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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l 11. 2021

뮤지션을 꿈꿨던 난 지금

꿈은 멀고 현실은 가깝지

여러분의 직업은 여러분의 어릴 적 꿈인가요?


아마 많은 분들 어린 시절 꿨던 꿈과는 다른 일을 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어릴적 꿈은 아니죠.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음악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7살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0살엔 클래식 음악이 너무 좋아 하루 종일 오디오 앞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13살 즈음 사춘기가 왔을 땐 록 음악에 빠져 기타를 배웠고요. 17살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합주실을 쏘다녔습니다. 18살엔 학원을 빼먹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홍대 클럽을 대관해 공연도 했죠.

군대를 전역한 다음엔 인디밴드를 결성해 다시 홍대로..



대략 20년은 똑같은 꿈을 꾸며 살아왔어요. 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직업 음악인'의 길을 걷진 못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길을 걷길 포기했습니다.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일자리 내놔"


"음악 하면 배곯는다"


어른들은 곧잘 이런 말을 하셨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데요. 그땐 그 말이 그리도 무서웠습니다.


부모님의 방침은 '원할 경우 지원한다'였지만

끝내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대신 남들이 하는 걸 열심히 따라 했습니다. 그럭저럭 공부하고, 재수해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마친 뒤엔 학점 관리와 취준을 하고..


음악에 대한 미련은 매일매일 악몽처럼 저를 괴롭혔습니다. 학창 시절 두려움 때문에 도망친 제 자신이 멋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원망했고, 자주 슬펐습니다.



상상을 하기 시작한 건 그즈음부터였습니다.


언젠가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상상. 레코딩 장비를 마련해 내 노래를 직접 프로듀싱하는 상상. 남들 앞에서 내 노래를 부르는 상상. 기타를 아주 잘 치게 되는 상상.



하지만 언제나 꿈보다 가까운 건 현실입니다.


아! 물론 전설적인 뮤지션의 생애를 보면 대개 이 대목에서 다 때려치우고 음악에 인생을 겁니다.


"다 때려쳐 치우자고"


하지만 저는 전설적인 뮤지션의 재목이 아닌 관계로 사력을 다해 현실에 순응합니다ㅋ


준수한 학점과 9로 시작하는 토익 점수를 만들었고, 이런저런 대외활동까지 더해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 4학년에 끝날 즈음 뭘 해 먹고살지 골라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때가 온 거죠.



근데 채용 공고라며 올라 온 일들이 다 싫었습니다. 싫은 일을 하면 돈이라도 많이 받고 싶었는데 끝내주게 많은 돈을 주는 직장도 없었죠.(결정적으로 대부분은 나를 뽑아주지 않았ㄷ...)


소중한 꿈이었던 음악을 포기하고 얻은 대가치곤 초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키는 대로만 잘하면 모든 게 만사형통일 줄 알았는데! 이 모든 게 어른들을 맹신한 어린 나의 탓이라며 또 한 번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조언은 고맙습니다만.."


어쩌면 전 마음속으로 '음악'이라는 정답을 이미 내려놓은 상태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마음이 기운 곳이 있는데 다른 선택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죠.


그즈음 기자라는 직업에 눈길이 갔습니다. 사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요. 대략 전공과 관련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귀동냥으로 '외근이 잦아 상사 얼굴을 자주 볼 필요 없다더라' '잘만 하면 자유 시간도 꽤 확보할 수 있다더라' 같은 말을 들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자유 시간이 많으면 음악 활동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거죠. (기자가 되고 나선 그게 놀라고 주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지만..)


그래서 언론사 시험 준비를 시작할 즈음 '하고 싶었던 음악, 한 번만 더 미루자'고 다짐했습니다. 1년이 조금 넘는 준비 기간 동안 큰 방황 없이 시험 준비를 했죠.


생각보다는 재능이 없었던 모양인지 수십 번 정도 고배를 마셨지만 운 좋게 모 신문사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한 IT 전문매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 그래서 그 뒤엔 어떻게 살고 있냐고요?



2년 전쯤 집 근처에 제 개인 작업을 마련했습니다.


방음 공사가 되어 있어서 밤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도 괜찮습니다. 멜로디가 떠오르면 바로 음원으로 만들어 볼 수도 있죠. 중고등학교 때부터 꿈꿔 온 그런 공간을 드디어 마련한 겁니다.


물론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 하고 장비 값도 충당해야 하기에.. 가급적 아껴 쓰고, 통기타 레슨 같은 부업도 하고 있죠.


작업실 / 본인


사실 작업실을 구할 때 꽤 많이 망설였습니다. 직장인이 되자 '커리어를 좀 더 탄탄하게 쌓고 나서 하고 싶은 걸 하라'조언한 어른들이 많았어요. 그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저도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되돌아 보면 늘 그랬습니다.


중고등학교 땐 '대학만 가고 나서 하고 싶은 걸하자...'

대학교 땐 '취업만 하고 나서 하고 싶은 걸하자...'

이번 한 번만 더 꿈을 미루자고 했습니다.



근데요.

도대체 언제까지 미뤄요...?


전 아마 5년쯤 뒤엔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집 사고 결혼 준비하려면..'


'쓸데없는데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지..'


'한 번만 더 꿈을 미룰까'


나 ㅋ


모든 게 갖춰진 상황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날'이 오기 만을 기다린다면... 영원히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오역이라고는 하다만..)


어쨌든 29살의 전, 이번에는 꿈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꿈을 미루면요.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펑펑 울음이 터져 나와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요.


프로필 사진 촬영날


어릴적 꿈꿨던 하이틴 록스타가 되기엔 좀 늦은 것 같기도 한데요.


그래도 40살, 50살 아니 그 이후까지 계속 음악을 하고 있다면 나름 멋진 일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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