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흔히 '남을 돕는 일'이라고 이야기된다. 사람들은 사회복지사가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넘어질 때 일으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틀리지 않지만, 나는 이 일을 오래 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회복지사의 일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돕는 것인 동시에,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언어도, 현장 경험도,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서툴고 두려웠다. 그러나 막상 뛰어든 현장은 이론서 속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예측할 수 없는 삶의 굴곡, 거기에 나 또한 휩쓸리면서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으로 배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루하루의 경험은 무심코 흘러가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이 작은 순간들이야말로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실패했던 지원 프로그램, 예상치 못한 거절과 클래임,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던 이용자, 작은 감사 인사에 울컥했던 어느 겨울날. 그 모든 장면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자산은 '자격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자격증은 하나의 문을 열어줄 수는 있지만, 그 문 너머의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결국 나의 몫이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사람들과, 함께 겪은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났던 나 자신. 그 모든 것이 바로 내 삶의 진짜 자산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산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다. 경험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리고 세상은, 기록된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의 경험을 나만의 언어로 기록하자."
"남의 언어가 아닌, 내 시선과 내 감정으로 다시 써 내려가자."
어느 날은 블로그에 조심스레 글을 올렸고, 어느 날은 강연 자료를 준비하면서 나만의 사례를 풀어냈다. 때로는 조심스럽게 책을 쓰는 꿈을 꾸었고, 나중에는 실제로 출판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작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든 기록들은 단순한 업무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창작물이었다. 누군가 대신 써줄 수도 없고, 대신 느껴줄 수도 없는,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저작권자가 되어야 한다."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이라면, 남이 대신 써줄 수도 없는 이야기를, 내 손으로 쓰고, 내 이름으로 남겨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저작권법을 지키자는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를 증명하는 문제였다. 내가 걸어온 길을, 내가 살아낸 시간을, 누군가의 그림자나 흘러가는 바람처럼 놓아두지 않고, 분명한 목소리로 새겨두는 일.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이었다.
사회복지사의 일은 남을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돌보고 성장시키는 일이다. 나는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도우려 애쓰면서도, 때때로 내 안의 작은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너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서성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남을 돕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삶을 사랑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자고.
삶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좋은 일도, 아픈 일도, 준비되지 않은 채 찾아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껴안고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남길 때, 나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삶을 창조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로서의 길을 걸으며, 나는 이제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은 단순한 실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가 품을 수 있는 사랑과 고민과 성장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메모를 남긴다. 어느 어르신이 건넨 따뜻한 인사, 아이가 내민 작은 손, 실패한 프로젝트 뒤에 찾아온 고요한 깨달음...이 모든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나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다. 그리고 조용히 되뇌인다.
사회복지사의 진짜 자산은 '자격증'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쌓아올린 '삶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자기 손으로 써내려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저작권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