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복지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그 사람은 일본 국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 제도는 적용이 어렵습니다.”
복지 실무자로서 제도적 한계를 설명할 때,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해왔다. 그러나 이 말은, 언제나 내 안에 작고 둔탁한 돌멩이 하나를 남긴다. 국적이 없다는 사실은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보다 앞서 판단되어야 하는 조건일까?
나는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지만, 일본 국적자는 아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많은 외국인 이용자들도 ‘국적’이라는 벽 앞에서 실질적인 복지 접근을 제한당하곤 한다. 형식상으로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말하는 제도조차 막상 접수 창구에 가면 “재류자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가 붙는다.
나는 그 벽 앞에 선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어학연수 비자, 단기 체류, 배우자 비자, 혹은 무국적 상태로 체류하는 사람들. 이들 중에는 실제로 건강이 좋지 않거나, 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생활이 어려운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국적과 자격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복지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복지는 원칙적으로 보편성을 지향한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철학 위에 복지국가는 성립된다.
그러나 실제 운영되는 복지제도는 그 ‘사회 구성원’의 정의를 국적과 재류자격을 기준으로 나누며 제한한다. 이는 제도 설계 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복지 재원의 한계, 사회적 합의 수준, 정책적 우선순위 등을 고려하면, 국가가 자국민 중심의 복지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이해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제한이 사람의 ‘존재’ 자체를 제외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이다. 예컨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 방문을 꺼리게 되고, 행정적 통역 지원이 없어 중요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고령 외국인의 경우 언어의 장벽, 정보 접근의 어려움, 사회적 고립감이 중첩되어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기 쉽다.
나는 한 고령 외국인 여성의 사례를 기억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나 결혼을 통해 일본에 이주했지만, 배우자 사망 이후 연금도, 생활보호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오랜 기간을 살아왔다. 일본어가 서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방법도 몰랐다.
“여기서 오래 살았는데도 나는 아직도 외국인이야.”
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깊게 남았다. 그녀는 ‘합법적 체류자’였고, 지역 사회에서 조용히 살아온 한 사람이다. 그러나 행정이 요구하는 ‘서류’와 ‘자격’ 앞에서 그의 삶은 투명한 존재처럼 취급되곤 했다.
이럴 때, 나는 실무자로서 딜레마에 빠진다. 제도는 분명하고, 나는 그 제도 안에서 일해야 한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사람의 곤란은 제도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복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복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하는가?
제도는 예산으로 움직이지만, 복지는 관계로 작동한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 서류 너머의 맥락을 읽으려는 감각이 없다면, 제도는 사람을 구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배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실무자가 법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와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나는 상담을 통해 가능한 길을 찾고, 지역 자원과 민간 지원을 연결하며 ‘공식 경로 바깥’의 대안도 모색한다. 그것이 때로는 느리고 번거로울지라도, 그 사람을 위한 최선의 실천이라고 믿는다.
국적은 행정적 기준이지만, 인간의 존재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복지는 국경의 안팎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점점 다문화·다국적화되고 있다.
이제 ‘외국인’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이다. 그렇다면 복지 또한 이 새로운 구성원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재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현장에서 “그 제도는 해당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이 반복 속에서, ‘복지란 제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일’이라는 초심을 다시금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