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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레터 Sep 15. 2021

02.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합니다.

28세,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하렵니다. 


번아웃이 왔다.



뭘해도 무기력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 무언가 빨리빨리 해내야만 할 것 같고, 이뤄야만 할 것 같고. 남들보다 뒤쳐지고 있다는 날카로운 기분이 온 몸을 감쌌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만 보며 뒹굴 거렸지만, 뭘 봐도 재밌지가 않았다.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서 배달음식만 시켜먹었다.



그마저도 치우기 싫어서 방치했더니 배달 음식 위론 날파리가 꼬였다.



그걸 보면서도 침대에서 일어날 힘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밖에서 뭘 좀 하면 나아질지 몰라, 생각하며 뮤지컬 티켓을 끊었다.



나를 위한 사치 같은 느낌이었다.



티켓은 무려 7만원이었지만 간만의 외출이니 투자 좀 해보자 싶었다.




기대했던 뮤지컬 공연은 지각을 해서 10분이나 늦게 들어갔다.



분명히 40분이나 일찍 나왔는데 금요일 저녁 7시 강남이라는 걸 계산 못했다.



기어가는 버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 속에서 다시 한번 무기력을 느꼈다. 행복한 감정을 되살리려고 나온건데, 서울이란 도시에 대한 미움만 강해지고 있었다.



공연은 별로였다.



아니, 그럴리 없다. 공연은 분명 좋았다. 그런데 좋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계속 집에가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계산하고 있었고, 조금도 공연에 집중하지 못했다.




분명 밖에 나왔는데도 숨막히는 답답함은 여전했다. 그때 알았다.



'아, 이게 번 아웃인가'




하루 이틀 여행을 다녀오는 정도로도 해결되지 않았고제일 사랑하는 뮤지컬을 봐도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몽니의 '소년이 어른이 되어'를 틀었다.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생각.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거였다.

걱정이나 근심이 아니라 순수한 생각.




사실은 소비가 아니라 생산을 하고 싶었다.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만들고 싶다. 제작 하고 싶다. 나를 매개체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 라는 갈망이 온 몸에 퍼졌다. 근질근질했다.



오랫동안 왜 일하는지도 모르고 오직 월급만을 위해 로봇처럼 일하며 살아왔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었고 톱니바퀴의 부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톱니바퀴의 부품으로 사는 건 질렸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에도 질렸다.

영원한 소비자로 사는 것에도 질렸다.



내 번아웃의 이유는 '일 하지 못함'에서 오고 있었다.



진짜 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



일을 하지 못해 생긴 무기력함이 나를 번아웃에 빠져들게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채널을 만들고 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몰입해서 영상을 만들 땐 분명히 행복했는데, 완성하고 나니 다시 무기력해졌다.



'어라?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결과에 집착하고 있었다. 만드는 과정의 행복을 느끼지 못했고, 오직 빨리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조회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노라, 로봇처럼 결과중심적으로만 살지 않겠노라. 결심했으면서.



또 다시 결과중심적 관성으로 돌아간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유튜브 영상을 다시 봤다.

그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영상을 베끼듯 똑같이 참고한 필터와 그럴싸해 보이지만 개성이라곤 없는 타이틀 영상 등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나인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왜 자꾸만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 없어'

'사랑받지 못하면 의미 없어'


생각하며 결과에만 집착하는 내가 된 걸까.




왜! 내 개성을 먼저 살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레퍼런스 분석부터 하고 앉아있는 걸까.



레퍼런스 분석은 수십년동안 했는데, 내가 모르는 건 '나'인데. 왜 자꾸 나는 '나'를 우선 순위에서 뒤로 놓는 걸까?




관성은 때때로, 인간을 변화하지 못하게 붙잡는 수갑 같다.




변해야지.

말하면서도 정말 변화를 선택하는 인간은 많지 않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다시 시작하자. 전부 다시 시작하자.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완벽하려고도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기록을 해나가자.



외면 받아도 괜찮아. 미움 받아도 괜찮아. 만약 또 이게 아니다 싶으면, 또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 로봇처럼 일하지 않고 감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나와 비슷한 성향의 동료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지금의 이 모든 혼란이 언젠가 하나의 점으로 이어지리란 희망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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