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나에게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실패와 좌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온 나에게 ‘사회복지’는 어떤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우연한 선택지에 가까웠다.
그렇게 시작된 현장 일은 때론 벅차고, 때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지만 돌아보면 그 안에 내 삶의 궤도를 바꾸는 경험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이방인으로 일하고, 타국어로 상담하고, 다른 문화 속에서 노인과 가족, 외국인과 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왔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일본의 지역포괄지원센터라는 공간은 행정과 주민, 제도와 현실이 교차하는 복잡하지만 중요한 최전선이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 살아가는 노인,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장애인, 그리고 체념과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익명의 존재들’.
그들을 만나며 나는 복지란 단지 국가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향해 기울이는 태도’라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가 경험하고, 고민하고, 때론 절망하며 쌓아온 기록이다. 나는 여기에서 어떤 ‘해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던진 질문들...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복지란 무엇인가’,
‘국경과 제도는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그 질문들 사이에서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자는 초대를 건네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를 아직도 ‘길 위의 사람’이라고 느낀다. 한 나라의 사회복지사이면서도, 동시에 이방인이고, 전문가이면서도 실수와 회의 속에서 길을 찾는 불완전한 실천자다.
그렇기에 나는 확신보다는 질문을 선택하고, 정답보다는 맥락을 중시하며, 정책보다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실천이란 늘 경계 위에서 일어난다. 제도와 현실 사이, 기준과 예외 사이, 정책과 삶 사이.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애쓰는 일이 바로 사회복지사의 윤리이고, 또한 실존이다.
나는 이 책을 마치며 ‘내가 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묻는다. 그것은 특정한 직업을 갖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실천의 철학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경계선에 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경계가 불안과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연결과 가능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으로 내 역할을 정의하고 싶다.
국경을 넘는 복지의 실천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내가 그 길을 걸으며 만났던 얼굴들, 주고받았던 말들, 그리고 마음을 다해 들었던 이야기들은 이제 내 안에서 하나의 윤리이자 철학이 되었다.
여전히 길 위에 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혹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