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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Apr 07. 2024

혼자 여행 가려다가.. 결국 둘이

결혼 10년 만에 둘만의 여행


 육아휴직 일 년을 지르고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혼자만의 여행.. 휴직과 동시에 남편도 아이들도 다 두고 나 혼자 자유롭게 훌훌 떠나는 여행을 수도 없이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생기니 여행을 혼자 가는 게 망설여졌다.


난 혼자 카페에 가는 건 좋아하지만 혼자 여행은 안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또 나를 알아다.

그렇다고 가족 여행을? 생각만 해도 지치고 기가 빨린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몸이 피곤한 여행이었지만

어느 정도 크니 정신이 피곤해진다.

아이들도 나름의 취향과 원하는 바가 있으니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 불평불만이 난무하다.

그럼 난 또 기분이 상해서 화가 나고 이 여행을 괜히 왔다며 후회할 테다. 차라리 안 가련다.


그래도 여행은 가고 싶어서 혼자 가든지 동생이랑 가던지 마땅한 시기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불쑥 시부모님께 아이들을 하루 부탁한다. 엄마 껌딱지인 아이들도 웬일인지 수락한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 이후 결혼생활 10년 만에 처음 단 둘이 여행을 가게 되었다.


1박 2일 강원도여행이다. 동해바다를 좋아해서 일 년에 몇 번을 강원도로 놀러 왔지만 둘만 오는 건 연애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늘 4인 숙소를 예약했지만 이번에는 2인 숙소다. 오션뷰에 감성이 가득한 숙소였다.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 음악도 듣지 않고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수다를 떨며 바다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없으니 둘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꼭 붙어 다녔다. 연애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지만 사진 속 우리는 그 시절보다 늙고 살쪄있었다. 그래도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같이 늙고 살쪄서 다행이다.

한쌍의 펭귄 같은 둘이 찍은 사진을 보며 깔깔 웃었다.

남편이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 입맛도 비슷해서 음식 취향도 같고 술도 좋아해서 남편은 내  술친구이자 단짝 친구다. 저녁이 오고 맛있는 회에 술 한잔 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평소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들어주는 편이라 누군가를 만나고 오면 기가 빨리는 편이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편이라 가끔은 모임이나 만남 후에 마음이 좀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여럿이 만나기보다 일대일로 만나거나 주로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인데 남편은 그런 내 말을 제일 많이 들어준다. 남편과는 우리 애들 자랑도 할 수 있고 가족 얘기도 자유롭고 일 얘기도 한다. 전 남자 친구 얘기만 빼고 대부분 가능하니까.. 어느덧 내 삶에 가장 친한 베프가 되어버렸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을 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신혼 생활의 달콤함을 많이 못 누렸다. 그 시절 나는 남편과 둘만의 시간이 너무 그리웠지만 애들을 맡기면서까지 시도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 아이들이 다니는 태권도학원에서 애들이 1박 캠프를 하기도 하고 고모네 집으로 며칠 놀러 갔다 오기도 하고..

그렇게 부부만의 시간이 조금씩 생겨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여행까지 가게 되다니..  

우리 부부는 벌써 단 둘이 두 번이나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로움이 결국 다시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마냥 흘러버린 시간과 세월이 이제는 내게 이런 선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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