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가 닿지 않는 경계선에서
“거기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정중하고 원칙적인 문장. 하지만 그 말이 전해지는 순간, 상대는 종종 어딘가로부터 밀려나는 표정을 짓는다. 그 ‘어딘가’는 바로 제도 바깥이다.
사회복지의 현장은 ‘지원이 가능한 사람’과 ‘지원이 어려운 사람’으로 끊임없이 분류한다. 지원의 조건은 서류와 숫자, 기준과 법령으로 규정되며, 그 기준에서 비껴난 사람들은 아무리 절박해도 ‘해당 없음’으로 처리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단기 체류 외국인,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무연고 고령자,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나 정식 진단과 치료 이력이 없어 공적 서비스와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제도 바깥의 사람들이다.
복지제도는 국가가 사회적 연대를 위해 만들어낸 장치다. 그러나 그것이 갖는 가장 큰 한계는 ‘문턱’이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많지만, 그들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길은 상상보다 훨씬 좁고 복잡하다.
나는 일본의 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도화되지 않은 ‘삶의 여백’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법과 기준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정들, 그리고 그 사정들을 끌어안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복지는 침묵하거나 회피한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피해로 가출한 고령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주소지를 두고 있지 않았고, 본적지와 현재 거주지가 달라 어느 지자체에서도 자신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담당 행정은 전화를 돌리며 말했다.
“원래 주소지에서 먼저 접수해야죠.”
그러나 그 주소지에 그녀는 갈 수 없었다. 그곳은 그녀가 피해를 입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례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런 경우는 매뉴얼에도 없고, 담당자도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결국 민간단체의 일시 보호시설과 연계하여 임시적인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머물던 보호소의 방은 창문이 작았고, 밖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밤마다 “밖을 좀 걷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호소는 외출이 제한되었고,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녀의 삶은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제도 밖’에서 자유롭지도 않았다. 그 중간 지점, 경계선 어딘가에서 그녀는 조용히 존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그리고 이때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제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일이다. 나는 종종 행정에서 “그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바로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 질문은 공식적이지 않지만, 아주 작고 중요한 가능성의 문을 연다.
복지의 실천은 항상 공식 제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비공식적 연대, 예를 들면 민간 지원, 지역의 풀뿌리 네트워크, 혹은 개인적인 설득과 관계 맺기를 통해 삶을 이어주는 일이 더 많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도 따른다. 제도 밖의 실천은 언제나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사회복지사는 공공성을 지켜야 하고, 개입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실천은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과정이다.
나는 실천 초기에 이런 비공식적 개입을 망설였다. 자신의 판단이 과잉이 되는 것을 경계했고, 모든 문제는 제도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반복해서 마주친 ‘제도 바깥의 삶’은 내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제도를 지키는가, 사람을 지키는가?”
이 질문은 늘 쉽게 답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복지는 제도의 테두리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그 바깥을 감지하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제 실무자로서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려 한다. 대신 ‘어떻게든 연결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찾아보려 한다. 그 길이 느리고 불완전할지라도, 그 여백에서 인간다움이 피어난다는 걸 나는 여러 번 목격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