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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춘, 그리고 우리 2

우리 앵무새

by 태리우스

우리 과에는 앵무새가 있었다. 앙증맞고 화려하게 컬러풀한 날아다니는 앵무새가 아니다. 별명이 앵무새인 여자애가 있었다. 앵무새는 까칠이와 동기였다. 앵무새란 별명은 내가 지어줬는데, 얼굴이 앵무새처럼 귀엽게 생겨서 그렇게 지어줬다. 앵무새는 강원도 토박이였다. 원주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춘천에 와서 자취를 했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 붙임성도 좋아서 복학생 오빠들과 금방 친해졌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친화력이 있어서 모두와 잘 어울렸다. 오지랖도 넓어서 남들 다 챙기는 스타일로 까칠이와는 정반대였다.


어느 날 앵무새와 통화를 하다 놀려먹을 생각으로 물어봤다. 강원도사람들을 감자라고 놀렸는데 나도 앵무새를 감자로 약 올릴 참이었다.

"너 감자 좋아해?"

"네, 오빠, 저 감자 좋아해요. 삶은 감자, 구운 감자, 감자튀김, 감자부침개, 감자로 만든 거 다 좋아해요."

"그렇구나. 크크크"

자기를 놀리는 줄도 모르고 해맑은 목소리로 좋아하는 감자요리 리스트를 줄줄이 말하던 순박하고 순진한 강원도 아이였다.


지방국립대에 오는 학생들은 부자들이 별로 없다.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진 않지만 성실하고 평범한 학생들이 저렴한 학비를 생각해서 들어오는 곳이니까. 그래서 평범한 서민의 자녀들이 많았는데 앵무새도 그런 집에 여동생이 있는 첫째 딸이었다.


2학년 겨울 전 세계적으로 어그부츠가 유행을 했었다. 연예인들을 시작으로 강남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과에 부잣집 딸내미가 그 유명한 어그부츠를 신고 나타났다. 사실 그 애가 어그부츠를 신고 오기 전에는 어그부츠가 뭔지도 몰랐다. 처음 본 어그부츠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신고 다니는 신발모양이었다. 저게 왜 유행하지? 동글동글하게 심플하게 생겨서 베이지 색깔이고 부츠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이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본 듯한 기분으로 어색하고 신기해 보였다.


그 부잣집딸내미가 말해주길, 어그부츠 안은 오스트레일리아 호주 양털로 만들었는데, 한여름에 신어도 땀 한 방울 안 난다는 것이다. 신발안이 양털로 덮혀져 있는데 땀이 안 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그 애의 허락을 받아 어그부츠 안쪽 양털을 만져봤다. 과연! 부드럽기의 극치를 달렸고 가공할 뽀송뽀송함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촉감이었다. 신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면 어그부츠 안으로 들어가 한숨 푹 자고 싶을 정도로 확실히 물 건너온 고퀄리티의 양털임이 분명했다. 부잣집 딸내미가 가격을 말하자. 우린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앵무새도 부잣집 딸내미의 어그부츠를 보더니 몹시 신고 싶었던 같다. 사실 둘은 우리 과에서 예쁜 애를 뽑자면 1,2등을 다투는 사이였다. 앵무새가 1등에게 조금 못 미치지만, 앵무새도 귀여운 얼굴에 날씬했고 쿨하고 쾌활한 성격이 매력적인 친구였다. 그래서 둘 사이 미묘한 경쟁심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우리의 앵무새는 그 비싼 어그부츠를 살 형편이 안되었다. 하긴 우리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그비싼 어그부츠를 신고 있는 사람은 우리 과뿐만 아니라 아마도 춘천을 통틀어서 그 부잣집 딸내미 단 한 명밖에 없었을 것 같다.


겨울이 깊어지고 어그부츠가 한국에서 대유행을 하면서 어떤 잡지사에서 사은품으로 어그부츠를 내놨다. 잡지사들이 경쟁적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으려고사은품 경쟁을 하던 때였다. 투명한 비닐봉지에 사은품을 담아서 패션잡지에 테이프로 둘둘 감아 팔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춘천 책방 윈도에 패션 잡지들이 진열되었고,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잡지가 한 권 있었으니 바로 갈색의 어그부츠가 접힌 채 사은품으로 붙어있는 잡지였다. 투명봉투에 담긴 채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패션잡지였다. 나도 그 어그부츠를 신고 싶어서 잡지를 살까 말까 고민이 들정도였지만 왠지 어그부츠는 여자들만 신는 것 같아서 포기했었다.


그 잡지가 등장한 후 어느 날 앵무새가 그 사은품 어그부츠를 신고 나타났다. 세상에! 그런데! 앵무새의 어그부츠는 볼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흐믈흐믈 구겨져서 롱부츠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양말과 부츠의 중간 제품의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차마 앵무새의 어그부츠를 보고 놀릴 수 조차 없었다. 앵무새의 어그부츠 안에는 양털은커녕, 솜털도 아닌 폴리에스테르 재질이 얇게 채워졌을게 뻔했다. 쿠셔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얇은 슬리퍼 같았다. 괜하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앵무새. 얼마나 어그부츠를 신고 싶었으면.


앵무새는 상당히 날씬한 편이었는데, 기다란 다리에 짝퉁 손오공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이 어색했다. 차라리 그 어그부츠는 안 신는 게 좋아 보였다. 우리가 정품 어그부츠를 못 봤으면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겠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긴 가격차이가 30배는 날 테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그 볼품없는 신발이 오히려 앵무새의 날씬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우리 앵무새는 그 신발을 며칠 신지도 않았다. 매번 신더니 금세 안 신었다. 불편하기도 하고 따뜻하지도 않고, 모양새도 안 예쁘고, 부잣집 딸내미의 정품과 비교되는 것도 짜증 났을 것이다. 그래도 천성이 쿨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앵무새는 기죽는 법이 없었다. 하긴 어그 부츠가 무슨 상관인가? 우린 언제나 가족 같은 패밀리였으니까.


그렇게 순하고 명랑한 앵무새가 화를 낸 적이 있다. 디자인과 학생들만 듣는 영어원어민 수업 때였다. 교실 앞에 나가서 영어책을 읽는 앵무새를 내가 깔깔거리며 웃었더니 정색을 하며 화를 냈다.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될 앵무새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우리 앵무새는 특성화 고교를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특성화 학교는 국영수 비중이 낮으니 상대적으로 영어 실력 약했을 앵무새였다. 나는 앵무새의 영어발음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단순히 평소처럼 장난을 친 것뿐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서로를 놀리고 약 올리는 거였으니까.

"하하하하~ 앵무새 영어발음~~~ 봐~~~"

나의 놀림에 앵무새는 곧바로 신경질을 부리며 화를 냈다. 수업시간에 말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친해도 공개적인 수업시간에 교수님 앞에서 놀렸으니 화가 날 법도 하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앵무새는 자존심이 셌다. 하긴 자존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앵무새는 일반고를 못 나온 열등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키가 작아서 느끼는 열등감처럼. 누구나 열등감이 있으니까. 나도 무척 당황했지만 우리 착한 앵무새는 그날 화를 내고 금세 풀어졌다. 역시 착하고 순한 앵무새였다.


앵무새는 2학년 때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키가 작고 귀여운 남자애였다. 둘의 키가 비슷해서 앵무새는 높은 굽의 신발을 신지 못했다. 늘 플랫 한 신발을 신었다. 남자친구가 생기고 다음날 전공실에서 우리 복학생들 보고 특히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도도하게 약 올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길래~ 먼저 데쉬하지 그랬어~이미 버스는 떠났다고!"

'무슨 헛소리를 하고 앉아 있는 거지? 누가 지를 좋아하기는 했었나? 완전히 공주병이구만, 도끼병이야? 뭐야? 사귀거나 말거나! 나는 너 관심 없었다고! '


나는 앵무새의 연애소식에 진심으로 아무런 마음에 동요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자기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 앵무새는 오해도 참 잘한다. 둘이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생 예비군 훈련이 잡혔다. 참한 앵무새는 남자친구의 예비군 도시락을 싸왔다. 흰밥 위에 완두콩으로 하트를 만들어주는 사랑스러운 애였다. 그때만큼은 앵무새 남자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그러다 남친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앵무새는 졸지에 워킹 고무신이 되었다. 고무신이 됐으니 남친에게 썼던 시간을 도로 우리에게 할애하며 우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내 생일에 과친구들을 불러서 집에서 비디오를 봤다. 늦은 밤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 앵무새도 바닥에 엎드려 누워있었는데, 나는 앵무새 엉덩이를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남자애들이 내 방에 들어오자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앵무새의 엉덩이가 폭신해서 기분 좋게 누워서 자는 척을 했다. 그러게 있다가 모두들 돌아가고 나도 잠을 잤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과 어떤 여자애 집에 앵무새와 함께 놀러 갔다. 앵무새와 같은 학번의 재수생 언니였다. 역시 나와도 아주 친했다. 텔레비전을 보려고 했는데, TV 아래 담배와 라이터가 보였다. 담배를 발견한 나를 보고 그 여자애가 얼마나 당황스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때만 해도 남녀가 맞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대부분 여자들은 타인이 안 보이는 장소에서 담배를 폈다. 하하하,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음 짓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우린 다시 편하게 텔레비전을 봤다. 앵무새는 그날도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렸고 나는 또 앵무새 엉덩이를 베개 삼아 누워서 같이 TV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재수생 언니가 앵무새한테 한소리를 했다.

"야! 너는 남자친구도 있는 애가! 어! 그렇게 엉덩이를! 말이야!"

"아니.... 언니..... 그게 아니고......"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나와 앵무새는 엉겁결에 일어나서 어색하게 바른 자세를 취하며 반성하는 태도로 텔레비전을 봤다. 그 언니 말이 맞다. 남자친구 있는 애 엉덩이를 베개 삼아 눕는 건 잘 못된 행동이었다. 훗날 더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언니는 앵무새한테 또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야! 너는 오빠 있을 때 왜 안 한 던 짓을 하고 그래? 빨래를 개고 말이야."

앵무새가 내 앞에서 빨래를 갰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왜 기분이 나빴던 걸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웃음이 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앵무새 남친이 호주 워킹을 간 기간 동안 혼자 있는 앵무새에 대한 마음이 아주 잠시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도 참 나쁜 놈이다.....

우리 교회 대학부에서 친구 초청을 했는데, 나는 앵무새를 초대했다. 교회에 예쁜 친구를 데리고 가고 싶었고 앵무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춘천에서 서울까지 같이 기차를 타고 교회에 갔다가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인사도 했다. 대학로도 구경하고 우린 하루를 데이트를 했다. 앵무새는 평소와 달리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는데, 기차역 계단을 올라갈 때 내가 치마를 올리려는 장난도 쳤다. 앵무새는 구김살이 없어서 대화도 잘되고 긍정적이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앵무새와는 거기까지였다. 이성적으로 완전히 끌리진 않았다. 그렇게 가까워질 뻔한 우린 평소대로 친남매처럼 편하고 재밌게 지냈다. 앵무새는 나에게 순박하고 예쁜 후배였다.


돌아보면 앵무새가 고무신을 꺾어 신지 않도록 마음을 흔들지 않았던 게 참 잘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앵무새의 치밀한 남자 친구는 호주에 갈 때 앵무새의 문자나 전화통화내역을 호주에서도 조회할 수 있는 기능을 몰래 심어놓고 갔었다고 들었다. 남친은 나와 앵무새의 대화를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른 척 시치미를 떼었다고 한다. 나는 최대한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순박한 앵무새는 내 마음은 하나도 몰랐을 게 뻔하다. 하지만 여우처럼 영리한 앵무새 남친은 앵무새를 향한 나의 작은 호감을 분명히 느껴졌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자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했는지 모른다. 남친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색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차마 미안했다고 말할 수 도 없고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있다.


앵무새는 고무신을 끝까지 잘 지켜 신었다. 남친은 호주에서 돌아왔고, 둘은 다시 알콩달콩한 커플이 되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문화예술대 4층을 돌아다니가 불이 켜진 컴퓨터실문을 갑자기 확 열었다. 앵무새와 남친이 문을 등지고 나란히 컴퓨터에 단둘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남친의 손이 앵무새의 엉덩이 쪽에 있었다.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황급히 손의 위치를 옮긴 게 뻔해 보였다. 나는 어색하게 문을 닫아주었다.


둘은 졸업 후 헤어졌는데, 결국 다시 만나 결혼을 하고 아주 예쁜 딸 둘을 키우며 잘 살고 있다. 남자애가 생활력도 강하고 똑똑한 친구고, 앵무새도 밝고 착해서 예쁜 가정을 만들고 있다.


언젠가 동기 결혼식에 만나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돈을 언제 모았는지, 앵무새 집은 랜드로버 이보크를 몰고 나타났다. 우린 자연스럽게 차 얘기를 했다.

앵무새는 자기도 차가 갖고 싶다고 하자 남편이 된 남친이 경차를 사주겠다고 했다.

"아니, 난 작은 차 싫어! 큰 차가 좋아!"

"아니 남편이 경찬데, 경차를 왜 싫어해"

"오빠나 작은 차 타, 난 큰 차 탈 거야!"

신경질을 부리며 싸우는 모습이 재밌었다. 남편이 키가 작고 귀엽고 아담하게 생긴 친구였다. 앵무새는 날씬하고 키가 큰 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볼 때마다 키가 커지고 남자애는 작아져서 앵무새가 약간 더 커진 듯 보였다.


내가 4학년 때 휴학을 한 번 더해서 함께 졸업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친했던 우리는 취업을 하면서 자주 못 보게 되었다. 나도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신경을 못썼다. 나는 연애를 하면 여친에게 올인을 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는데, 졸업하고 오랜 시간 친구들을 전혀 챙겨주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춘천에서 앵무새와 몇 명이 모인 적이 있다. 직장생활이 정말 고단하고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늘 피곤해서 밤이 되면 곯아떨어지곤 했는데, 친구들과 있으니까

밤새도록 놀아도 하나도 고단하지가 않았다. 얼마나 재밌고 좋았는지 모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일 년에 한두 번 보던 우리는 결혼식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본다. 그마저도 결혼 적령기들이 지나자 결혼을 못한 친구들은 무기한 연장되고 있어서 언제 볼지도 모른다. 가끔 카톡 프로필을 보면, 온통 딸 사진들이다.

딸들이 성장하는 시간순서로 앵무새의 프로필이 채워진다. 귀엽고 예쁜 딸은 각종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자기 엄마,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그림도 잘 그리고 쑥쑥 크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케이크 쿠폰이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니 사진만 보다 카톡을 닫는다.


요즘 내 일상은 회색빛 흑백사진인데 앵무새와 친구들과 함께 한 대학시절은 진짜 앵무새 깃털색깔처럼 빨주노초파남보 총 천연색으로 가득 칠해진 컬러사진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희미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을 환하게 비쳐주는 빛나는 추억들이다.


그런 추억들은 내 인생의 스탠드다. 스탠드는 밤이 돼야 그 진가를 발휘하며 빛난다. 밝은 햇빛아래 스탠드 따위는 필요 없듯이 우리들의 삶이 언제나 빛나고 화려하다면 지난 시간들의 추억의 사진들 따위는 눈에도 안 들어올 것이다. 삶의 흐릴 때, 마음의 빛이 어두울 때, 추억의 컬러사진들은 내 가슴에 스탠드가 된다. 그래서 밤거리의 가로등처럼, 까만 밤에 달빛처럼, 불 꺼진 어두운 방에 켜진 스탠드처럼,

날 환하게 비춰주고 웃게 해 준다.


이처럼 우리들 모두 가슴 한편에 숨겨둔 빛나는 추억들은 터널 같은 인생의 시간을 지날 때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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