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밖에서 배우는 실천의 윤리
나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일하며, 사회복지사로서 제도 안에서 실천하지만 또한 그 제도의 외곽에 위치한 사람들과도 늘 가까이 지냈다. 그런 이중적 위치는 때때로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방인으로서의 나, 여성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나, 또는 복지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실천자인 모순된 위치에 있는 나. 이런 복합적 정체성은 실천의 감각을 더 섬세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윤리적 감수성을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자주 배우게 했다.
어느 날, 나는 한 고령의 외국인 여성과 마을 커뮤니티 카페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이 동네는 일본사람들만 친해져”라고 말했다. 그 말은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녀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커뮤니티 센터나 복지관에서는 ‘다문화 교류 프로그램’이 자주 열리지만, 실제로 외국인 주민이 중심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공식적인 행사에서 배려받는 대상은 되었지만, ‘주체로서’ 존중받는 경험은 거의 없었다.
이처럼 공식 복지와 비공식 삶의 경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다. 제도는 공평하다고 말하지만, 그 제도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언어, 정보력, 관계망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경계인은 이 간극을 가장 먼저 인지한다. 내가 바로 그런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책 회의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고, 설명되지 않은 불편함과 제도화되지 않은 소외를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복지는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제도이자 실천이다. 그러나 존엄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권리 보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존엄은 ‘나는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 즉 감정과 환경이 함께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체험이다.
나는 현장에서 이 ‘존엄의 결핍’을 의외로 많은 상황에서 목격해왔다. 예를 들어, 복지 신청 창구에서 어려운 일본어 서식 앞에 망설이는 외국인, 소득 증빙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고령자, 혹은 단순히 “절차가 복잡해서 포기했어요”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도우려면 제도를 알아야 하고, 행정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 간극을 감지하고 말할 수 있는 시선’,
즉 경계인의 감수성이다. 나는 이 시선을 공식적인 교육이나 자격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 속에서 배웠다.
한 발은 안쪽에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 발은 늘 바깥에 있었기에 제도의 언어와 생활의 언어 사이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실천의 윤리란 무엇인지, 복지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되었다.
실천의 윤리는 법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다. 실천의 윤리는 ‘이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는 “이건 원칙상 어렵지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라는 말이다. 그 말은 때로는 불확실함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당신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경계인의 시선은 제도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실천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균형점을 제공한다. 그 시선은 법과 제도를 존중하되, 그 안에서 소외된 사람의 삶을 보려는 끊임없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일본의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이방인의 자격’이 아니라 ‘경계인의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내 실천을 더 조심스럽고 정직하게 만들었다.
비로소 나는, 이 일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윤리의 뿌리를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