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복지의 얼굴들
나는 일본의 국가자격증을 가진 일본의 사회복지사지만, 동시에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국적과 언어, 문화와 제도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며, ‘복지’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를 매일 다시 묻고 있다.
처음 일본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 나는 ‘국가가 돌보는 체계’로서의 복지를 배웠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국가의 제도보다 빠르게, 국경을 넘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외국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왔고, 또 다른 이는 결혼을 통해 이주했고, 누군가는 난민 신청 상태로 수년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삶들 앞에서, 나는 ‘복지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해야 했다. 그것은 단지 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경계 위에 선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태도였고, 그들의 존재를 행정이 아닌 인간의 언어로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실천이었다.
복지는 ‘국민’을 전제로 설계된다. 그렇기에 이주자, 무국적자, 난민, 단기 체류자 같은 존재는 항상 제도의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더 이상 단일한 국적과 문화를 기준으로 사회를 설명할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 속에서 사회복지사는,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새로운 일상’을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직업이다. 그들의 언어, 체류 조건, 가족 구성, 사회적 소속감과 경제적 기반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읽어야 하고, 그 속에서 가능한 지원과 연결을 찾아야 한다.
나는 몽골 출신의 고령 여성과 만난 적이 있다. 젊었을 때 일본에 와서 일했고, 일본인과 결혼했지만, 은퇴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곳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연금은 불충분했고, 친척은 없었으며, 의료 지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말했다.
“여기서 죽고 싶어요. 다시 돌아가도 나는 낯선 사람이니까요.”
그녀의 말은 깊게 박혔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이곳은 그녀의 ‘국적’은 아니었지만, ‘삶의 장소’였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 국적이 아니라, 삶을 존중받을 수 있는 실천의 자리였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국경이란, 행정의 언어로는 명확하지만 사람의 언어로는 불완전한 개념이다. 국적은 삶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문화는 정체성을 단정짓지 못한다.
복지의 실천은, 그 불완전한 경계 위에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복지사들은 같은 고민을 한다. 독일의 이주노동자 지원 현장, 스웨덴의 난민 아동 보호 정책, 미국의 무보험 이민자 지원 네트워크,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다문화 가정 정책...이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복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다.
나는 국경을 넘어 일하는 사회복지사로서 그 질문을 매일의 실천 속에서 체감한다. 그리고 이제는, 복지의 개념이 ‘국가’의 틀 안에서만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복지는 더 이상 ‘시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예산, 제도적 범위, 사회적 합의 등 수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그래서 복지는 늘 타협 속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실천은, 그 틈 사이에서 작고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든다.그 균열은 언젠가 제도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넘어 온 사람들과 마주한다. 그들의 불안한 체류 상태, 불완전한 언어, 제도에 대한 불신, 그리고 잊히고 싶은 과거.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삶을 복지의 언어로 번역하고 싶다. 제도가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로 그들의 삶은 이미 이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외국인 사회복지사’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름이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의 폭을 넓혀준다고 느낀다. 국경 너머에서 만나는 복지의 얼굴들은 늘 다르고, 또한 닮아 있다. 결국 우리가 돕는 것은, 국적이나 서류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