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 Mar 28. 2024

나는 어떻게 쓰이고 싶은가

직업인으로서 나를 돌아보다.

 육아휴직이 다가오고 거래처마다 전화나 문자로 담당자인 나의 휴직을 안내했다.

대부분 길게는 5~6년, 짧게는 몇 개월 소통해 오던 사장님과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나의 휴직을 무척 아쉬워해주는 분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과의 통화에서 더 이상 당신의 일을 봐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이분들이 아쉬워할 만큼 그동안 열심히 일했구나 라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의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기분에 뿌듯함도 느껴졌다.


사실 나는 쓸데없을 정도로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일을 완벽히 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완벽주의다. 그러하니 일에 있어서 엄격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달달 볶으며 스트레스 또한 많이 받으면서 일하는 편이다.

내가 이러하니 상대방이 내 업무에 피드백을 늦게 해 주거나 약속한 기한 내에 자료를 안 주면 급격히 예민해지면서 화가 올라왔다.

특히나 일이 몰리는 세금 신고 기간에는 어찌나 예민해지는지 밥을 먹으면 체해버리고 설사를 해서 밥 대신 카페라테를 먹으며 일을 쳐냈다.

위와 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의 예민함으로 실수를 하지 않으려 확인을 거듭했다. 숫자 하나로 큰돈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므로 실수를 하면 세상이 망한다고 생각하면서....

한마디로 나는 가성비 있게 일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자기 검열을 반복하여 스스로 만든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일을 효율 없이 하는 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굳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하지 않고 큰 테두리 안에서 해도 될 일 (그렇게 해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까지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하고 있으니 내가 정말 일머리가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반대로 생각하면 난 항상 진심으로 양심 있게 일을 해왔다. 그냥 넘어가고 대충 해도 되는 일도 그렇게 처리하면 매우 찝찝하고 자꾸 생각나서 시간이 걸려도 내식대로 처리했다. 이건 정말 나만의 강점이자 약점이 이기도 했다.


나는 해마다 번아웃이 왔다. 직업특성상 상반기에 신고가 몰려있으니 상반기에는 일에 온 신경을 쏟으며 하나라도 더 빨리 마감을 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달렸다.

집에 일거리를 가져오면서까지 일이 남아있는 꼴을 볼 수가 없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상반기를 지나고 나면 하반기에는 에너지를 이미 다 쓴 탓인지 일을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야근이 몰려있으니 꾸준한 취미나 루틴도 엉망이 되었다. 야근 시즌에는 극도로 예민해서 끼니를 못 먹으니 퇴근 후 야식과 함께 술로 나의 예민함을 가라앉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일 년 중에 반을 이렇게 보내고 나니 나 자신을 생각하기보다 일이 잘 처리되는 게 더 우선이었던 것 같다.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니 번아웃이 계속 오는 수밖에...


이 직업이 나에게 안 맞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또 꼼꼼함이 필수 요건인 이 일에 이런 나의 성격이 천직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일을 대할 때 항상 진심을 다해서 양심적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나를 알아봐 줄 내 자리를 다시 찾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올라온다.

작가의 이전글 휴직의 시작..평일 낮의 헬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