다고 본다. 꽃밭에 살고 있는데 왜 사회성이 있겠는가? 흐름을 보지 못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따르고 그에게 자신을 맡기고 시선에 갇혀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가 승리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욕망 시스템 안에 바꾸려는 시도는 흐름의 재편이면 본질적으로 뛰어넘으려면 무욕이 동력이 되어야 하는가? 그러면 흐름을 바꾸고 정립하는 건 현실적 대안이고 뛰어넘으려는 건 그것에 흐름이고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건가?

욕망은 본능이고 본능은 신체의 생리학적 해부학적 구성과 원리기능 효과이다. 곧 이것은 [감정 자극] → 편도체 → 시상하부 → 척수 흉요부 → 교감신경 활성화이며 이것은 흐름이다. 흐름의 재편은 항상성이며 무욕은 전전두엽의 반응이며 부교감신경은 작용은 흐름이다.

2) 애덤스미스

애덤스미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이 이성적 감성적 존재로 조화된 것을 기반하여 만들어진 이론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효율을 통해 극단화된 욕망이 변곡점에 다다르게 되면 시스템과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을 교육과 제도적으로 누르고 그 눌러진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바꿔서 창조와 균형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애덤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에 본질적인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욕망은 효율을 만들고 극에 이르면 혼돈이 되고 그 욕망을 무욕으로 누르고 욕망에 비정상적 흐름은 무욕으로 방향을 돌려서 재생산되어 다시 욕망을 자극한다. 무욕은 초기 욕망을 누를 때는 크게 작용하지만 제도화되고 체득화되는 시기 작은 무욕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욕망의 에너지를 근본적으로 막지 않기 위함이다. 이것이 애덤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구현이 아닐까?

3) 분석

■욕망(慾望)

– 흐름을 만드는 에너지

□정의

- 개인 또는 집단이 결핍을 느끼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충동 또는 의지.

- 사회적 · 경제적 · 심리적 동력을 발생시키는 원천.

□ 구조

- 외부 자극 기반: 광고, 비교, 경쟁 등에서 유발됨.

- 상대적 가치 중심: 타인의 상태와 비교해 자신의 욕구를 설정.

- 무한 확장형: 충족되면 더 큰 욕망으로 전이됨. (ex: 소유 → 과시 → 지배).

- 자본주의의 연료: 상품, 서비스, 브랜드 등으로 욕망을 수치화 자산화.

□ 방향성

- 흐름을 발생시키며 사회를 움직이는 힘.

- 제도·시장·문화가 그 욕망을 조절하거나 조장.

□ 생리해부학적 원리기능효과

- 항성성: 흐름을 재편하려는 시도.

- 흐름: [감정 자극] → 편도체 → 시상하부 → 척수 흉요부 → 교감신경 활성화.

■무욕(無慾)

– 흐름을 초월하는 시선

□정의

-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인식하며 통제하는 상태.

- 자기 내면의 기준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

□구조

- 내부 자각 기반: 자기를 돌아보고, 욕망의 본질을 인식하는 과정.

- 절제와 통제 중심: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가 아닌, 무엇이 없어도 괜찮은지를 설정.

- 고정된 기준형: 외부 조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가치 구조.

- 윤리적 생존 기반: 지속 가능한 삶, 공동체적 배려, 정서적 평온을 추구.

□ 방향성

- 흐름을 멈추거나 재구성하려는 힘.

- 제도의 목적이 아닌 인간의 본질에서 출발하는 철학.

□ 생리해부학적 원리기능효과

- 전전두엽의 반응이며 부교감신경은 작용 흐름.

4) 비교 요약

# 욕망 > /동기: 결핍-충족/ 기반: 외부자극/방향: 팽창 확산/사회적 역할: 생산소비촉진

/제도화 방식: 시장경제중심/인간상:경쟁자, 소비자

/ 생리해 부기 전: 감정자극-편도체-시상하부-척수흉요부-교감신경 활성화, 항상성

#무욕 > /동기: 자각-통제/ 기반: 내면성찰/방향: 절제 수렴/사회적 역할: 윤리평등기반

/제도화 방식: 교육문화중심/인간상: 자기 성찰자, 균형자

/ 생리해 부기 전: 항상성, 전전두엽의 반응, 부교감신경 작용

■상호 작용

- 욕망은 사회를 움직이는 추진력, 무욕은 그 사회가 붕괴되지 않게 붙잡는 제동력

- 균형 없이 욕망만 있으면 탐욕과 피로가 극단화되고 무욕만 있으면 정지와 고립은 로 흐를 수 있다.

- 모델은 바로 이 두 흐름을 인식하고, 사회 구조가 의도적으로 적절한 비율로 설계한 시스템이다.

■구조 요약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제안 구조 [자극] → 욕망(교감신경적 본능 흐름) → 흐름 확장 → 혼란 발생

[흐름: 항상성] → 흐름의 재편 → 무욕(전전두엽·부교감신경 흐름) → 균형 회복 욕망 총량 이론 → 흐름 인식 → 욕망 재편 → 무욕 기반 자각 → 제도 설계

교육 개혁 / 입시 구조 / 사교육 통제 / 기술교육 / 독서 중심

사회구조 개편 / 복지 강화 / 부동산 구조 / 고용 시스템 / 공정한 법과 윤리

자기 주도력 강화 / 소비 재편 / 정신적 자율성 확보 /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5) 역사와 흐름

■ 세계와 한국

세계자본주의 흐름> 계획경제 → 사회 피로도 증가 → 고속성장 → 자본 집중 → 경제대공황 → 사회복지 → 수정자본주의 → 신자유주의 → 세계화

한국의 대응 흐름 > 계획경제 → 고속성장 → 독과점 심화 → 구매력 파산 직전 → 사회복지 타이밍 실패 → 바로 신자유주의 수용 → 외자 침공 & 내수 붕괴

한국은 사회복지 시스템과 정책을 구축해서 안전망과 계층 완화, 국민대다수 구매력 상승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제도적으로 촘촘하게 만들어야 할 시점에 바로 신자유주의를 들여서 자본흐름상 구조를 완화할 시기를 놓친 거다. 그것이 과도한 부동산 부양에 의한 시장 자본정책 시작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교육도 강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다.

■ 가족제도 붕괴와 대중문화 산업 발달

대중문화 → 라디오 → TV → 비디오 → 케이블 TV → 인터넷 → 유튜브 → 틱톡/숏폼 → AI 콘텐츠

가족제도 흐름→ 대가족→ 핵가족 → 부부 →동거 →1인 가족.

연애사업 흐름 → 트로트 중심 무대쇼 → 방송국 중심 스타 시스템 → 기획사 중심 아이돌 → 한류 붐 → 글로벌 팬덤 → 유튜브 셀프스타 → AI 버추얼 아티스트.

결국 자본의 급격한 성장이 가족붕괴와 연애산업 발달(유흥업)로 인간 상실의 시대를 만들었다.

■ 세계의 변화

동서양 전통 윤리 주의 = 공동체 기반 대가족 > 자원의 효율화로 생산량 추구 > 자본주의 도래 > 자원의 효율화로 생산량 증가 > 잉여 생산량 증가 > 소수 지배층에 욕망 상승 > 다수 피지배층에 욕망 폭발 > 자유주의 강조 > 민주주의 도입 > 영여생산량 낮은 비율 분배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조합 발달 > 전체 구성원 욕망 상승 > 전체 중 소수가 욕망 주도 독점 > 시장폭발과 사회폭발 > 다수 구성원 욕망 반발 > 수정 자본주의와 사회복지 > 전체 구성원 욕망 만족 상승 > 전체 구성원 욕말 극단적 상승 >

대처리즘과 신자유주의 > 전체 중 소수 극단적 욕망 주도 > 전체 중 다수는 소수의 욕망을 목표하여 쫓아감 > 전체 욕망의 급격한 붕괴 > 욕망제어 불가능 > 전통 윤리의 윤리 붕괴로 사회 조율 기능 상실 > 대안적으로 사회 법치 강조(가장 기본적인 도덕의 사회 조율기능 상실) > 전통적 보편윤리로 조율된 일반적인 사안들에 문제가 해결이 안 됨 > 법치 시행 시 과한 처벌 > 사회적 공동체 문제 상승 > 법치 시행 시 강력한 처벌이 어려움 > 사회적으로 해결이 시급한 일 발생 > 법치 시행 시 솜방망이 처벌 > 사회적 공동체와 개인들에게 위험을 발생 가능성 높임 > 사회 시스템과 개인들에게 불안 상승 >

사회 구성원의 욕망의 총용량에 극대화로 제어 불가 > 개인 삶들이 지속적으로 붕괴 현상 상승 > 노년세대의 삶 붕괴 현상 상승 > 현재 및 미래세대 붕괴 상승 및 예상 > 국가 및 공동체 생존 위기

" 결국 누구나 윤리와 도덕 안에서 욕망 부리고 누구나 타인을 연민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정의로움을 추구해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된다. "

■ 해체 소모 그리고 조립 회복

최초에 시작은 당시 가족제도 공동체를 좀 더 이상적인 시스템에서 순환되는 것 을 산정하는 세팅 값을 목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숙된 지본주의와 대가족 제도의 결합은 지속 가능한 순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전통 대가족제도 배경=자본주의탄생 > 전통 대가족제도를 분리 해체 = 자본주의 성장 동력 > 여러 가지 사회와 사람들 변화 등등 나타남=자본주의 성장통=초기 ~ 성숙 단계 진입에서 보완할 것을 보완하지만 썩은 부분은 반드시 도려냄 > 성숙단계 도달 = 파편화된 대가족 공동체 모아 조립 시작 및 조립 > 조립하는 과정 속에서 성장 동력이 발생되기 시작함 > 전통적 대가족 공동체 조립 완료 및 지속 가능성 및 성장 동력 회복 > 각 나라의 특수성을 반영 > 성숙된 자본주의 지속 가능 순환 발전

" 결국 자본주의라는 경제체계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조합이 되어 전통적 대가족 제도와 사회 전반 체계와 시스템, 이념을 연료 삼아서 성장을 한 거다. 단지 물질처럼 손으로 만 저지는 것과 숫자 형태로 카운팅 되는 등등 형태로 환원되는 것뿐 아니라, 본질적인 것 은 각각 시대에 새로 태어나거나 리뉴얼된 체제 혹은 이념은 배경이 되는 모든 것을 연료로 삼아 성장을 한다.

즉 이것은 분리 > 해체 > 소모 과정인데 이것은 언젠가 반드시 역순으로 하여서 원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다른 체제나 이념이 나타나 기존 배경에 모든 것을 소모하여 동력 삼아 성장 해야 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언급된 모든 것에 근본적인 극소 단위는 각 시대에 모든 인간의 욕망들이다. "

2부 이론과 정책

1) 가계부채 연착륙 방법

입시 제도는 대학 전형을 정시 90%(9025%) 비율로 유지한다. 정시는 수능 100% 전형으로 통일하며, 등급제로 표시한다. 수능 출제는 EBS 연계율을 95%로 하고, 모든 고교 사교육은 금지한다. 모든 고등학교의 중간·기말고사는 절대평가로 시행하며, 60점(원점수 기재) 이상이면 합불 여부를 판정하여 이수·미이수로 표기한다.

예체능, 체육 분야의 입시는 모든 대학교에서 1차적으로 교과서 수준의 문제를 출제하여 필기시험을 실시하고, 학교폭력 조회, 범죄 경력 조회, 수상 실적 등 관련 서류를 평가한다(가점 적용 가능). 2차로는 실기 위주의 일괄 입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기말·중간고사 시험지와 문제는 해당 학교 교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은행을 통해 국가가 출제하고 시험지를 배포한다. 교사 출제의 경우 모든 문제를 사전 가르쳐주는 관행이 있어 내신 부풀리기는 수시 초기부터 매우 심각했다.

예체능 과목은 활동 중심으로 대체하며, 고교생은 주 1회 구기 종목을 의무화하고 그림 그리기, 악기 배우기 등의 활동을 실시한다. 해당 활동 여부는 이수 미이수로 표기한다. 국어, 영어, 사회, 수학, 과학의 4대 고사는 절대평가로 합불을 판정하고, 원점수를 기재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사교육은 자연스럽게 축소되며, 성인·노인 대상 재취업, 기술, 취미, 투자 학원 중심으로 시장이 전환되어야 한다. 따라서 고교 사교육 전면 금지를 실시하고, 그 자금을 적금·주식 투자 등의 노후 준비와 건강한 소비로 유도해야 한다. 이렇게만 해도 부동산으로 몰린 비용이 주식시장으로 흐르는 효과가 생긴다.

특수목적고는 전면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하며, 학생 누구에게나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진로 자율권을 부여한다(출석 50%만 해도 인정: 예체능 진로자, 기술 희망자, 취업 희망자). 중학교 사교육 선행은 금지하고, 중학교 사교육비에는 비용 제한을 둔다. 물론 정신지체, 경계성 장애 등 심신에 문제가 있는 자는 명확한 사유를 통해 사교육 허용 가능하다.

4차 산업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자기 주도력을 반드시 길러야 하며, 스스로 고민하고 참고하고 계획하며 수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타인이 대신해 주거나 만들어주는 교육은 자기 주도력을 키울 수 없다. 연간 독서 권수를 정하고, 학생 누구나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자필 독후감을 제출해야 한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무조건 졸업 후 5년간 대학 입시를 금지하며, 학교폭력 가해 판정 증명서를 발급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직장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고3 학생은 2주에 1회 재테크 교육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수능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연간 2회 실시하면 된다. 지금까지 고교 사교육은 학생의 자기 주도력을 망쳐왔다. 학생의 역량이 아니라 부모와 학교, 학원, 강사가 만든 허상이고 단기 상대적 수치에 집착이었으며, 자기 주도력은 4차 산업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역량이다. 점수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상황 속에서 자기를 통제하며 얻은 시행착오가 중요한 교훈이 된다. 고교 사교육은 그것을 모두 망가뜨렸다.

고2 2학기부터 기술을 배우는 학생, 체육이나 예체능 진로자는 학교 출석에서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사교육 시장은 알아서 적응할 것이며, 사교육 금지를 통해 경제적 여유와 노후 준비 효과는 더욱 크다.

현재 성인이 되어도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사교육이 활성화된 시기와 교사 내신 기반 수시 제도가 확산된 시기에 학생들이 자기 주도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와 함께 살며 생활비를 부담하고 모시는 것은 예외로 인정한다.)

결국 고교 사교육 전면 금지, 특목고 일반고 전환, 중학교 사교육 선행 금지, 중학 사교육 비용 제한, 공교육 중심의 입시 구조 정상화(정시 9025%, 수능 EBS 95% 연계, 정시는 수능 비율 100~85%, 4대 고사 국가 출제, 전국 동시 시행, 내신 이수·미이수 표기 등)를 통해 입시 공정성을 구축한다.

수능 및 공무원 시험은 3년 응시 시 5년간 응시 금지 제도를 도입한다. 고교 사교육 금지법 위반 시 수능 점수 100점 감점, 법 시행 이후 과거 위반 사례가 적발되면 입학·졸업 취소. 위반 사례 신고 시 포상 제도와 신고자 보호법을 마련하면, 현재 한국 사회의 가계부채 문제는 연착륙이 가능해지며 이보다 더 영향력 있는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2) 추가사항

■ 부동산

- 대학교 주변 건물의 건물주나 사장들은 대학생에게 과도한 월세·관리비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적

정선은 국가에서 정하도록 한다.
■ 공공정책 (도서관을 중심으로 연결: 도서관 및 종합사회복지관)
- 도서관에서 노인 및 청년 상담, IQ 검사, 적성 검사 센터, 대입상담센터, 취업상담센터, 학업계획 상담센터, 부부상담센터, 건강검진센터, 창업센터(주요 도시)를 운영.
- 전국 도서관 및 종합사회복지관에 샤워실, 취침실(남녀 분리)을 충분히 마련하고, 365일 24시간 운영.
- 종합사회복지관은 365일 24시간 근무 인력을 배치한다.
- 국공립 도서관도 365일 24시간 열람실·독서실을 개방한다.
- 무인 차·버스를 운영해 도서관에 쉽게 접근하도록 한다.
- 경찰 병력은 야간 상시 배치하며, 임의로 취침 시 즉시 해고하도록 규정.

■교육 및 문화

-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각국에 대학교 5개를 선정(국립대 3곳, 사립대 2곳)

- 해당 학교 주변 또는 접근이 쉬운 위치에 대형 기숙사를 짓거나 매입해 최소 비용으로 운영하고, 해당 건물을 문화원과 학생 알바·창업 연계센터로 활용한다.

- 고용 및 4차 산업 대비 인력 채용도서관 및 종합사회복지관에 발생하는 신규 일자리를 50대 이상 실직자 우선 채용 대상자로 지정한다.
■교육 부분 변화
- 교장·교감·교사 중 학교폭력을 방치하거나 비호한 자는 즉시 해고하고 연금을 박탈하며, 피해 학생에게 민 사배상 길을 열어준다.

- 해당 비리 사례가 과거 시점에 발생했더라도, 법 제정 이전이라도 소급 적용하여 낭비되는 세금 구조를 정리를 한다.

- 교사 채용은 교사 자격을 가진 30세 이상만 응시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사기업 및 병원 기타 등등 직종 3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에게 시험 응시 자격 부여.

- 교사의 역할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학생의 자율 학습 계획표 확인 및 학습 상담, 질문 응 답 중심으로 구성한다.

- 공무원 전직렬 채용 기준은 30세 이상으로 조정하고, 일반 공통직렬은 민간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에게 응시 자격 부여.

- 특수직렬은 해당 분야 자격·경력에 따라 응시 자격 부여.

■대학 불균형 및 지역 불균형 해소

- 전국 거점 국립대 지원 확대, 사립대 지원 축소 및 부실 사립대 통합 유도.

- 거점 국립대는 기업과 협력해 연구 활성화 유도.

- 국립대학 교수는 한글과 영어 논문을 동시에 발표하도록 의무화.

- 전국여대 전면 남녀공학 변경. 현재는 갈등만 조장하며 구시대적인 시대착오적인 결과물임.
■인구 증가 정책

- 특별법으로 혼인은 남녀만 가능하며, 이를 기반으로 가족제도를 법제화한다.

- 같은 성을 기반으로 한 임의적 혼인 관계는 입양을 금지하고, 변경하려면 국민투표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함. - 결혼을 장려하고, 난임 지원 정책 확대. 시험관 시술은 35세 이상에 대해 비용 지원 축소 (불필요한 예산 낭비 방지).

■ 부동산 및 안보 정책

- 중국인에 대한 부동산 보유를 금지하고, 기존 보유 부동산은 강제 매각.

- 중국식 부동산 제도처럼, 외국인은 일정 기간 거주 권리만 부여하며 동일하게 적용.
■ 국방 정책

- 남녀 모두 20세 이상이면 신체검사를 통해 징병 대상 여부를 결정하고 군에 입대.

- 입대는 30세까지 연장 가능하며 여성이 결혼해 아이를 출산하면 면제하고, 혼인했으나 출산이 불가능한 경우 건강상 사유를 전문가 다수에게 심사받아 면제 여부를 판정.

- 병무청 직원의 과실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징집 대상자가 해당 실무자 및 책임자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며, 해당 직원은 즉시 해고.
■ 사회복지

- 적은 금액이라도 기본소득을 시작하며 매년 물가에 따라 조정하여 도입.

- 20세 이상 혹은 아이가 있는 국민에게 임대주택을 무상 지원하고 관리비만 부담.

- 남는 주택을 국가가 매입·리모델링하여 공급( 결혼율 증가 및 낙태율 감소 효과 기대)
■ 고용 정책

- 정년은 현재 65세로 연장하되, 출산율이 2.1에 도달하고 5년 이상 유지 시 정년을 다시 60세로 축소.
■ 인구정책과 사회복지

- 80세 이상이면 자율적으로 안락사 선택 가능하도록 제도화.

- 강제적 안락사가 발견될 경우 사형으로 엄중히 처벌하고 생의 종료도 개인의 권리로 인정.

■이공계 진흥 정책

- 기업이 연구성과나 개발 성과를 특허로 등록할 경우, 해당 직원·개발자·연구자 이름을 반드시 함께 등재하고 수익의 일정 비율을 평생 제공.

- 연구성과를 탈취하거나 이름을 삭제하는 경우, 수익의 1000배를 징벌적 배상실시.

- 국가가 수익 공유 접점을 유도.

■지역 불균형 해소

- 군 단위 이상 도시부터 관공서와 주요 거점을 잇는 무인버스·무인택시 등 공공 교통 노 선 지 운영.

- 지방의 접근성을 개선해 지역 균형 발전 유도하며 일정 나이가 넘고 건강이 좋지 않으면 지역 중심지로 유도.

- 지역 내 이동 접근성이 높아질 경우 지방도 서울처럼 인프라 중심 사회로 전환 가능.

■ 사회복지와 교육

- 예술·체육 분야는 평생교육 기반의 아카데미 형태로 운영.

- 국민 누구나 학점제로 예술·체육 학사 취득 가능.

- 이를 통해 창의성 계발·건강 관리·삶의 균형을 함께 도모.
■법

- 사기 및 무고 범죄는 경중에 따라 최고 사형까지 구형 가능.

- 음주 운전 사고로 인해 인명 피해가 큰 경우 사형 혹은 무기징역 선고 가능.
■대가족 제도 권장

- 사회복지 예산 부족, 개인 노후 준비 한계가 명확하므로 가족 단위 거주 형태를 장려.

- 전통적인 대가족 구조를 재활성화하여 생산성과 인구 증가를 동시에 이끌어야 함.

■ 근로자 임금

- 근로자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산정하는 사업장은 그만큼을 생활임금 기준으로 세금을 추징하여 다시 근로자에게 환급하고 사업장은 매년 전방위. 세무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 해당 연도 벌금을 매년 매출에 30프로를 벌금을 부과한다.

지방거점국립대 활성화 방안

>> 문과 안

- 5년제 도입해서 계열 내 3 전공 계열 외 1 전공 한 학기 25학점 실시.

- 학부별로 3 전공은 기본+ 공과 계열 1개 총 4 전공 융합.

- 본 전공 실시 및 전공 실습은 최대 일주일.

- 학점은. 절대평가제 도입.

- 대외활동 의무적 해야 함( 계약직, 인턴, 스타트업, 자영업, ngo단체 )

>> 이공계 안

- 5년제 도입해서 계열 내 3 전공 한 학기 25학점실시, 학부별 3 전공 전공 융합.

- 교양 없애고 본전공위 주로 실시. 전공 수업 실습은 최대 일주일 견학으로 대체.

- 절대평가 도입, 대외활동 의무적 해야 함( 계약직, 인턴, 스타트업, 자영업, ngo단체 )

>> 삶의 수단 기술교육

- 학년별로 도배, 배관, 타일, 용접, 보일러 기능사 등등 몇 가지 현실에서 수요가 있는 분야를 넣어서 1개 이상 졸업 전 취득하게 함. 얼마든지 시대에 따라 분야는 바뀔 수 있음. (필기면제와 따로 실습수업)

>> 공통 의무 사항(대학졸업할 때까지 )

- 졸업 전 100권의 독서를 하고 자필 독후감을 제출해야 함( 분야별 정해진비율 )

>> 위와 같은 학제는 지거국 대학 등록금과 동일한 사립대학교에서 만 가능하다. 사립대 통폐합 유도 및 등록금 인하 유도.(등록금인 가계 경제 부담이어서 금지.)

“ 궁극적으로 내가 위에서 말한 모든 내용은 4차 산업 시대를 맞이한 현재, 위기에 봉착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함이다. 결국 도덕성이 무너진 사회는 발전이 불가능하고, 산업과 기술의 진보 역시 개개인의 윤리와 자기 주도력을 기반으로 확장되어야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결국 퇴보하게 된다. 이것은 박정희 주도 쿠데타와 노무현 주도 사회시스템 구현 개혁을, 2가지를 합친 - 21세기 판 사회시스템 쿠데타 개혁 "

3부 개인과 조직

1) 누군가들의 실패가 존재한다.

■ 개. 괄

내가 돌아다니며 관찰 한 건, 한 세대가 바람직한 삶을 살려고 하면은 뒤이어 그 위에 많은 노력을 한 잊힌 누군가들에 실패가 존재한다는 거다. 낳고 성장하는 과정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과거, 현재가 작다면 작은 크다면 큰 말들, 누군가에 실패와 실수를 들으면서 듣는 이는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전략으로 참고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 살아갈 때 바뀌고 변화하는 것에 가장 기본 동력이 되는 거다.

누구나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더 바람직 한 삶을 원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이 혼자서 당대 이뤄 내기가 어렵다. 대부분 천재나 혹은 비범한 인물이 아니며 누구나 엄청난 운이 일반적인 경우 생기지 않는다. 혹여 생겨도 대단한 운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단기 성과는 반드시 반대급부 작용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게 이치다. 동시에 타인을 아프게 하여 얻은 결과는 그것은 세대를 거듭하여 죄로 유전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100년을 가늠하여 최소 3대에 걸쳐 각각 세대에게 임무를 부여해 임무와 역할 분담을 통해 헤쳐 나가야 하는 거다.

■ 세부사항

1세대는 자신에 노력으로 가난을 극복해야 한다. 실용성에 기반한 태도와 가치를 만들고 여러 가지를 시도한다. 계획과 행동은 심리적인 부분을 세밀하게 조율한다. 참고 시행하는 과정을 통해 실패를 축척해야 한다. 혹은 미완의 완결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윤리적인 부분은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틈도 보여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부분이 절제와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 종교는 출세하고 부자가 되려고 믿는 게 아니다. 믿음으로서 과한 욕망을 부리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나쁜 유혹에 빠지지 않는 거다. 환경이 상대적으로 나쁘거나 아주 절대적으로 나쁘거나 그런 상황 이어서 당연하게 선택해야 한다. 또한 삶에 안전망을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당대 뒤에서 받쳐주는 누군가가 부재하여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버티는 힘이 여기서 나올 수 있다.

2세대는 1세대를 기반으로 당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컷 이상의 계획과 수행 능력을 달성하게 한다. 또한 최소한 기술 하나는 습득하게 하여 급할 경우 생존 수단이 될 수 있게 한다. 1세대에서 한 시행착오를 말해주며 멘토 역할을 한다. 멘토 역할을 하는 자는 스스로 잘못과 실수, 실패를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그것을 통해 2세대는 배워 전략을 세우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같이 헤쳐나가 성장, 노력하는 모습이 반드시 인식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3세대는 1, 2세대를 기반으로 만든 2세대 보다 더 나은 계획과 수행 전략을 수립하여 성취를 이루게 유도한다. 2세대가 받은 교육을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가르친다. 하지만 좀 더 체계적인 방향과 위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개념화시키고 이론화시켜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3세 대게 여유로운 자율권을 주면서 시대와 자기 가치와 방향에 맞게 적용하여 수행하게 한다.

■ 주의 사항

단 제일 중요한 부분은 1세대가 만들어낸 윤리적인 분위기와 기본적인 테두리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다. 그것이 세상적으로 난세 시기 안정망이 되어 준다. 스스로가 불법적인 영역들을 멀리한다. 마지막으로 각자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태도는 구성원 전부가 무의식 속에 기반이 각인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구성단위의 개인들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건,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에게 불의함, 억울함을 주장한다. 역사 이래로 거대한 문명과 국가 단위 일지라도 내부에 가장 작은 구성단위인 개개인들이 사람과 세상에 모든 것들에게 연민을 기반한 윤리적 사상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변한 듯 하지만 다시 퇴보하여 변하지 않는다.

시스템을 세우고 전환, 보정하면서 법과 제도를 바꾸고 작은 단위의 어떤 규칙까지도 바꾸고 적용하여 실천하더라도 혹은 시대의 여러 요인에 크고 작은 변화를 다수, 소수, 개인이 주도했던 앞서 말한 그것이 기반이 되어 있지 않다면 결과적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허무함과 불신들이 가득해진다.

사람들은 항상 시스템과 그것에 위치한 상위 집단에게 분노하지만 물론 그들이 직접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분노하는 건 당연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들에게 작다면 작은, 크다면 큰 그 사소한 악행에 대해서는 다르게 바라본다. 덧붙여 조금이라도 가까운 타인들에 대한 시선도 다르게 바라본다. 사실상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세상은 나, 너, 우리, 집단들과 구성원이 만든 시스템이 흐름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구별하여 별개로 볼 수 없는 거다. 모든 구성원들은 분명하게 다양한 이유로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건 함께 세상에 숨 쉬고 살고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각자 삶에서 바른 행동들이 모여 기득권 소수를 바꿀 수 있다

3) 인간을 관찰하여 분석하여 얻은 결론

■ 서론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출신 대학 때문이 아니었다. 기존 서열에서 오는 경향성은 많이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무시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어떤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의 차이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경향이 자주 발견되었다.

■ 본론

□ 배경지식의 부재, 관심 부족, 응용력 부족

- 뉴스, 법, 시사 등 사회 돌아가는 동향을 전혀 보지 않는다. 본인의 관심 분야나 취업·전공 관련 동향조차 신경 쓰지 않으며, 거기서 필요에 맞는 정보를 자신에게 맞게 추출하는 경향도 자주 발견되지 않는다.

- 단편적인 역사적 인식은 단순한 접근 방식에 기초하며, 여러 지식을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부재한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결국 "나"에게 맞는 정보 연결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세상 안에서 구조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기본적인 정보를 들어도 스스로 분석해야 하는데, 이를 타인에게 위임하는 경향이 강하여 본질을 외면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 감정이 모든 판단을 앞선다. 그래서 주위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스스로 전략이 부재하다. 타인에게 판단을 위임하고, 현재 주변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만 신경 쓴다. 전략이 없기에 가까운 집단과의 비교에서 오는 고양감으로 이를 대체하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자신이 할 수 있는 에너지, 노력의 총량을 모르기 때문에 주어진 방향과 자료를 고르는 능력 자체가 부재한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평균에서 벗어난 방향을 목적하더라도, 그 목적에 맞는 단계적 수행 계획이 부재한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개인 인식과 사회 인식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도 부족한 경향이 발견된다.

- 각 개인에게 주어진 현상을 분석하여 자기만의 철학적 이론을 끌어내지 못하며, 그에 따라 다음 단계에서 적용·검증이 불가능한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에 맹신하며, 본질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계획 생성이 어렵고, 생성된 계획에 반응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경향이 높다. 그리고 만약 우연히 얻어걸리는 느낌으로 사회에 나가서 잘되면 자기 덕이라 여긴다. 반대로 원하는 결과가 아니면 가르친 사람 탓을 하는 사익에 대한 욕망의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 결론

- 보편적인 인식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위의 항목들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며, 서열이 위로 올라갈수록 제시된 항목과 반대되는 일치성을 나타내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일정 수준 이상 입결로 주어진 결과는 곧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제시된 항목들과 반대되는 행동을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개인 상황이 사회 통념상 매우 어려운 조건(의식주 불안, 가정환경 불안 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적의 선택을 해낸 경우, 입결과 상관없이 제시된 항목과 반대되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사회에 나가서도 제시된 항목의 반대 유형과 유사한 방식으로 인간이 구분되며, 다양성은 이 항목들에 대한 반응 밀도와 간극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결국, 동일한 유형의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 각각 2가지 유형에 밀도와 더불어 각각 다른 2축 유형에 밀도 된 범위가 유형을 넘나들며 뒤 섞인 경우가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을 다른 형태로 수치적 측정이 가능하다.

- 이러한 경향으로 구분된 인간 형태들이 축적되면 통계화되며, 다양한 자료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로 인해 사회적 편견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

- 본질적으로 대학에서 학점 및 기타 같은 요소는 큰 관련이 없다. 중요한 건 개인이 스스로 설계한 전략에서 드러나는 정량적인 중요한 요소들을 관찰하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 이 글에 제시된 내용은 세대별로 따지면 40대 초반까지는 일치성을 보이나, 50대부터는 대체적으로 변수가 많아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급격한 발전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4) 인간을 감당하는 방법

■ 보통이상 사람/집단

평소에 각각 인간들에 욕망들이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쌓으면 구성원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특수한 흐름을 포착한다. 그들이 과거에서 했던 유사 행동, 사건과 상황적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 다가 올 상황과 직면한 현 상황에서 다면적이고 구조적인 미묘한 감정에 흔들림부터 행동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상에 욕망에 크기를 분석하고 분석 시에는 그의 입장과 주변 입장 또 3자 입장 생각해 본다. 그가 속한 집단에서 조직의 성격과 목적, 당면한 상황과 목적, 구성원 역량과 수준, 힘의 역학 관계, 공식적인 힘의 역학 관계가 어디인지 파악한다. 전부 공통부분과특수한 부분을 구분해서 잘 쌓아 시기적 절하게 따라오는 행동을 조합하면 어떻게 할지 방향이 보인다.

욕망이 클수록 더 잘 보이고 감췄을지라도 미묘한 작은 변화 습관 등등 여러 가지를 모아서 쌓다 보면 공통적인 유사성과 특수성이 나눠진다. 그러면 그것들에 파생되는 행동 양식은 장기판에 장기를 두듯 예상 경로와 행동, 반응 파악이 가능하다. 그것을 통하여 예상 경로를 막을 수 있으며 마지막에 쥐를 몰 듯 나갈 길을 보이게 살짝 한 방향을 열어두면 된다.

■ 강자급 이상 사람/집단

반대로 정말 엄청 강적을 만나면 그가 가장 원하고 그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가 구멍이 났으며 어떤 욕망에 취약한지, 절실한 게 뭔지, 어떤 유혹에 약한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가 믿고 바뀌지 않는 뭔가 있는지, 잘 변하는 게 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인간 자체를 구조, 다면적으로 정신과 머리부터 발, 습관, 생활 반경 등등 여러 가지로 쪼개고 연관 지어 섞는다.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생각해 보고 예외도 넣어 가정하는 것도 염두에 둔다. 물론 현 소속된 집단, 소속하고 싶은 집단, 생활 주변도 반경 만나는 사람 등등 중요하다. 주변 환경도 동일하게 관찰하면서 쪼개서 섞고 그러면서 가상 시나리오를 짜는데 고려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카드를 냉정하게 보면서 될지 말지를 가늠하고 전후 여파와 해야 할 조치 대응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관련 자료를 철저하게 자료를 정제하고 개념화시킨다. 감정과 행동 밀도와 연관성을 각각 수치를 관찰해 예상 수치를 산정해 개념화에 대입해봐야 한다. 거기에 습관이나 느낌을 정제하여 대입해 본다.

본인이 느끼는 것 과 행동이 다를 수가 있다. 싫은 게 싫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게 아닐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일 수 있다. 이건 호르몬이나 가식적 혹은 감정적 변화로 일어난다. 본질적으로 결국 중요한 건 상대 혹은 집단이 원하는 욕망이며 그것이 선행이든 불행이든 불법이든 그 어느 것 이든 욕망이 뭔지가 중요한 거다. 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고 줄 수 없던 있던 기본적으로 편안하게 대응한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부풀리든 중요한 건 진실된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며 기본적으로 모든 건 정량화되어야 하는데 감정 도 그 범주에 속한다. 누울 자리 인지 아닌지 반드시 처음부터 구별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동시성과 타이밍을 늘 염두해야 하면서 효율적이어야 하고 패턴을 파악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 혼합 적용

평균, 강자, 혼합을 개인과 집단에 시기적절하게 혼합 적용 해야 한다.

> 의식주에 관한 모든 세부적 부분을 빠짐없이 관찰, 그리고 세분화와 패턴화.

> 이 글은 사람을 겪으면서 관찰하여 얻은 결론이며 상대가 나에게 나쁜 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측정하는 도구로 쓰길 바란다

4부 실행 그리고 미완, 진행 중

1) 4차 산업시대

■ 2018년

내가 2018년에, 2030년 전 후 되면 반드시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기존 산업 경쟁자 증가와 경쟁력 유지 비용 상승, 그리고 인공지능과 로봇 등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산업 전반에서 인력 감축이 진행되면서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전통적 윤리 붕괴와 쉽게 이뤄지는 잦은 연애 문화, 왜곡된 가치관으로 인해 미혼율 증가, 기형아 출산율 증가, 출산율 감소, 이혼율 증가, 페미니즘 과잉 확산, 동성애 증가 등으로 인구가 급감 예상했다.

당시 출산율은 1 아래로 떨어졌으며, 더 떨어질 거라고 봤다. 이는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닌 2세대가 지나면 젊은 인구가 현재의 10% 수준으로 줄어들 것 임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족 단위가 해체되고,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 부양비 부담이 계속 늘거라 봤다.

새로운 산업 성장 분야 발굴이 미흡하고, 경쟁국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인구 감소로 인해 젊은 노동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과도한 대출과 대규모 가격 상승, 폭락 위험에 처해 있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장기적인 부동산 가격 급등은 연착륙이 불가능한 상태로, 언젠가 자산 가치가 크게 하락으로 사회적·경제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 전망했다.

당시 산업 변화와 사회 변화에 맞춘 자본 이동 속도가 늦어지면서, 부동산 자본이 금융 자본으로 넘어가는 변화가 지체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자본이 특정 지역과 계층에 몰리면서 근로 의욕이 상실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었다.

당시 대안으로 친구와 상의하여서 늦은 나이에 간호학과로 진학했다. 물론 원하는 게 있고 되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어서 당시 선택은 상당히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분야도 역시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 은 들어가기 전 알았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늘 생각은 했었으며 물론 다른 분야보다는 변화 속도가 조금 느리다. 그렇다고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었다. 모든 산업에 직군이 당시에도 도전을 받고 있었다. 단지 사람들은 인지를 못 했었을 뿐이다.

■ 2025년

예상 되로 AI와 로봇, 그리고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대체되고, 직업의 다양성을 선택하지 않으면 예상 시기에 대량 실업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시기는 멀지 않으며 포기할 건 포기하고, 얻을 건 얻어야 하며, 내가 목적하는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며 냉정하고 실리적으로 판단해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했고 지금은 더욱 그렇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의 방향에 만 집중할 뿐이다. 완전한 4차 산업 혁명이 정착되면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고 사실상 현재 세대가 마지노선이라 본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은 양자 컴퓨터, 로봇, AI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넘어 실체 적인 만남 없이도 실체적인 행동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의 인간에 대한 욕망과 불신에서 비롯된 변화다.

결국 진정한 계층 이동도 인간이 인간을 온전히 마주 볼 때 가능하다. 내년에 복학해서 끝내야겠다. 먹고사는 건 어렵고 삶이 내가 원하는 계획 되로 실행이 부드럽게 잘 안된다. 들어가기 전 이리도 태풍 같은 시기를 보낼 거라 상상도 못 했다. 문제가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감당하기가 버겁다.

■ 사회 구조 변화

1997년 외환위기 → 2008년 경제 위기 → 2020년 코로나 및 경제 불황 → 2025년 현재

1997년 외환위기는 고용시장에서 강제적인 노동 유연화와 중간 관리자급 이상 대규모 정리해고를 불러왔다. 이는 의도치 않게 고속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단점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신규 인력 채용의 기회를 마련해 경제 성장 동력을 제공했다. 당시 정부 정책 방향과도 부합했지만, 그 결과 고용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2008년 경제 위기 당시에는 이미 많은 기업이 사라진 상태였으며, 국제적인 금융 위기로 인해 신규 인력 시장의 공개 채용이 대폭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학벌, 경력, 자격증 등 양적 스펙 경쟁이 심화되었고, 사회가 점차 고도화되면서 전반적인 성장세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저성장은 아니었지만 넓은 의미에서 저 성장 기조로 평가되며, 경력직 선호 현상이 본격화되었다. 사실상 이때부터 무조건적인 노력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불황은 신규 인력 시장을 거의 붕괴시키고 공개 채용 관행을 더욱 축소시켰다. 이에 따라 경력, 학벌, 관련 스펙에 대한 요구는 더욱 정밀하고 질적으로 강화되었다.

"세상은 공격적인 바둑, 수비적인 바둑, 정수를 두는 바둑 모두를 종합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부분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

5부 감정과 생각

■ 그대들이여

“ 그대들이여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가서 그때인지 알았고,

그조차 지나서 그때를 말하던 시기도 그때인지 몰랐네. 보고만 있어도 분위기가 가득하고 진동한다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도 말고 너무 팍팍하지도 말고

너무 동동 구르지 말고 쉬는 날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아직은 가을이 아니지만

살짝 더운 그렇다고 가을에 걸쳐서 살짝 찬 기운이 흐르는 그때, 선풍기를 약풍으로 틀어 놓고 천장을 향해 누워있는 그 모습처럼, 당연히 창문은 열어 놓아야지.

그러한 기분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누워 있는 기분처럼 아름답다는 그 자체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그 순간 과거를 본인이 살짝 자책할 수는 있으나

그렇게 하는 순간 그 조차 아직은 싱그러운 에너지가 가득 한 순간들이기에,

여름날 만원 버스를 아침에 타듯이 생생하고 묘한 정적과 더움에 시작 점이 되기 전

그때 그것이 설렘과 긴장과 살아있는 운명들이기에,

내 말을 듣고 흘리면서 몸으로만 기억하기를 바라네 "

■ 상실

우린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 을 가슴에 삼켜야 합니다. 그것은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십 대를 지나 성인이 되고 동시에 늙어가면서, 생에 전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은 다양한 환경과 상황들에서 작용합니다.

무엇이 옳은 가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무엇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까요?

누군가들은 지나오고 누군가들은 지나갈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나약한 생명체입니다. 또한 세월에 함축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뎌지고 무뎌지는 게 감정입니다. 그렇지만 기억, 감정 이란?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마음에 텅 빈 구멍은 채워지지 않는 깊고 거대한 우물입니다.

■ 윤동주도 서른이었을 거다.

“ 아직 거기 있는 건

밤을 지새우는 것처럼

미쳐 서있지 못함이고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시간을 지나 보내면

물처럼 베이지 않으며

흙처럼 알갱이가 작아져

단단 해질 거외다.

누구도 스스로를 제외해

잎새 이는 바람에 부끄러움 없다면

사람이 아닐 거외다.

손바닥을 보고 하늘에 대보면

별 하나에 손금, 별 하나에 자화상

추억은 하나둘 있을 거외다.

밤새 우는 귀뚜라미처럼

발길 없는 언덕 무덤으로

언젠가 자라나는 풀이 무성할 거외다.

그럼에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첨탑 위에 십자가 거꾸로 서있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할 거외다. “

사람들의 혼인 신고 착각

혼인은 법이 만든 것 이 아니다. 인간은 정신과 신체가 하나 된 존재다. 두 남녀가 본능과 유대로 주기적이고 장기간 신체적인 깊은 관계가 합의로 행동화되면 그 자체가 혼인 관계다.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혼인은 존재하였다.

인간 사회가 규모가 커지면서 법은 태어났으며 뒤따라 법은 성문화를 통해 행정적 절차로 보완한 거다. 혼인 신고가 꼭 혼인 관계 본질을 규정하는 건 아니다. 본질을 외면 한 발상은 제도적 면피에 불과하다.

한번 맺어진 관계는 헤어진다고 해서 결코 ' 없었던 ' 것이 되지 않는다. 기억과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현재 하는 행동이 언젠가 누군가들에게 본보기가 될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 쇼생크의 탈출

쇼생크에 탈출은 사람의 인생을 말하는 게 아닐까? 평생 갇혀 사는 건 대부분 다 같은 조건이다. 어떻게 보면 그걸 말하려 한 거다. 재수 없게 돌 뿌리에 누구나 한 번쯤 걸리고 어찌 보면 그게 수없을 가능성도 있다. 범죄를 저지른 자도 그들을 관리하는 자도 인간을 표현 한 수단이고 그들이 들어온 이유도 그와 관련된 표현되지 안 던 내면화 된 대사 하나하나에 숨겨진 거도 전부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자유가 자유가 아니고 갇혀있는 게 갇혀있는 게 아니다. 또한 세월에는 소용이 없어지고 결국 허무와 무의미함 만 남는다.

# 여기서 제시한 정책들은 모두 서로가 맞물리도록 설계하였다. 어느 것 하나를 독단으로 바꾸는 구조

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구조를 구상하였다.

#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경제 설계시스템은 2007년까지 그 시스템에 자생력 완성과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2020년까지 기존 시스템의 최대 수명이 다했다. 2020년 ~ 2022년 부동산의 급격한 상승은 구조적인 한계였다. 이미 기존 틀을 버리면서 새로운 구조설계는(새로운 패러다임) 2008년부터 시작해야 했으며 늦어도 2012년에는 시작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개발 투자, 토건 및 부동산 중심의 성장 부양 경제정책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여 과거 정부들이 쌓아 올린 모든 국가 미래 가능성을 소모해 버렸다. 당시 거의 모든 자본의 총량을 자원개발 투자, 토건 및 부동산으로 쏟아부어서 사실상 현재의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점진적으로 바꿔서 갈 시간이 거의 없으며 신속하고 빠른 개혁이 필요하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모든 걸 다 품고 가는 개혁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6부 욕망의 시대 에세이


1) 변하지 않는 기억들

건물에서 무엇인가를 할 때 본질은 건물의 월세와 관리비, 보증금, 권리금이 문제이다. 왜? 그것을 시급이 높다고 떠들어 되는가? 왜 건물주들의 횡포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않던가? 언제부턴가 자본주의가 건물과 땅에서 거둬들이는 돈으로 만 운영되었는가? 자본주의는 생산성을 가지고 모든 인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거다. 그건 정치도 아니고 사람들의 각각의 개인이 부의 정도가 아무런 근거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아래서 자신이 최대의 효율을 내고 최대의 보이지 않는 선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게 또한 자본주의다.


하지만 건물과 땅으로 돈을 버는 것이 그것이 자본주의 일까? 그것이 정말 사회와 인간에게 효율을 가져오고 그것이 인정받는 게 당연한 자본주의 세상일까? 우리는 이것을 언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을까? 사실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이단이다. 존재하지만 입 다물고 조용히 자본의 효율을 노력하는 구성원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욕망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현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떠들며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돈이라며 자랑을 한다. 그것이 한국에 모든 자본주의 문제에 시작이라 본다.


그것을 지적하거나 그러면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하지만 건물과 땅에서 나오는 주된 논리의 금전적 이익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대농장에서 사람들을 착취해서 사람들에 노력을 강제로 뺏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중세시대나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어느 왕조에서 존재하던 신분제에서 벌어지던 악습과 고문이다. 이것이 사회에 중심이 되는 것은 결코 자본주의가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자본주의에 본질은 인간이 있어야 하며 소비자가 있어야 하며 생산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모든 전제의 기반은 있고 그 위에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상품과 여러 가지를 소비하는 주체이다. 그 주체에게는 반드시 구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있어야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생산자이다. 소비자는 생산자가 생산을 할 때 그것에서 고용된 구성원이 되어 이익을 받을 때 구매력이 생긴다. 반대로 생산자는 고용된 구성원이 생산을 하여도 그 생산물을 소비를 못한다면 생산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본질은 어려운 수식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그럴듯하게 보여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을 포장하려는 욕망이다. 사실 간단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간단한 것을 어렵게 포장하고 간단한 것을 어려운 단어로 표현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고 소비자가 존재하여야 그 소비자는 구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성립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아니다.


현재 시급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사람들의 기본적인 구매력을 보존하는 게 시급인데 그것이 과하다고? 정말 과한 것일까? 시급이 높아서 나라가 망하고 시급이 높아서 한국경제와 사회가 망한다고? 정말 높은 건가? 도대체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가진 자들의 마인드를 마치 대단한 말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가? 시급 아니라 적어도 생활임금 기준으로 산정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소비를 하고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결국은 시급을 가지고 높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되돌아봐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건물주에게 받은 횡포를 투영하는 게 아닌지, 이미 부동산은 사회를 잡아먹는 괴물이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거짓을 전달하는 언론도 사라져야 한다.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조차 생각을 하고 걸러서 들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균형점이 없으면 성립이 안된다. 더구나 소비자가 구매력이 없으면 더더욱 성립이 안된다. 인간의 의식주를 가지고 경제라는 이름으로 장난질을 하고 소수에게 이익을 독점하는 건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다시 무법의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논리이다.


10년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당시 고시원 원장님이 건물주에 횡포로 전전긍긍하며 월세와 관리비를 마음대로 올려도 사실 아무 말도 못 한다고 하였다. 법은 법일뿐 사실상 아무런 보호장치가 안된다는 것이다. 건물주도 아니고 건물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었는데 마치 건물주인 것처럼 하대를 하고 행동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란적이 있다. 건물주는 더하다. 사실 그 자식들이 더 하다. 마치 자신이 뭐가 된 거냐? 행동을 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면 이게 뭔가 싶다.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런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참 슬픈 일이다.


권리금도 문제다. 자릿세 같은 것인데 그것은 언제부터 생긴 지 모르지만 스스로들의 바보 같은 행동이다. 권리금이 보증금보다 훨씬 비싼 경우도 많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비용이다. 하지만 이것이 통용된다는 것이 사실상 불법이 판치고 21세기에 말이 안 되는 경우다.


또한 고시원 같은 것도 법으로 규격을 정해서 가이드를 만들어 인간이 사는데 기본적인 형태는 유지하게 하여야 한다. 대부분 이곳이 사람이 살아도 되는 곳 인가? 하며 스스로 많이 되묻는다. 모든 고시원은 당장 시급하게 조사하여서 당장 가이드를 만들어 규정에 미치지 못하면 폐업시켜야 한다.


결국 인간들이 자본주의 안에서 욕망이 극대화되면 세상은 괴물이 된다.


건물주의 욕망이 은행과 건설업자, 부동산 업자들의 욕망과 합쳐지고 그 욕망이 자영업자들에게 향하고 그 자영업자들의 욕망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향하고 또한 인간이 살기에 말도 안 되는 공간임에도 그것을 상품으로 팔아서 이득을 취하는 현실이다.


2) 우리는 끝을 달리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자식은 부모를 버린다. 엄마는 아이를 죽이고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갈갈 리 찢겨서 미용 재료로 쓰이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은 전쟁도 없으며 굶어 죽는 이도 거의 없다. 오로지 자유와 개인을 강조하는 시대다.


우린 지금 어디 서있는 것일까?


한국은 오래전부터 교육은 신분 상승의 수단이었고 그것이 오랜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 교육은 교육이 아니고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과도한 사교육비, 능력을 벗어난 기러기 부모...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행복? 그 행복은 누구를 위한 행복인가? 나? 주변? 부모? 형제?



# 2025년 한국사회 현재 노후 준비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0~69세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 29.9%가 아직 노후 소득·자산 관리를 전혀 생각지 않음.

- 응답자들이 예측한 은퇴 후 평균 필요 생활비는 월 300.2만 원, 57.6%는 300만 원 이상이 필요 응답.

> 현재 준비 중인 노후 자산은 다음과 같은 분포

- 국민연금 가입률: 75.5%, 수령자 예측액은 월 96.6만 원

- 퇴직연금 수령 예정자: 9%, 수령액 월평균 130.9만 원, 퇴직금은 평균 약 1억 1,334만 원 예상

- 개인연금 가입률은 매우 낮아 10.7%에 비율.

- 수령액은 정기 수령 시 월 64.5만 원, 일시금 시 6,319.8만 원 수준.


자식에게 자신의 능력을 넘는 사교육을 하고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TV 방영되는 소수의 성공을 바라보고 잘 된 경우를 듣고 보고 하고는 그것이 전부 인 것처럼 사교육에 전부를 쏟아붓는 게 잘하는 걸까? 더 이상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시대도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유물이고 부모는 늙으면 자식의 짐덩이에 불과하다. 줘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받으면 불만만 가득하다.


이것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내가 10년 전 본 세상은 한국사회 가족시스템은 붕괴되었다.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죽어도 누구 하나 병원비 때문에 눈치보기 바쁘다. 돈이 없고 가진 게 없으면 찾아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대다수 인간들의 공식이다. 며느리는 남자의 부모를 남 보다 못하게 생각하고 남자는 아내 눈치 보면서 자기 부모를 찾아가는 것조차 쉬운 게 아닌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내 남동생이나 오빠는 자기 부모를 모시기 원하면서 자신은 남편의 부모를 닭보다 못하게 여긴다. 어디서 잘 못 된 것일까?


부모가 죽었는데 자식들의 자식은 그 순간 전화를 해서 과외비, 학원비, 용돈을 물어보고 있다. 그 상황을 설명해도 전화를 끊어주지 않는다. 이것이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현실과 먼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이것은 너의 이야기면 당신들과 우리들의 이야기다.


자유, 개인을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지키던 사회 윤리나 시스템은 왜 지키지 않는가? 그것이 무너지면 그것을 부정하면 그 누군가는 대체할 역할은 해야 하는데 그것은 없다. 오로지 부정만 존재하는 거다. 부정하고 부정하고 오로지 자신의 자유와 권리만 강조한다. 모든 문제는 그것에서 시작한다. 자유든 권리든 뭐든 좋다. 하지만 의무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무연고자 이면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했다. 살릴 수 있는 만큼 살려서 끝까지 돈을 뽑아낸다. 왜냐하면 그 비용은 국가가 주기에 이미 죽었을 사람도 끝까지 살려서 철저하게 숨을 올려서 돈을 뜯어낸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연고자 노인 중환자실 환자가 더 돈이 된다며 웃는 모습을... 그것은 악마의 모습이었다. 인간을 뼈가 마르고 살이 붙어서 가죽이 될 때까지 돈을 뽑아낸다.


부모가 돈이 많으면 자식은 매일매일 찾아온다. 하루도 빠짐없이, 마치 자신은 다른 인간들보다 훨씬 효자이고 효녀이며 심지어 형제간에 서로 자신이 모시겠다며 마음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고 싸우는 게 일반적이다. 어찌나 재수가 없던지 옆에서 보면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 인간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인간이 존재할 의미가 있는가?

가족은 의미가 있는가? "


한국은 머지않아.... 곧 가족의 존재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할 시간이 올 거다. 냉정한 사실은 부모든 형제든 본질적으로 타인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차가운 현실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 부정하고 싶은가? "


곧 머지않아 ~ 한국 사회는 돈을 준 자와 받은 자가 서로 피 터지는 시선과 신경질적인 언쟁이 복합적으로 오고 가서 서로 법으로 해결하려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 시간이 오면 그 시간이 돼서야 타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거다. 얼마 남지 않았다. 빠르면 5년 늦으면 8년? 그 정도 일거다.


" 부모 자식 간 사랑? 웃기지 말아라~ "


받은 자는 당연하게 여기고 준 자는 과도한 사치일 뿐이었다. 이것이 진실인 거다.


" 받은 자들이여 그때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준자들이여 그때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


연애질과 쾌락에 다 쏟아붓고 부모의 돈을 전부 쾌락에 소모한다. 그것을 자신의 뛰어남이고 그것이 자신의 대단한 능력이라 광고하는 인간들이 길바닥에 차이고 널릴 정도다. 여러 남자, 여자와 길바닥에서 만나서 모텔에 들어가 섹스를 밥 먹듯 하고는 그것이 사랑이고 경험이며 대단한 자랑이라 여긴다.


창피한 게 아닌가? 그 모텔비와 만나서 들어간 비용, 시간은 부모가 뼈가 빠지고 허리가 부서지고 노후를 담보로 가져다준 돈인데 그것이 그렇게 잘난 것인가?


또한 나이 든 인간들 중 마치 그것에 세상 진리가 있으며 나는 젊은 날에 드라마에 한가운데 주인공이었으며 세상에 모든 인간의 진리를 아는 자라며 떠드는 수단이 된다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듣다 보면...


" 청춘이 모텔과 섹스인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그의 말이 생각난다.


3) 정치와 역사


역사를 배우면 선동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배신, 지략, 흐름, 판세, 인간 군상, 조직, 심리, 사건 등등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게 역사다. 특히나 선동은 역사에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요소다. 사건을 통해 배경과 인물들의 관계, 이미 드러난 결과를 통해서 연도별 변화를 시시각각 보기 때문에 들여다보면 내가 마치 그 시기 인물이나 주변사람들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더더욱 만약을 가정하기에 인간적으로 그때 심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거기서 선동 혹은 리더십 같은 걸 배우는 거다. 좋게 말하면 리더십의 한분야이고 나쁘게 말하면 선동이다. 이것은 특히나 흐름, 즉 욕망의 흐름을 읽으면 더더욱 그것을 선명하게 배운다. 물론 이것은 다년간 스스로 공부하면서 입력하고 되새기고 하는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일어나는 거다.


현재 교과서 한국사는 사실 이미 사람들은 대부분 진리라 믿지도 않으며 거짓말이라는 것은 역사에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알 고 있다. 단지 비판적인 사고가 없고 그것이 진리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 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물론 그것에 권력을 쥐고 있는 인간들이야 자신들이 권력을 쥐고 있으니 거짓말인지 알면서 거짓말이 아니라고 세뇌하면서 사는 거다. 그래야 그것을 지키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의 지배층이 명분론에 핑계를 되고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건국한 것처럼, 물론 후에 그것이 조선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다. 더 웃긴 건 그 명분론을 신처럼 떠받든 게 사림이고 그 사림이 고려를 버리지 못해 산이나 지방으로 도망가거나 내려간 인물들이다. 그들이 사림의 조상이다. 그 사림의 후예들이 후에 명분론에 미쳐서 주자가 세상에 진리라 희대의 역사적인 발언을 한 조선사 최고의 이상한 송시열 같은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에 아이러니다.


하여튼 어릴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커서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문화를 발전시킨 통일신라가 한반도를 다 통일 못했으며 그러면서 그것을 통일신라라고 말한다. 거란을 막아낸 고려가 고작 한반도를 다 점령을 못한 세력이라는 거다. 그렇지만 왕건은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다. 고려는 몽고에 대항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끝까지 버틴 나라다. 다시 말하지만 한반도를 다 점령을 못 한 나라다. 이것보다 훨씬 웃긴 건 백제나 고구려가 각각 해상 왕국이니 대 고구려 하면서 주변에 영향력이 있었다고 가르치고 실제로 사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한반도 남부나 한반도 북부 정도만 점령 한 나라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즉 사실 국사 교과서가 거짓말 투성이라는 거다. 머리가 있으면 누구나 한 번쯤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역사를 전공 안 하고 단지 학창 시절을 지나 어른의 정상적인 눈높이면 교과서가 입만 열면 거짓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다. 어떤 인간들은 자기 나라를 크게 보는 건 국수주의니 뭐니 떠들고 환타지니 라며 게거품 무는 소리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건 최소한 국사교과서는 거짓말을 한다는 거다. 누군가 역사를 자기들 방향되로 계획적으로 수정했을 거라는 걸 얼마든지 추정할 수 있다. 이것 조차 음모론이니 뭐니 떠들면 그런 주장을 하는 자체가 무조건 진리라 여기는 자세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역사는 알 수 없다. 누구나 당대를 살면서 눈이 뜨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거다.


인간의 욕망이 가득하면 지나온 삶도 자신들의 의도로 수정을 가한다. 자신들의 입맛대로 진리라 가르치면 떠들고 나머지는 이단이라 하며 자기들과 다른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은 고대사 석박사학위도 안 주고 그것을 이수하였다 하더라도 교수나 강사 자리는 주지도 않는다. 자기들끼리 논문을 인용하며 자기들과 다른 주장을 하면 인용조차 안 한다. 논의 대상에서 왕따를 주는 거다. 이것이 욕망에 미치면 일어나는 거다. 어쨌든 왜 이렇게 말이 길어졌는가? 요즘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가 사회적으로 이슈이자 신드롬이다. 공시를 준비해 본 나로서 지나가는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오면 잠깐 멈칫해서 읽거나 영상을 하게 된다. 그는 정확하게 인간을 알고 판세에 주사위를 던진 거다. 강사를 그만두고 조국당을 가기도 뭐 하고 민주당을 가기도 뭐 하고 간다고 쳐도 5년 ~ 7년은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거다. 당연한 것이며 그렇게 누구나 쌓아 가는 거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가기기 쉬운 게 자유한국당이다. 본인도 대구 사람이고 대구에 있는 대학교에 나오고... 한국사는 이미 공시에서 한검 급수 자격증을 따서 제출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아마 누군가 의도로 수정된 현 한국사 여도 다년간 역사를 강의하면서 이글에서 처음 언급한 것을 스스로 깨닫고 터득하였을 거다. 주사위를 던진 게, 굳이 비상계엄으로 대통령에서 잘린 인간을 두든 하는 논리를 펴는 것을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주사위를 던진 거다. 민주당이나 조국당을 가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힘들다. 물론 거기는 현재 대세라서 인재도 많을 거다. 그러면 자유한국당인데 여기도 공천은 받아야 한다. 기존에 자리를 차지한 인간들이 널렸다. 자한당 이미 보수가 아니고 권력을 노리는 이권 집단이라는 이것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구라는 도시는 매력적이고 그 배경에 본인이 극우 성향을 드러내면서 몸을 던지며 세를 모으는 거다. 언젠가 무소속으로 나오든 현재 자한당이 공중 분해 된 상태인데 거기서 자신의 세를 끌어모으는 거다. 그것이 언론에 관심을 받고 주목을 받으면 대구에서 먹힌다고 가정하니까 하는 거다.


이것은 무슨 과정이든 합격만 하면 된다는 논리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된다는 욕망의 에너지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욕망의 시대, 그 욕망을 오직 극으로 추구하는 그런 현상이라는 거다. 역사를 통해 선동과 이목을 끄는 법을 터득한 거다. 인간들의 심리를 터득한 거다. 대중은 인간이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한 선택을 하는 거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노린 전략이다. 욕망은 불완전함을 파고든다. 마치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건네듯이 말이다. 어떤 인간이든 자신의 선택을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안 한다. 하지만 잘못되었다고 판단되어 버리면 스스로 부인하는 쪽을 대체로 선택하는 게 인간이다. 이념적으로 일정한 형태와 변화가 없는 정서를 가진 곳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응답하는 건 하와에 몫이고 하와의 권유를 받아들인 건 아담의 몫이다. 즉 무엇을 하던 결국 대중의 몫이다. 단지 주사위를 던진 자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4) 절대로 열지 말아야 할 문


인간은 정신과 몸이 분리된 것이 아니다. 정신은 따로 있고 몸이 따로 존재한다는 논리는 자신의 행위를 면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신과 몸은 하나다. 우리는 금단의 영역을 열어 버렸다. 그것이 연애라는 명목과 개인의 자유를 근거로 자신의 타락을 위안하면서 무적의 쾌락의 시대를 달려가고 있다. 인간이 한 인간을 만나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내밀한 부분까지 몸과 감정을 섞고 오랜 시간을 보내고 " 기승전결" 과정을 통해 인간을 만나고 헤어지는 그 모든 과정을 한 세트가 아니라 여러 세트를 하는 것을 마치 대단한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자랑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가?


나의 몸 어딘가 어느 부분에 어떤 자국이 있고 생리현상은 어떻게 되고 내가 감정과 쾌락이 오락가락하는데 신체의 반응과 숨소리를 여러 사람과 나누고 그런 거다. 누구나에게 비밀은 있다. 그 비밀을 아무 나하고 공유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유인가? 방종인가?


인간이 " 기승전결 " 관계를 한번 이상 반복하면 인간의 몸과 정신은 온전할 거라 생각이 드는가? 어디가 열려도 열리는 것이고 그런 세트 과정을 상대를 바꿔가면 하는 행위가 정신이 대단히 깨지는 과정이라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인간이 정신과 몸이 깨지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더더욱 중요한 사실은 쾌락의 문이 열려버리는 거다.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쾌락을 정신과 몸이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돼버리는 거다.


인생은 고통이다. 삶은 행복할 수가 없다. 행복은 찰나이고 기쁨도 찰나이다. 냉정하게 보면 사람인생은 태어나는 순간 고통의 매 순간이다. 그 고통의 시간에 쾌락은 매우 중요하다. 삶에서 오는 수많은 고통을 상쇄하는 게 그 쾌락인 것이다. 인간이 가져야 할 한평생 쾌락을 단기간에 여러 인간과 극단적으로 소모하는 거다. 그것이 현대시대 연애라 불리는 행위다. 이것은 이미 연애가 아니다. 사실상 연애는 혼인 관계다. 부부처럼 살다가 헤어지는 거다. 부부처럼 살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


법적인 혼인을 하면서 혼인을 처음 했다고 한다. 이것은 웃긴 말이다. 혼인은 인류가 생긴 이래 존재했고 법은 후에 공동체가 생기면서 제도적으로 보완한 거다. 즉 이미 여러 번 이혼을 한 인간들이 법적인 결혼을 해 놓고는 " 나는 처음입니다."라고 웃고 떠드는 거다. 정말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다가 헤어지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진심으로 "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가?"


세상이 그런 게 어디 있는가? 인간의 관계에서 " 기승전결 " 과정을 여러 인간과 반복해서 살았는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이든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더욱이 이건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쾌락을 극단적으로 소모하였는데 거기에 정서가 남아 있을 거라고 보는가? 이미 열지 말아야 할 금단의 문을 열어 버린 거다.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정상적인 사고과정으로 보지 못하는 거다. 상대는 자신의 어떻게 할 거라는 상상에 빠져 산다. 왜냐하면 수많은 세트를 지나서 정신과 몸이 깨진 거다. 또한 쾌락이 그것을 기억하는 거다. 상대를 의심하고 위험으로 인식하고 동시에 쾌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어이없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거다. 이 상황은 더 이상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몸의 균형이 깨진 상태다.


균형이 깨진 상태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면, 또한 그것을 동일하게 산 사람들도 감당을 못 한다. 자신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혐오감을 느끼는 거다. 그러니 혹여 가끔 우연하게 자기 삶과 다른 사람을 만나서 맺어지면 마치 자신을 포장하고 모든 지난 과정이 이것을 위해 그렇다며 정당화하면서 법적인 혼인을 잘했다고 진리로 스스로 공인한다. 그것이 인간 사회의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물질의 대한 욕망도 그렇다. 쾌락의 정서를 전부 다 소모한 상태이고 습관 자체가 이미 한 세트로 만족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려서 실증을 빨리 내고 그간 행동 했던 행동의 방향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뭔가를 찾는 거다. 그것을 찾지 못하면 앞서 말한 물질의 대한 욕망만 가득한 거다. 현대의 모든 남녀 간 미혼, 이혼, 외도, 낙태와 정당화, 물질주의 등등 근본적인 이유이다.


또한 퐁퐁남 현상을 이것이 가장 잘 설명하고 요즘 늘어나는 남녀 간 무고 사건과 기준 없는 불편한 성인식 사건에 대한 감정과 이유 없는 비난, 미움, 따돌림을 근본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원리를 가장 잘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대단하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드라마적인 상상 또한 여기서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에너지를 여기다 쏟아 소모하고 정신과 신체를 다 연소해 버리면서 거기서 자신에게 오는 드라마적이며 소설 속 주인공 심리는 이미 쾌락적인 금단의 서사적인 모든 과정에 문을 열어버린 거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근처에서 친하게 지내는 것 만으로 자신의 정신과 신체는 점점 더 왜곡되어 가는 거다.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 얼마든지 개인의 자유와 쾌락을 위해서 모든 걸 연소할 수 있다는 무적의 논리를 장착한 인간이 되어 가는 거다. 그러한 인간은 반드시 주변과 상황을 모든 것을 연소하여 검은 재 만 남기는 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 욕망을 연소하고 있는가? 아니면 연소를 준비 중인가? 아니면 연소를 하고 있는 중인가? 그것도 아니면 연소를 거의 다하고 스스로 성장했다고 착각하는가?


인간이 한번 습관화된 개인의 시스템은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버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가?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 특히 쾌락으로 중독된 과정은 인간이 바꾸기 위해 뼈를 깎아도 바꾸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게 기본적인 루트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치 대단한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소설 속 주인공으로 묘사하고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신적인 설명서로 묘사하지만 현실은 하지 말아야 할 선을 한참 넘어서 스스로 제어가 안되고 후회로 가득한 상태인 거다. 허무와 자멸 그것이 스스로를 꽉 들어찬 거다. 거기에 쾌락을 채우지 못하는 결핍이 자신을 괴물로 만드는 거다.


남녀 간 만나서 헤어지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희로애락 그 과정이 한 권의 소설처럼 자신을 옥죄는 거다. 다시는 그 쾌락을 느낄 수 없기에 자신에게 환멸 하는 거다. 다시는 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스스로를 포장하는 거다. 마치 대단한 뭔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와서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말들은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다면 개소리에 불과하다. 사실 반성도 힘들다. 인간은 자신이 잘 못 되었다고 판단되면 부인한다. 이유와 명분을 만든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면서

" 너도 해봐 "라고

권유하듯이 타인에게 자신을 포장하며 설파하는 거다.


왜~ 인지 아는가?


" 왜 나만? 공허하고 허무하고 더 이상 쾌락이 느끼지 못하지? 똑같이 만들어야지 나는 나만 그걸 겪을 수 없어! 타인도 아니? 저것들도 똑같이 당해야 해! 그렇게 해야 공평하지! "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무장하고 스스로를 전략가로 선지자로 앞을 내다보는 선구자로 포장하면서 다가가는 것이다.


" 나만 이렇게 돼서는 안 돼! 너는 불행해야 해! 나는 잘못된 게 아니야! 내가 진리야! 내가 옳은 거라고!!!!! "


이렇게 미치도록 소리치는 거다.


뱀의 목소리가 얼마나 달콤했겠는가?


선악과는 얼마나 먹음직스러운가?


그의 옥처럼 빛나는 목소리와 배려를 가장한 넘치는 말들과 보기에도 예쁘고 보기도 좋고 환상적인 외관이니 얼마나 매력이 넘치겠는가?


심지어 내 행위를 정당화해 주니 얼마나 고마 운가?

덧붙여 연예인의 말하는 논리는 일반인은 절대로 귀담아 들어서는 안된다. 물론 배울 점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의 삶에서 그들의 논리를 들이면 안 된다. 연애사업은 근본적으로 유흥업에서 기반한다. 즉 사창업과 유흥업이 근본이 되는 것이 연애사업이고 현실은 이것이 문화사업으로 포장된 거다. 물론 그것도 인간이 사는데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일반인에 삶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동떨어진 사고와 환경, 인간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대로 보통의 사람들에 삶에 기준이 되면 안 된다. 그들이 아무리 대한단 선행을 할지라도 아무리 세상에서 엄청난 일을 해도 그들이 몸담는 세상은 일반인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욕망을 극단적으로 연소해서 흥하는 분야가 연애사업이다.


세상은 보통의 사람들에 무대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열었는가? ”


아마도 이 글을 읽는 그대들 중 불편한 이들이 꽤 존재할 거다.


" 불편한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



5) 세대 갈등


" 앞선 자들은

자신들의 지나온 삶에서

잘못된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는 진보한다.


잘못된 것을 다름으로 포장하면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후대 세대에게 재앙을 주는 거다.

후대는 원하는 것 만 얻을 수 없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받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모든 것 을 꼰대라 치부하면 멍청한 거다. "



요즘 세대 간의 갈등이 가득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군가는 거저 공짜로 뭔가 하려고 하는 거다. 앞선 세대는 가난을 경험했다. x세대만 해도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한국경제는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그들 까지는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기회가 있었고 상대적으로 현재보다 적은 노력으로 이룰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을 경험했다. 그 세대까지는 지게를 지고 소꼴을 베고 벼를 심었다. 학원, 과외, 어학연수, 조기유학, 해외여행? 일반적으로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흔하지 않았다. 그들 세대까지는 일부에게 한정되었던 거다.


80년대부터 태어난 사람들이 어릴 때 누리던 그런 환경을 대부분 x세대 까지는 얻지 못했다.

반대로 80년대부터 태어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난을 겪지 못했다.


대부분 쌀이 떨어져서 끼니를 걱정한다던가~

학교에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다던가~

옷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다던가~


이런 식의 근본적인 가난은 거의 대부분 겪지 못했다. 사실상 이러한 가난은 이 시기부터 태어난 사람들은 극히 소수만 겪는 고통이었다. 즉 학교, 학원, 과외 등등을 원하는 교육이면 부모에게 서 대부분 받았다. 어학연수, 조기유학, 외국대학 진학, 해외여행 등등 도 이 시기 80년대부터 태어난 세대부터 시작했다. 즉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하지만 엄청난 취업난 이미 시스템이 갖춰진 세상에 발을 들이기 절대 쉽지 않다.


현재의 젊은 세대가 극단적으로 지난 사람들의 생각을 꼰대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 또한 시대적 이해의 인지 부조화이고 스스로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인지 부조화이다. 지난 세대면 다 낭만이 가득했다고 하면 그것도 인지 부조화이다. 또한 이전 사람들은 요즘은 전부 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를 산정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하면 되는 것은 X세대까지 통했던 공식이다. 자기들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냉정한 관점이다.


그러니까~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누구나 내가 얻고 싶은 것을 다 얻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하지 않고 감당하기 싫은 건 안 하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욕망의 흐름은 모두에게 흘러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세대가 앞으로는 같이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6) 종교와 인간들


당신들은 신을 믿는가? 아니면 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주변의 환경을 믿는가? 사람들은 종교인하면 이제는 그들을 배척한다. 종교를 빙자한 사기꾼이고 행동과 말이 일치되지 않는 존재로 여긴다.


" 이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믿으면 모든 게 죄를 사함을 받고 믿으면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나는 용서를 받는

인가?

일주일에 1~2 회씩 성당이나 교회를 혹은

절간을 빠짐없이 출근하듯 하면 신앙

을 제대로 하는가?

또 한 행위로 모든 걸 증명하면 그것이 잘하는

인가?

나는 옳은 행위로 증명을 할 거야 하면서 나를

높이는데 쓰면은 그것이 종교인가?

유흥업과 사창업, 연애업 등등을 생계로

이어가면서 오래 시간 종교를 믿었다면

매주 빠지지 않고 출근하듯이 했었다면

그것이 신을 믿는 건가?

입으로는 종교와 윤리를 논하면서 하는 일은

연애업, 사창업, 유흥업인데 어디가

진실인가? "


어디다가 기준을 둬야 그 사람을 이해가 가능한가? 어디다가 그 사람을 맞춰줘야 이해를 동반하는가?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일 것이다. 적어도 종교를 가졌다면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높은 도덕 수준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현실은 종교를 가졌다고 하면은 매주 1번 혹은 2번만 잘 차려입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가서는 이런저런 말들 듣고 노래도 부르고 그러다가 적당히 놀다가 오면서 경건을 논하는 게 아닌가?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고 자신의 양심을 여러 인간에게 증명하고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 액세서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은 신의 관점에서 존재의 가치가 사라졌으며 오로지 인간관계에서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 액세서리로서 인간 신분 증명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섹스의 연애 현장이 되었으며 권력과 돈의 현장이 되었다. 여기저기 좋은 곳을 다니며 괜찮은 곳이 있으며 추파를 던져가면서 온몸을 불사르고 전에 지냈던 사람들이 자기가 보기에 낮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자신에게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섹스와 연애와 보여주기를 쫓아 간 거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얻으려는 종합 선물세트 수준으로 전략으로 종교를 믿고 종교를 추구한다.


세상의 어느 종교든 사실상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고 하였다. 혼전순결은 모든 종교에서 논하는 일관된 사항이다. 상대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는 이것을 지키는지 아닌지 바라보면 그 사람이 종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는 거다. 물론 모든 걸 행위로 만 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거짓인지 진실 인지 추정 해볼 수는 있다. 또한 이것을 어기고 스스로에 잘못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라면 더더욱 그를 종교인으로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종교를 믿는 자들을 사람들이 멀리 하는 건 이러한 이중성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모든 걸 오픈하는가?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잔뜩 기대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잔뜩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서 언젠가 거기에 비수 꽂는 행위를 하니까 사람들은 종교인을 싫어하는 거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쨌든 종교인이 일반적으로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는 좀 더 강력, 사기, 폭력 범죄 등등 같은 것에 연루가 덜 된다. 하지만 그것이 자랑할 수준인가?


아주 오랜 전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신앙인 인척 하는 사람들은 혹은 보여주기 신앙을 하는 인간들은 아무리 초중고부터 다닌 곳이라도 자기가 지낸 곳이 세상적으로 봤을 때 별로이고 구성원이 자기가 볼 때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간다. 자기가 지내던 곳이 어려워지고 힘들어져도 본인들이 어릴 때부터 받았던 여러 사람들의 호의적인 관심들은 얼마든지 외면하고 섹스와 연애가 난무하고 화려한 곳으로 떠나간다.


이것은 일반인 보다 못한 정도 수준의 행동이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보통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줬으면 적어도 힘든 시기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반인 보다 못한 행동을 하면서 자신을 높이는 생활을 밥먹 듯하는 거다. 본질을 외면한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어도 종교인이면 그래도 미묘한 다름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더 이상 종교인도 아니고 신앙인도 아니다.


" 믿기만 한다고 거듭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만 강조하고 자신을 높이는 건 그것도

오만이다.


회개를 한다고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행위는

그대로 남는다. "


천국, 극락을 가려고 믿는 게 아니다. 가고 안 가고는 신의 마음이다. 즉 못가도 안가도가 아니라 신이 보내주고 안 보내주는 것이며 동시에 본인 가고 안 가고 이다. 이것이 절대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는 과정이다. 종교는 철저한 과정 속에서 겪는 스스로에 희로애락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어떻게 결과 만이 존재하는가?


" 신이 부자를 만들어 줄 건가?


내 자식을 출세를 시켜줄 것인가?


오늘도 수많은 돈다발을 줄거라 생각하는가? "


왜 기독교를 믿는 인간들은 요셉과 다니엘 사례를 들면서, 정말 자기 자식이 그렇게 고난을 받기를 원하는가? 그런 고난을 받았다면 대부분 자살해서 죽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준의 그런 고난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 인물들에 세상적인 성공만 보고는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신에게 기도한다. 본질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자신이 중요한 거다. 자신이 신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평생 정립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한 정립을 안 하니 맹목적으로 종교를 직업으로 가지는 사람들을 추종하고 그러한 인간들 중에 그런 정립조차 없으면서 자신이 대단 한 무엇인가로 착각하며 인지부조화가 일어난다. 종교에 괴물은 올바르지 않은 신앙인과 그들을 달콤하게 말을 던져주는 종교를 직업으로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콜라보다. 믿음을 논하지만 행위는 없고 행위는 논하지만 믿음은 없고 행위도 믿음도 구사하려 하지만 경전 안 보고 기도도 안 한다. 이제는 종교를 추구하는 집단에서 종교를 추구하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 젊은이는 연애를 빙자한 섹스, 물질을 찾고

늙은 자들은 권력과 위신을 찾는다.

종교는 현대에서 최상의 액세서리다.

물질의 만족을 채우지 못하는 대용품으로

전락했다.

인정하기 싫은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


물론 우리 모두는 웃기다. 마치 누군가는 대단한 성인이나 엄청난 도덕적 우위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도 웃긴 거다. 인간은 누구 흠이 있어서 그것을 요구하는 건 그저 시기질투로 뭔가 하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거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현대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은 스스로 심각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종교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사람들에게 혐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자유와 개인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종교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지 못한다. 오로지 듣기 거북한 말만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그것을 믿는 자들이 최소한 모든 종교가 말하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는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라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면 사람들에게 적어도 바람직하게 다가갈 것이다. 더 냉정한 현실은 본편적인 전통적인 윤리조차 지키고 살면 그것 만 이라도 다행이다.


7) 인간 예수의 시험


(1) 인간 예수


신을 믿고 안 믿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 예수, 본질적으로 인간 예수의 관점으로 그를 관찰하는 것 이 다.



(2) 첫 번째 시험


# 마태복음 4장 #

1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본능, 생존과 욕망의 관한 시험


# 누가복음 4장 #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 본능, 생존과 욕망의 관한 시험


> 인간의 본능에 관한 것이다. 배고픔, 인간이라면 견딜 수 없는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나타내는 거다. 만약 일반적인 사람들이 저 상황이라면, 일단 시험을 받으러 가지 않을 거다. 뭔가 명목이 있어야 갈 것이다.


다음 갔다고 가정 한들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하면은 떡이 아니라 사단이랑 같이 맛있는 음식점에 가서 여자를 끼고 온갖 산해진미를 호형호제하면서 서로 술잔을 권했을 거다. 당연히 발생하는 비용은 사단에게 나를 꼬신 비용으로 은근 절반 이상을 내라고 했을 거다. 물론 기분 안 나쁘게 하려고 엄청 머리를 썼을 거다. 동시에 2차는 서로 골라 주면서 형님 동생 하면서 숙박비를 챙겨주고 다음날 해장 할 곳을 서로 약속하며 내일 아침밥 값은 선심 쓰듯 자기 지불한다고 했을 거다.


굳이 상상하자면 ~


" 콜~ 하자고 했다? 시험 보는 중인데 가자고 했다? 나는 잘못이 없어. 형이 가자고 했으니까~ "라고 적극 자신의 상황을 어필했을 거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인간이 저 고통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다. 인간의 근본적인 생존과 본능, 욕구를 가지고 시험을 한 거다. 예수는 인간이라는 관점으로는 절대로 시험을 통과하기 힘들었을 거다.


(3) 두 번째 시험

# 마태복음 4장 #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 자만심과 증명 욕구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누가복음 4장 #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 자만심과 증명 욕구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 일반적인 사람이면 뛰어내리라 하면 무서워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뛰어내리면 다치지 않는다는 말조차 믿지 않을 거다. 사기꾼이나 미친놈으로 의심부터 할 거다. 모든 게 다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빨리 뛰어내리고 여러 번 뛰어내리고 주변에 시선을 즐겼을 거다. 게다가 뛰어내리라고 하면은 공짜로는 안 했을 거다.


아마도~

" 야! 너부터 해! 네가 하고 내가 할게~ 나만 하면 억울하지. " 이런 반응을 보일 거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간의 자만심과 증명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너 이 정도 되는데 " 이거 못해? " 또한 여러 사람에게 자신을 증명을 하려는 인간의 그 본질적인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것을 초월할 수가 없다.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어도 이것을 넘기기 어렵다. 인간 예수라는 관점으로는 이것을 이겨내기가 어려웠을 거다.


(4) 세 번째 시험

# 마태복음 4장 #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세상적인 성공과 만인 위에 권력 욕구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


# 누가복음 4장 #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세상적인 성공과 만인 위에 권력 욕구


>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절을 천 번 백번도 했을 거다. 일단 하고 천하 만국을 받고 나중에 딴 소리를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높은데 올라가서 세상을 다 준다고 하면은,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일단 산에 올라가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은 바로 절을 해준다. 일단 말을 듣고 올라가서 말도 꺼내기 전에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준다고 해서 받기는 하는데 이걸 내가 운영해야 한다고 하면은 대리인 서비스까지 요구할 거다. 그런데 사단이 살짝 기분이 나빠져서 안 준다고 하면은 투자 가치로서 자신을 설명하는 경향도 나타낼 것이며 거짓말했다고 방방 뛰면서 구두 약속도 약속이라고 따질 거다. 사단하고 같이 주먹다짐도 할 거라 본다. 이런 거 저런 거 떠나서 준다고 하는 말부터 미친놈으로 받아들이거나 의심부터 할 거다. 계약서는 기본으로 요구할 거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한 인간이 최대로 가지는 정점의 욕구를 제시한 것이다. 인간 예수라는 관점에서는 절대로 거부하기가 어려운 제안이다.


(5) 욕구의 분석


> 매슬로우 욕구 6단계

1단계 > 생리적 욕구 > 음식, 물, 공기, 수면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욕구

2단계 > 안전의 욕구 > 신체적·경제적 안정, 보호, 질서, 예측 가능성

3단계 > 사회적 욕구 (소속과 사랑) > 가족, 친구, 공동체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

4단계 > 존중의 욕구 > 자존감, 타인의 존경, 성취, 자신감

5단계 > 자아실현 욕구 > 잠재력의 최대 발휘, 창의성, 자기 성장

6단계 > 자아초월 욕구 > 자기 자신을 넘어서 타인과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


> 사단에 의한 인간 예수 관점에서 시험

첫 번째 시험 > 떡 > 본능, 생존과 욕망의 시험

두 번째 시험 > 높은데 뛰어내려라 > 자만심과 증명 욕구

세 번째 시험 > 세상을 다 주겠다 > 세상적인 성공과 만인 위에 권력욕구


> 유사점

첫 번째 시험 = 1, 2 단계

두 번째 시험 = 3, 4 단계

세 번째 시험 = 5, 6 단계


" 아주 오래전부터 욕망은 근본적으로 인간 문명의 근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문명은 불완전함을 동반 한 시작이었다. 인간으로서 예수라는 인물, 관점에서 사단의 시험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명확하게 보인다. "


" 인간 예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예수님이 된 거다. 그것은 신성으로 넘었는지 알 수는 없는 거다. 믿는 자는 신성으로 넘었다고 할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우화 라고 할 것이다.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온전하게 인간으로서 넘어섰던 거다. 한 가지 확실한 것 은 인간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십자가 형을 피하지 못한 거다. 예수라는 인물의 영향력은 결국 십자가라는 숙명을 넘었기 때문에 세계적 종교로 거듭난 거다. "

7부 근원


■ 자유 의지

욕망과 무욕은 하나다. 그 자체로 욕망이다. 그러면 욕망과 무욕을 나눌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단순하게 인간세상을 설명하려니 나눈 거다. 사살상 욕망과 무욕은 하나다. 서로가 그저 다른 기능을 하는 것이다. 시스템과 기능적인 역할에서 일어나는 역할 분담 같은 거다. 그렇다면 이것에 근원은 무엇일까? 욕망과 무욕 나누는 근본적인 근원이 무엇인가? 나는 뭐라고 생각해야 할까? 지금도 머리를 빙빙 돌리고 있다. 진화론, 창조론 혹은 알 수가 없다? 알 필요가 없다? 어떻게 굳이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고 숨 쉬고 있다. 알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 욕망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것이 무엇 일까?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진화론? 나는 진화론을 잘 모르겠다. 학창 시절 귀어 들어왔다가 저 멀리 사라진 글자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이 욕망과 무욕을 포괄하기에는 기능적인 포괄 체계다. 진화론은 욕망과 무욕의 기능적인 부분 중 욕망을 극대화시켜서 만들었다는 추측이 든다. 이것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인정을 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읽는 자의 마음이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근원은 자유의지가 아닐까? 자유의지가 욕망과 무욕으로 나누는 근원이 아닐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자유의지 만이 가능하다.


자유의지는 신이 주었는가? 그것이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어느 신이 던 간에 신의 존재가 주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진화론이 자유의지를 만들었다.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그러기에는 인간 세상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우연이고 약육강식이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진화론은 기능적인 요소를 극대화해서 만든 사상 이론 체계다. 어차피 과학은 현상에서 관찰을 하고 관찰에서 원리와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가설을 세워 변수를 가정해서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지 빈도와 여부를 따지는 거 아닌가? 그것을 무수한 세트를 반복하고 겹겹이 교차해서 만들어 쌓아 올린 게 과학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결과들이 세상의 근원을 설명하기에는 좀 미흡하지 않을까? 아직도 바다 깊숙한 곳을 자유롭게 이동하지도 못하는데 , 그리고 누군가들의 악의적인 이익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설정해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디든 권력을 쥐려고 하는 게 인간인데 그러한 인간의 변수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러지 못한다고 본다. 사람이 하는 것 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입김은 반드시 들어간다. 인간의 시기와 질투의 욕망은 얼마든지 수백만 명을 산채로 죽여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관철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욕망과 무욕은 하나이며 결국 욕망이다. 욕망과 무욕을 나누는 것은 기능적인 설명이다. 이들의 근원은 자유의지다. 그 자유의지는 신에게 왔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학문은 사실상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기인한다. 그 욕망의 근원은 자유 의지다. 자유 의지는 신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거 말고는 다르게 결론을 낼 수가 없다.


지난 역사를 누구나 혹은 어느 사람이 봐도 인간은 악하다. 본질이 이렇다 저렇다 를 떠나서 모든 선택의 합이 악이 절대적으로 많으면 인간은 악한 거다. 그런 인간들의 역사를 볼 때 인간이 만든 것을 신뢰할 수 있는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신이 인간이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또한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한테 도 언급하고 싶은 것 은 무엇인가가 최소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으며 그것으로 욕망을 생성되었고 욕망은 인류 문명의 근원이 되었다. 욕망은 욕망과 무욕은 기능적으로 나누어졌으며 그것이 세상을 보이지 않는 손의 흐름으로 작용했으며 기원전부터 시계추 같이 왔다 갔다 작용 하면서 인류는 생존하고 번성했다. 욕망과 무욕이 그 작용의 균형점이 깨지고 극단적으로 향하면 수많은 역사적 사건, 작은 것부터 대전환의 사건까지 발생했다. 결국은 욕망과 무욕이 시기적절하게 제어가 되지 않고 균형이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으면 인간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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