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졍 Mar 25. 2021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소중하다"는 형용사로서 매우 귀중하다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귀중하다"는 ? 매우 값어치가 커서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귀할귀 貴, 중할중 重라는 한자어를 쓴다고 한다. 

이런 어마무시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어렸을 적 캠프파이어를 할 때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려 보세요,'라는 질문에 'HOT오빠들이요, 제가 좋아하는 00이요' 등 이런 시덥지 않은 멘트들을 날리고 있었으니 부끄러울만 하다. 

  

  서른 다섯, 결혼 4년차. 어느새 우리 부부는 2세 탄생이라는 굉장히 무겁고도 낯뜨거운 목표를 두고 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밤에 어쩌다 일어났는데 배 속에 생겼다, 숨만 쉬었는데 나왔네 등 범상치 않은 일화를 내어놓았으나 우리들에게는 낯선 숙제였고 여전히 낯뜨거운 목적이었다. 

애써 시간을 쪼개어 병원을 다니고 좋아하는 술과 커피를 끊어가며 반드시 해야하는 숙제인양 그렇게 텁텁한 마음을 가지고 지내야했다. 4개월정도 숙제를 행하다 슬슬 지쳐올라 잠시 쉬자라고 남편과 합의점을 찾고 편하게 지내고 있을 때였다.


  금요일 밤, 남편과 오랜만에 야식과 술을 먹기로 약속 한 날. 왜 그날 따라 술을 먹을려니 양심에 찔린 것인지 테스트기를 한 순간 선명한 두줄을 맞이하였다. 분명 4일 전에 회식해서 술을 거하게 먹었는데, 커피를 요 근래 매일 먹었는데 어쩌지 라는 쓸데없는 미안함과 걱정이 더 앞섰다. 


그렇게 남편과의 회식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다음날 우리는 산부인과를 방문해야 했다. 

  "임신맞습니다"라는 짤막한 의사의 말만 듣고 다음주에 방문해야 아기집을 볼 수 있다라는 말을 받았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얼떨떨한 채 그렇게 조용히 우리끼리 아는 비밀로 지냈다.

  아기집을 확인하고 이사 날짜가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시댁과 친정 부모님들께 오픈을 하였다. 그렇게 이사와 아기 동시에 큰 선물을 안고 나는 가을을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기에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했고 안방이 2층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도와주셨지만 이사짐 정리를 내가 틈틈이 다시 해야만 했다. 그렇게 7주차가 되었다.


  7주차, 남들은 아가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데 내가 품은 아기의 심장 소리는 약했다. 의사샘도 고개를 갸우뚱 하시면서 언제 임신이 되었는지를 다시 물으셨다. 의사샘이 말하는 날과 우리가 관계를 가진 날은 차이가 너무 나서 우리 역시 혼란스러웠다. 심장소리가 너무 약해 남편은 듣지 못했고 나만 희미하게 들었다. 다음주에 다시 검진 날짜를 잡고 초조하고 불안하게 일주일을 보내야했다. 

  8주차, 선생님이 배 초음파를 하다가 다시 질 초음파를 하시더니 이내 한숨을 쉬시며 어쩔 줄 몰라하신다. 지난주 약하다는 말을 들은 나로서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너무 일찍 양가 부모님께 오픈을 하였는데 이 상황을 어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8주차라 소파술을 할지 아니면 자연배출을 할지 선택해야 하는 부분도 힘겨웠다. 아기가 죽었는데 이것을 품고 있자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고 그렇다고 수술을 하자니 몸이 망가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나는 또 정신적 스트레스를 선택해야 했다. 눈물이 분명 나오는데 남편은 덤덤하게 나를 달래고 있었다. 뭔가 그동안 내가 잘못한 것이 스쳐지나갔고 내 탓인가 라는 생각이 너무나도 들었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책임감 다음에 오는 실망감과 우울함이었다. 그냥 정말 잃어버렸구나 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질거 같았다.


  매우 값어치가 커서 소중한 그것. 새 생명. 남편을 닮았을지 나를 닮았을지 모르는 새끼 손톱만한 존재를 그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린 것이다. 일주일을 더 품고도 나올 생각을 안해 약을 써서 마지막 덩어리까지 탈탈 털어낸 후에야 실감을 했다. 완전히 떠났음을. 이제는 완전히 잃어버렸음을.

나는 아닐것이라 생각했던 유산이 너무 가까이 있었고 그것은 어느 여성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왜 아무도 나에게 귀뜸을 해주지 않은 것인지. 준비 된 것이 없는데 찾아오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떠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나는 서른 다섯에야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사소한 습관, 생각거리, 행동 등을 다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한번이면 되었다 생각하면서... 아마도 대한민국 난임 부부들은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같은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응원한다. 온 마음다해-:) 절대 엄마 탓이 아님을 그저 잃어버린 것임을.

작가의 이전글 익숙한 것을 외면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