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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Dec 25. 2023

해외 출판시장의 시니어 출판 현황

고령화 속도에 대한 인식

세계 인구의 날(World Population Day)은 유엔(UN) 산하의 유엔개발계획(UNDP)이 지정한 국제 기념일이다. 세계 인구가 50억 명을 돌파하자 인구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진시키기 위해 1987년 7월 11일에 제정했다고 한다. 2023년에 발표된 <2022 세계인구 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의 세계 인구는 80억 명인데 2030년에는 85억 명, 2050년에는 97억 명, 2100년에는 104억 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증가율이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30년에는 65세 이상의 노인 비율이 일본 38%, 독일 34%, 영국 28%, 미국 26%, 중국 2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2022년 주요 국가별 고령화율>
UN,통계청,삼일PwC경영연구원, <인구구조 변화가 한국사회에 주는 시사점>, 2023.4


특히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까지 한국은 불과 25년이 걸린 반면 프랑스는 173년, 미국은 88년, 독일은 77년이 걸렸으며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일본조차 35년이 걸렸으니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고령자가 되면 신체의 노화와 심리적 위축을 겪게 되며 직업 은퇴에 따른 경제적 능력 상실과 사회적 인간관계의 축소 등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취미나 여가활동은 노후 생활을 보다 활기차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소니생명보험이 조사한 <시니어 생활 의식 조사>(2020)에 따르면 복수 응답으로 진행된 ‘노년층의 10가지 즐거움’으로 여행(43.4%), 텔레비전 시청(34.6%) 그리고 독서(29.2%)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서는 이해력과 언어 능력 등 뇌 기능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편리한 독서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시니어 작가 전성시대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노인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노인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있으며 스마트폰 사용자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인구구조의 변화로 소비자의 연령층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소비자의 요구도 변화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시니어들이 원하는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소비자가 생산자인 시대 속에서 최근 시니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책에 담아 출간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양번펀(杨本芬) 작가는 퇴직한 이후 60세가 넘어서 한 평 남짓한 주방에서 자기 어머니와 가족,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80세인 2020년 정식 출판한 소설 《추원(秋园)》이 크게 성공했다. 작가 어머니의 험난한 일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2020년 더우반(豆瓣) 소설 분야 독서 차트 2위를 차지했고 2021년에는 《추원(秋园)》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모아 두 번째 작품 《부목(浮木)》으로 출간했다. 더우반(豆瓣)은 2005년 3월에 설립된 중국의 온라인 쇼핑 평점 사이트이자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다. 그리고 2022년에는 자신의 60년 결혼 생활을 소재로 한 세 번째 작품 《나는 원래 향기롭다(我本芬芳)》를 출간했다.

중일전쟁 시기인 1937년도에 태어나 생존을 위해 학업 대신 가족과 함께 일을 해야 했던 장수메이(姜淑梅)는 자신의 이름조차도 쓰지 못하던 문맹이었으나 60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글을 쓰다가 작가가 되었다. 2013년에 첫 번째 작품 《혼란한 시절, 가난한 시절(乱时候,穷时候)》을 출간했는데 중국 언론과 독자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5권의 책을 출간한 장수메이는 그림 공부도 시작해서 자신의 책에 들어가는 삽화도 직접 그렸다. 90세 전에 화가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으며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인만큼 고령 작가들이 많은 편이다. 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고 있는 사토 아이코(佐藤愛子) 작가 역시 40세 이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대 사회의 일상과 풍속을 특유의 독설과 유머로 풀어내며 대중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6년에 출간한 《90세, 뭐가 경사스러워(九十歳。何がめでたい)》는 150만 부 이상 팔렸는데 도서를 구입한 독자들의 평균 연령이 66세라고 한다.


왼쪽부터 《추원(秋园)》, 《나는 원래 향기롭다(我本芬芳)》, 《혼란한 시절, 가난한 시절(乱时候,穷时候)》, 《90세, 뭐가 경사스러워(九十歳。何がめでたい)》


한국에서도 시니어 작가들의 작품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김경수 작가는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약 30년 가까이 평범한 공직 생활을 하다 지난 2020년에 명예퇴직을 했다. 이후 장년의 나이에 찾아온 열정을 쫒아 전 세계의 사막과 오지를 달렸던 경험담들을 《내 인생의 사막을 달리다》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그 외에도 자신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도 여러 권이 있다. 2022년부터는 서울시 50플러스재단에서 다양한 특강을 하며 인생 2막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나예심 작가는 노동 현장에서 ‘이모님’으로 불렀다. 경제적인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살다가 60세가 넘어서야 책 쓰기의 길을 발견하였다. 《나는 시니어 작가로 새 인생을 산다》를 출간한 뒤 시니어 작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리틀 하우스(Little House)》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Laura Ingalls Wilder)는 65세가 되어서 첫 번째 책을 출판했다.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녀의 데뷔작인 《대초원의 작은 집(Little House in the Big Woods)》는 자전적 아동 소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했다. 그녀의 작품은 이후 TV 시리즈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으로도 제작되었다.

기록상 최고령 데뷔 소설가는 로나 페이지(Lorna Page)이다.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인 《위험한 약점(A Dangerous Weakness)》은 무려 93세 때 출간되었다.


왼쪽부터 《내 인생의 사막을 달리다》, 《나는 시니어 작가로 새 인생을 산다》, 《대초원의 작은 집(Little House in the Big Woods)》, 《위험한 약점(A D


다양한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시니어들이 책을 쓰게 됨으로써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며 자아존중감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시니어들이 글쓰기를 하게 되면 기억력과 이해력뿐만 아니라 의사 소통 능력도 향상된다. 스탠포드 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쓰기는 말하기와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더불어 슬픔, 분노, 고통스러운 감정 등을 글로 표출할 수 있기에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다. 이처럼 노년기에 글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정신건강, 감성 지능 향상, 심리적 안정 등을 유도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고객과 콘텐츠를 세분화한 하루메쿠(ハルメク)

지난 20년 간 일본의 서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며 일본의 출판 산업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했던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매출이 소폭 증가했지만 이후 다시 하향 추세로 돌아섰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出版科学研究所)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출판산업 매출이 1조 6,305억 엔으로 전년 1조 6,742억 엔 대비 2.6% 감소했다. 특히 잡지 매출은 4,883억 엔으로 전년 5,375억 엔 대비 10.1%로 크게 감소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주간지 ‘주간아사히(週刊朝日)’가 출판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2023년 5월호를 마지막으로 휴간한다고 발표했다. 주간아사히는 1922년 창간됐다. 1954년에 발행부수 100만 부를 달성했고, 1958년 신년호는 주간지 사상 최고인 153만 9,500부라는 경이적 부수를 기록했다. 일본은 과거 잡지 대국이었지만 최근 잡지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일본 잡지 매출 현황 (2014~2022년)>
출판과학연구소(出版科学研究所), 2023.1 (종이잡지(위), 전자잡지(아래), 단위: 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하루메쿠(ハルメク) 출판사가 있다. 오직 50세 이상의 고령 여성층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평균 독자 연령이 65세라고 한다. 판매는 서점으로 유통시키지 않고 오직 정기 구독만으로 운영한다. 하루메쿠 잡지의 1년 정기구독료는 6,960엔 이다. 일본 ABC 협회에 의하면 하루메쿠는 2022년 상반기에 월평균 44.2만 부를 판매했고 코믹지를 제외한 잡지 전체 판매 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22년 12월호의 정기구독자 수는 무려 5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하루메쿠는 일본어로 '봄다워지다'라는 의미로 고령층의 삶을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담았다고 한다. 하루메쿠가 시니어 시장에서 어떻게 성공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전 국민의 평균 연령이 46세가 넘으며, 50대 이상의 인구비중도 60%를 넘어선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시니어들을 위한 다양한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모델 등이 등장하고 있다. 출판 시장에서도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도서들(건강, 장수, 요리, 여행, 반려동물, 금융, 창업 등)을 발행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독서가 생활화된 고령자 비율도 상당히 높은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니어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만한 도서는 많지 않다. 그래서 하루메쿠는 이러한 50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특히 여성 중심의 전문 콘텐츠로 타겟 고객과 콘텐츠를 세분화 하였다. 시니어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적인 고민, 불안, 외로움 등에 직면하게 되는데 하루메쿠는 이 과정에서 필요한 콘텐츠들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현실감 있도록 철저하게 기획하였다. 출판사가 만들고 싶어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시니어들이 필요한 콘텐츠를 시의적이고 기민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정보들은 독자가 보내주는 선물 증정용 엽서(약 2~3천 건/월)의 이야기를 검토해서 콘텐츠로 기획한다.

또한 잡지 구독 모델을 쇼핑몰의 비즈니스와 연계함으로써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 냈다. 하루메쿠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면서도 자택에서 혈액과 소변을 보내면 질환을 알려주는 헬스케어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정기구독 잡지와 함께 <건강과 삶>이라는 카탈로그도 함께 발송하는데, 독자들은 이 카탈로그를 살펴본 뒤 필요한 상품들이 있다면 하루메쿠 전용 사이트를 통해 주문한다. 제품들은 시니어에 특화되고 기발한 제품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PB 상품들이다. 품질이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2/3 정도이기 때문에 가격과 가치 포지셔닝도 잘 맞추었다. 그 결과 현재 발생되고 있는 매출의 약 80%가 잡화 판매 수익에서 발생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루메쿠는 독자의 니즈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연 200회 정도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실시한다. 일상생활 속 관점에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야마오카 아사코(山岡 朝子) 편집장은 "철저하게 독자들의 일상생활 속에 머무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고령층이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짚어 보여줘야 그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하며 잡지의 본질에 있어 콘텐츠 서비스와 독자 커뮤니티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마무리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와 디지털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웹과 결합한 콘텐츠 생산과 소비는 새로운 독자 읽기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기술 변화에 따른 다양한 매체의 등장과 대중화, 소비 방식과 독서 형태의 변화, 법제도의 개선 등이 서로 맞물리며 출판 생태계가 흘러가고 있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매년 독서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소비자의 시간을 붙잡기에는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요소들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심화되고 있는 고령사회에서 시니어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니어 출판시장은 더욱 활성화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초고령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처럼 고령화가 심각한 국가들에서 시니어를 위해 어떤 복지와 문화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는지 특히 출판과 관련해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직 국내에는 시니어를 위한 출판 환경이나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지만 출판계와 정부기관에서 다양한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시니어가 출판 산업의 혁명을 이끄는 촉매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본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획회의> 590호에 기고한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글 이은호 교보문고,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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