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굉장히 말랐었다. 밥도 많이 안 먹었고, 먹는 것보다 나가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살이 찔 수 없는 삶을 살았었다. 친할머니께서 내가 말랐다고 어머니를 혼냈던 기억이 있다. 그냥 내가 먹는 걸 안 좋아했던 것인데 혼나는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 지내면서 세끼 모두 학교 급식을 먹었는데 당시 급식은 너무 맛이 없었다. 맛없는 음식을 안 먹는 습관을 지금까지도 갖고 있어서 생명을 이어나갈 정도만 급식을 먹었었다. 당연히 이때에도 살이 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키는 컸다. 아니 영양을 더 잘 챙겼더라면 키가 더 컸으려나? 수능이 끝났을 때 나는 키 182cm에 58kg로 거의 살이 없었다. 뼈에 가죽만 붙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어릴 때 별명도 마른 것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스켈레톤, 간디, UNICEF 뭐 이런 것들
대학교에 가서는 학식도 먹고, 음식점에 나가서 자유롭게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니 섭취량도 좀 늘었었고, 살찌려는 의지가 있어서 일부로 초코바 같은 것도 챙겨 먹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보다는 살이 찌긴 했지만 64kg 정도라 정상 체중은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나는 살이 찔 수 없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박혀있었던 것 같다. 2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먼저 훈련병 신분으로 훈련소에서 7주간 교육을 받은 후 실무로 배치를 받았다. 첫 생활반에 들어갔을 때 선임이 나한테 처음으로 한 말은 왜 이렇게 말랐냐는 것이었다. 당시 해병대에는 후임들에게 음식을 많이 먹이는 악기바리라는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후임들은 많은 음식의 양을 섭취한다. 나는 특히 더 말랐기 때문에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음식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받은 미션은 음식 양을 굉장히 많이 받고, 3끼 모두 라면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생활반에 보급으로 나오는 육개장은 모두 나의 관물함 속에 있었다. 먹는 속도가 느린 편이었기에 제일 먼저 배식을 받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밥을 먹었다. 그렇게 1주일 정도 매우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몸무게를 쟀는데 71kg 정도 나갔었다. 내 몸무게에 7이라는 숫자를 십의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살찔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물론 죽을 듯이 먹어야 하지만.
( 악기바리 문화는 안 좋은 것이 맞지만 저에게는 살을 찔 수 있게 만들어준 긍정적인 것입니다. 이때 먹는 것도 좋아해서 많이 먹이더라도 괴롭지 않았기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그 이후에는 헬스도 꾸준히 하면서 몸무게가 더 불었다. 웨이트를 하면 에너지를 소비하고 근육이 붙어서 배고픔이 증폭하고,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몸은 더 커졌다. 그리고 또 운동을 하며 몸을 계속 키워 나갔다. 이런 살찌는 순환 구조 때문에 내 몸은 평균 이상으로 커져갔고, 클린 식단을 하지 않았기에 근육과 지방이 많은 소위 근육 돼지가 되어갔다. 최고 몸무게는 85kg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나를 놀리던 친구들을 지금 만나면 깜짝 놀란다. 마른 이미지로 부각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커지니 그럴 만도 하다. 전혀 살이 찔 거 같지 않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다이어트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 신기했다. 말랐던 나도 살이 쪘으니 누구도 살찔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