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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pr 16. 2024

지하철은 추억을 싣고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없었을 때 승강장에 있으면 달려오는 지하철의 매캐한 바람을 맞으며 요란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스크린도어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옛날이야기 같다.


어느 날 어떤 꼬마애가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승강장에 떨어뜨렸다. 겁도 없는 나는 지하철이 오는지 좌우를 확인하고 선로로 뛰어 내려가 장난감을 주었다. 갑자기 방송에서 욕설이 울려 퍼졌다.


"야! 미친놈아! 죽고 싶어 환장했냐? 블라블라! 어쩌고 저쩌고!"


지하철역사 담당자가 CCTV에서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날렵한 몸으로 장난감을 들고 담을 넘듯이 승강장으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장난감을 꼬마에게 돌려주곤 날 잡으러 올지 몰라서 도망쳤다. 생각해 보니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하철이 안 와서 다행이지 천만다행이었다.  휴~


지하철에는 추억이 많다. 전화영어를 한답시고 신청을 했는데 출근시간에 예약을 해서 지하철 칸과 칸 중간 좁은 공간에 들어가 전화영어를 여러 번 했었다. 지하감옥 독방처럼 비좁고 케케묵은 냄새와 덜컹거리는 공간에서 전화영어를 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21살 어느 날 저녁시간 지하철을 타고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는데 술 취한 남자 둘이 나의 애정행각이 아니꼬왔는지 시비를 걸고 내 머리채를 잡았다. 여자친구는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이 나와 남자를 둘러쌌다. 남자들은 나를 데리고 다음 역에 내리고 나는 여자친구에게 내리지 말고 먼저 가라고 했다. 남자들은 승강장 의자에 나를 앉힌 뒤 싸대기를 몇 대 때렸다. 그때 귀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귀걸이가 떨어지자 남자는 나에게 주으라고 했다. 잠시 후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역무원이 왔고 나는 그 자리를 달아났다. 생각해 보면 경찰에 신고해서 피해보상금을 두둑이 받지 않은 것이 참으로 후회된다. 나쁜 아저씨들이었다. 지하철을 나와 터벅터벅 걸어서 여자친구 집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에서 여자친구를 만났던 기억이 있다. 걱정과 염려, 불안으로 가득한 여자친구의 표정이 생각난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지하철 화장실 칸막이에 수많은 구멍의 흔적과 막은 자국들과 낙서들이었다. 마치 피카소의 캔버스마냥 화장실 안이 차마 말하기 어려운 낙서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왜 화장실 벽에 구멍을 뚫어서 남 응가하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지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자화장실은 가본 적이 없으니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화장실 벽면이 철제로 바뀌면서 구멍을 뚫는 시도도 거의 줄어들었고 낙서도 사라졌다. 요즘에야 지하철 화장실 칸마다 거대한 롤 화장지가 있어서 휴지 걱정이 없지만 예전에는 화장지를 꼭 준비해야 했다. 화장실 앞에 휴지 자판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니 세상 정-말 많이 좋아졌다. 휴지 걱정 없이 지하철 화장실을 갈 수 있다니 말이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지하철도 함께 발전했다. 1-4호선의 케케묵은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생긴 순서대로 냄새의 강도가 비례했다. 5-8호선의 생기면서 세련된고 깔끔한 도시 디자인의 지하철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 후로 지하철 운전 역무원이 없는 무인 운행 경전철을 타보았다. 운전공간이 없고 지하철 전면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철로를 보며 지하철을 탈 때는 미래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지하철이 이제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바로 트램이다. 지상 위의 차도와 나란히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트램이 서울에 생기면 좋을 것 같다. 바깥 구경도 하고 차가 막힐 일도 걱정하지 않고 왠지 분위기도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121년 전 전차가 다녔었는데 자동차가 보급되고 버스, 자동차와 운행에 마찰이 생기면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트램이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연이 거의 없어 환경보호에 좋고 저상운행으로 노약자와 장애인이 함께 이용하기 좋은 유니버설 디자인적이기 때문이다.  


트램을 생각하면 다시 돌고 돌아 과거로 돌아간 것 같다. 트램은 전차처럼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빠르지 않아서일까? 빠르지 않게 정해진 길만을 변치 않고 묵묵히 지나가기 때문일까? 아마도 사진 속에서 봤던 오래된 전차의 모습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만들어지는 트램은 SF 우주선처럼 생겼으니 운치가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만약 서울에 트램이 생긴다면 트램 디자인은 올드한 스타일이면 좋겠다. 옛날 전차 모습 그대로 복원돼도 좋을 것 같다. 왠지 그럼 사람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이 탔던 전차와 똑같은 모양의 트램을 현대에 사람들이 탄다면 어떨까? 또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과 추억들이 생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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