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낯선 환경’이라는 말이 뭔가 멋지게 들렸다.
왠지 인생이 한 단계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통과의례 같달까.
하지만 막상 진짜로 낯선 곳에 홀로 던져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게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다는 걸.
처음 외국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나는 ‘설렘’보다 ‘버티기’에 가까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언어는 더듬거렸고, 문화는 낯설었고, 익숙한 것 하나 없는 풍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관찰하고 천천히 적응하는 것’뿐이었다.
회의 시간엔 눈치를 살피고,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는 말보다 표정을 먼저 읽었다.
기억하기도 버거운 셀 수 없이 많았던 에피소드들이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만,
그땐 하나하나가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낯선 환경이 나를 서서히 바꿔놓았다.
눈치는 인간관계 센서가 되었고, 실수는 경험이라는 이름의 수업료가 되었으며, 혼자서 보내는 시간은 나를 다독이는 훈련이 되었다.
익숙했던 한국의 일터였다면 당연하게 넘겼을 작은 일들도 이곳에서는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이 이렇게 유연하고, 참을성이 있으며, 긍정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
낯선 곳에 와서야 비로소, ‘내 안에 있던 또 다른 나’를 하나씩 만나게 된 것 같다.
때로는 생각지 못한 오해를 받기도 했고, 때로는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간단한 일처리 조차 쉽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무너지기보다 유연해지는 법을 배웠다.
돌이켜보면, 나를 진짜로 성장시킨 건 친절한 격려나 완벽한 환경이 아니었다.
내가 낯설고 불편한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려 했는가, 그 태도가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것 같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다.
가끔은 일본어 조사 하나 틀려서 멋쩍고, 현지 문화에 괜히 부딪히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엔 혼잣말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오늘도 하나 배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