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춘천, 청춘, 그리고 우리 7

야구연습장

by 태리우스

대학시절 나는 경춘선을 타고 다녔다. 시외버스보다 기차를 좋아했다. 기차에는 화장실도 있고 맛있는 간식들로 채워진 카트가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우리 학교는 춘천역보다 남춘천역이 더 가까웠다. 남춘천역에는 특이하게도 야구연습장이 있었다. 동전을 넣으면 야구공이 날아오고, 야구 베트를 휘둘러 야구공을 치는 게임이었다. 야구공은 10개 정도 날아왔던 것 같다. 나는 날아오는 야구공을 3~4개 정도만 맞추고 대부분 헛스윙을 하는 어설픈 사람이었다.


어느 토요일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기 위해 남춘천역으로 향했다. 자취방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기차표를 사고 기차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서 역을 나와 왼쪽에 있던 야구연습장에 들어갔다. 야구연습장에 들어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야구공에 맞겠어?'


야구공에 맞을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동전을 넣자마자 곧바로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터가 돌아가고 야구공들이 들어있는 기계의 벨트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순차적으로 야구공이 하나씩 날아오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허리를 낮추고 베트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공이 날아오는 기계의 입구를 주시했다.


'피융~~~~~!'


둔탁한 총알 같은 소리와 함께 기계장치에서 첫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나는 타이밍을 생각하며 스윙을 하는 실력자가 아니다. 야구공이 날아오자 조건반사적으로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데 웬걸! 럭키하게도 첫 공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청아하고 맑은 타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뭔가 잘못 맞은 듯한 날카롭고 경박한 타격소리가 들렸다.


내가 온 힘을 다해서 힘차게 휘두른 야구 베트의 아래 부분과 날아오는 야구공의 윗부분이 비스듬히 스치듯 부딪히며 공의 각도가 꺾였다. 각도가 꺾인 야구공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 몸을 향해 날아왔다. 0.001초 정도 됐을까?


기계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의 속도와 내가 휘두른 베트의 속도와 힘이 더해져 가공할 만한 회전력과 파괴력을 품고 무섭게 돌진했다. 바로 나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신체기관을 향해! 내 몸에서 정자를 생산하는 소중한 생식기관을 향해! 오우! 노우!


남자에게 고환(睾丸, testicle)은 두 개다. 불알이라고 한다. 왕구슬 두 개가 시계추처럼 남자들 몸에 매달려있다고 보면 된다. 그 무지막지한 야구공이 바로 나의 두 개의 왕구슬 중 하나를 정통으로 정확하게 맞췄다.


고환은 급소이다. 고환을 발로 차이거나 손으로 잡히면 남자는 힘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고환에 보호대를 착용한다. 그만큼 예민하고 타격에 취약한 신체부위다. 그런데 그 불꽃을 튀며 날아오는 야구공이 나의 신체기관을 정확히 타격한 것이다.


맞는 순간! 단단한 야구공이 내 피부로 감싸진 왕구슬에 부딪힌 순간!


유리구슬에 쇠구슬이 부딪힌 듯한 청명하고 묘한 타격감이 전해졌다. 마치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행성충돌을 연상케 했다. 커다란 행성이 작은 행성에 출동하며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는 행성의 대충돌! 그 느낌은 구슬치기를 해본 사람은 알 수 있다. 큰 구슬로 작은 구슬의 포인트를 정확히 맞혔을 때의 짜릿한 타격감!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훨씬 빠르게 신체적인 변화가 느껴졌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그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잔잔한 연못에 주먹만 한 돌멩이를 던지자 풍덩 소리와 함께 연못의 물이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의 중요한 왕구슬로부터 순차적으로 온몸을 향해 진동이 퍼져나갔다.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지진파가 먼저 지나가고 충격이 뒤따르는 것처럼. 온몸을 향해 퍼진 진동 이후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으........"


신음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다리가 풀리면서 몸이 숙여졌다.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땅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나는 기절한 지도 몰랐다. 기절할 때 입을 벌린 채로 혀가 입 밖으로 나와있었는데, 혀가 바닥에 있는 모래에 닿아있었다. 혀끝에서 흙모래가 느껴졌다.


"퉤퉤!"


모래를 뱉어냈는데, 이미 혓바닥 끝에 흙독이 올라와서 마치 마취주사를 놓은 듯 따가운 통증과 마비된 것처럼 둔하게 느껴졌다. 혀는 놀랍도록 예민한 기관이다. 무엇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지금은 술을 먹지 않지만 당시 술을 먹기도 했는데, 마치 술을 먹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없고 머리가 아팠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거지?'


시계를 봤다. 기절했던 시간이 채 5분도 안 되었다. 최소 30분은 쓰러져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놀라운 건 내가 쓰러져있는데, 바깥에 어떤 할머니가 서서 나를 바라보고만 계셨었던 것이다.


'할머니도 참...... 사람이 쓰러졌으면 도와주셨으면 좋았으련만.....'


쓰러진 나를 보고 가만히 계셨던 할머니가 원망스러웠지만, 내 잘못이니 할머니를 탓할 수 도 없었다. 나는 몸에 뭍은 흙먼지들을 털어냈다. 길에서 쓰러져 잠든 만취객이 새벽녘 잠에서 깨어 비틀거리며 집을 향해 가듯 야구장을 나왔다.


머리통증이 가시질 않았고, 혀끝에서 느껴지는 흙독이 불쾌했다. 혀끝이 붉게 달아올라와 있었다. 그런 채로 기차시간이 되어 기차를 탔는데, 심한 멀미를 하는 것처럼 두통으로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로 서울에 갔다. 2~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상태가 괜찮아졌었다.


내가 야구연습장에 들어갔을 때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설마 야구공에 맞겠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설마 했던 그 일이 나에게 정확히 일어났다. 나는 그 이후로 야구연습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 고통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돌처럼 단단한 물체인야구공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날아오는 위험천만한 게임이었다. 자신을 그러한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게 되었다. 야구연습장 기절사건을 통해 자신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배울 수 있었다.


살면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운전면허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날 뻔한 일, 물놀이를 하다가 급류에 빨려 들어간 일, 시골에서 불장난을 하며 부탄가스를 폭파시킨 일들이 있었다. 나는 위험천만한 일들을 많이 벌리는 스타일이었다. 위험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사고를 피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안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나는 때론 겁쟁이처럼 보일 정도로 안전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최근에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남춘천역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야구 연습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춘천에는 야구연습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리 학교 정문 앞에 있다. 그 야구 연습장은 2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며 여전히 그 자리에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야구 연습장이 보이자 미소가 지어졌다.


'야구연습장이 아직도 있네.'


요즘에도 야구연습장에서 베트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야구연습장을 보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연인과 함께 베트를 휘두르고, 친구들과 밥값 내기를 하고, 나처럼 공에 맞아 기절을 하고, 하루 스트레스를 야구공과 함께 날려버리고, 심심해서 야구 게임을 하는 사람들로 야구연습장의 코인기계에는 동전 들어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듯하다. 오락실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야구연습장이 살아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녹색의 그물망이 사방으로 처진 그 특별한 공간, 야구연습장은 추억공작소처럼 여전히 셀 수 없는 추억과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중요한 부분을 맞아 기절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하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조배터리는 사랑을 싣고 일본여행기 3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