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는 뮤지컬 덕후가 친절하게 소개하는 뮤지컬 입덕 가이드
나에게 뮤지컬이란 한 마디로 '가깝지만 먼 예술'이다. 뉴스, 예능, SNS 등 일상에서 자주 접해왔지만 막상 직접 뮤지컬 무대를 본 경험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마저도 소극장에서 운영하는 뮤지컬이 절반을 차지해 규모가 큰 뮤지컬은 초등학교 때 봤던 명성황후가 유일하다. 너무 어렸을 때 봤던 터라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심지어 집중력 부족 이슈로 거의 졸았다), 2층이 넘는 거대한 공연장 규모에 깜짝 놀랐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내게 뮤지컬이란 공연보다는 영화에 더 가까웠다. 헤어스프레이, 레미제라블, 시카고, 위대한 쇼맨, 위키드 등등 뮤지컬 영화가 개봉했다고 하면 가급적 챙겨보는 편이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영화만으로도 뮤지컬이라는 예술 분야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뮤지컬 덕후 밈과 일상을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그들이 향유하는 뮤지컬은 내가 영화를 통해 접한 것과 매우 달랐다. 캐스트가 매우 중요하며 특정 캐스트가 좋아 같은 작품을 nn번 보기도 하고, 작품이 좋아 이 캐스트 조합, 저 캐스트 조합으로 모두 찍먹하기도 했다. 극장 특성상 좌석 선호도 역시 영화와 달랐고, 문화도 다른 예술 공연과 달랐다. 덕질의 끝은 뮤덕이는 말이 있다. 최근 들어 뮤지컬과 관련된 콘텐츠가 늘고 있는 이유도 앞선 말과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30일 밤의 뮤지컬>이라는 책 역시 최근 트렌드에 딱 맞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윤하정 작가는 채널예스에서 '윤하정의 공여넷상' 칼럼을 10년간 연재한 문화전문기자다. 웬만한 배우보다 부지런히 공연장을 드나든 10년이 넘는 시간이 책에 담겨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30편의 뮤지컬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세계 4대 뮤지컬을 시작으로 배우들의 워너비 뮤지컬, 동물이 주인공인 뮤지컬, 프랑스/오스트리아/한국 뮤지컬,, 만화 원작 뮤지컬, 소수자를 대변하는 뮤지컬 등등 다양한 15개의 뮤지컬 테마가 준비돼 있다. 테마당 2개의 뮤지컬이 소개되며 작품 한 꼭지는 5-7장 분량이라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부담없이 하루의 한 작품씩 읽다보면 한 달이면 웬만한 뮤지컬 작품들에 대한 기본 지식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회사에 일찍 도착했을 때 또는 점심을 빨리 먹어 10-20분 정도 여유가 있을 때면, 구미가 당기는 테마를 하나 정해 읽어내려갔다.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뮤지컬 작품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불후의 세계 4대 뮤지컬에 속한 <레미제라블>이다. 레미제라블의 경우 영화로 본 적이 있어 다 아는 내용이라 생각했으나 새로 알게 된 정보가 훨씬 많았다. 이 책의 장점은 공연에 대한 감상도 있지만 줄거리와 같은 기본 배경지식을 충분하게 소개해준다는 점이다. 원작이 있을 경우, 원작의 특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며 뮤지컬과의 차이를 짚어준다. 레미제라블의 경우 포스터가 차이점이었다. 영화 포스터는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반면,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포스터는 소녀의 얼굴이 크게 나온다. 이는 뮤지컬의 주제의식인 인류애을 담고 있는 코제트(왜 코제트가 인류애를 뜻하는지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라)의 얼굴이다. 영화를 봤을 당시에는 코제트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지 않았는데 이번 책을 통해 레미제라블의 줄거리와 주제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은 배우들이 워너비 뮤지컬에 속한 <돈키호테>다. 돈키호테 또한 너무 유명한 이야기로 열정적인 기사가 사실은 정신을 놓은 노인이라는 반전 또한 유명하다. 이 책은 돈키호테가 허황된 이야기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작품이 지닌 의의를 짚어준다. "처음에는 돈키호테를 미친 노인이라고 생각했던 알돈자도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그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죠. 언제나, 그 어디에나 '거울의 기사' 같은 현실은 존재하지만, 알론조도 알돈자도 결국 꿈꾸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말이죠(p.60)'. 저자의 시선이 담긴 작품 해설이 감동적이어서 평소 관심없던 돈키호테가 흥미로워졌다.
마지막 작품은 시인의 뜨겁고 시린 이야기에 속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교과서에도 실린 시로, 고등학교 때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라는 시구가 너무 귀여워서 필사도 했었다. 백석과 백석의 시를 다룬 뮤지컬이 있다는 건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사실이었다. 자야라는 백석의 연인도, 자야의 실존 인물은 김영한 씨로 후에 백석문화상도 만들고 천억원 규모의 대원각(지금의 길상사)을 시주했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다. "천억 원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하다"는 생전에 남긴 말 한 마디는 백석의 다양한 시를 다룬 뮤지컬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마음만은 여전한 문학소녀인 어머니를 위해 항상 눈이 내리는 즈음에 공연된다는 이 작품 티켓팅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책을 읽는 내내 알고 있던 작품은 지식이 깊어지고 이름만 알던 작품과는 친해지는 것 같아 즐거웠다. 뮤덕 문화가 재밌어보이는데 세계가 방대해 보여 입문 엄두가 안 나던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는 만큼 평소 내 취향에 가까운 작품을 골라 입문 실패 확률을 줄여줄 것이다. 또한 책 중간중간 공연과 관련된 사진과 책에서 소개하는 뮤지컬 넘버 영상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친절하게 삽입돼 있다. 텍스트로만 접하다 보면 상상이 잘 안 가는 한계를 보완하는 매력 포인트니 이 책을 통해 뮤지컬과 한 걸음 가까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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